출산을 숨기는 것만이 답은 아니다

김서영 기자
일러스트 | 김상민 기자

일러스트 | 김상민 기자

출산 사실을 숨기고 싶은 부모와 자신의 출생부모가 누구인지 알고 싶은 아이 중 어느 쪽을 더 중요하게 고려해야 할까. 논의가 한창인 익명출산제(보호출산제) 이야기다. 익명출산제는 아동의 출생신고 누락 문제, 미혼모 등 위기 임산부의 출산 문제 등에 대한 대안격으로 언급돼왔다. 출산에서 임산부 개인정보를 감춤으로써 여러 사정 때문에 의료기관에서의 출산을 꺼리는 산모를 보호하겠다는 것이 익명출산제의 골자다. ‘익명화’가 핵심이기 때문에 보호출산제 또한 익명출산제로 통칭할 수 있다.

비판의 시선도 만만치 않다. 우려는 공통적으로 이 제도가 ‘아이’를 위한 것은 아님을 지적한다. 아울러 차별을 보완하기 위해 만들어진 법이 다시금 차별을 강화할 수 있다는 문제, 어디까지나 최후의 수단이자 궁여지책이어야 할 방법이 양성화될 가능성을 내포한다. 국회와 정부에서 논의가 진행 중인 익명출산제에 대한 우려를 짚어봤다.

■익명출산제는 무엇?

2021년 12월 30일 기준 국회엔 조오섭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대표발의한 ‘위기임산부 및 아동 보호 및 지원에 관한 특별법안’과 김미애 국민의힘 의원이 대표발의한 ‘보호출산에 관한 특별법안’이 발의돼 논의를 거쳤다. 조오섭 의원안은 익명출산을 “임산부에 대한 개인정보를 삭제하거나 일부 또는 전부를 대체하는 등의 방법으로 특정 임산부의 임신·출산 사실을 알아볼 수 없도록 하는 출산”으로, 김미애 의원안은 보호출산을 “임산부가 일정한 상담을 거쳐 자신의 신원을 감춘 채 의료기관에서 출산하는 것”으로 정의한다.

내용을 보면, 공통적으로 익명출산을 지원하는 센터를 두고 상담을 거친 후 익명출산을 원하는 여성에게 필요한 정보와 지원을 제공할 것을 골자로 한다. 아울러 ‘임산부의 신원 및 개인정보 등에 대해 비식별화 조치를 취하도록(김미애 안)’ 하거나 ‘익명출산과 익명인도를 지원(조오섭 안)’할 것을 규정한다. 사회적 낙인이나 여러 사정 때문에 병원 출산을 꺼리는 여성이 안전하게 병원에 와서 아이를 낳으라는 의도를 담고 있다. 2021년 11월 23일 국회 보건복지 소위에서 양성일 보건복지부 제1차관은 “이 법률들은 의료기관 출생통보제의 제도 도입과 병행 검토할 필요가 있다. 아직까지 보호출산제는 정부가 출생통보제를 제출하면 그때부터 논의가 시작된다고 판단한다”고 밝혔다.


아동인권단체가 2021년 5월 20일 서울 여의도 국회 앞에서 ‘보호출산특별법 즉각 철회하라’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우철훈 선임기자

아동인권단체가 2021년 5월 20일 서울 여의도 국회 앞에서 ‘보호출산특별법 즉각 철회하라’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우철훈 선임기자

■익명성 보호 대 아동의 알권리

임산부와 아동을 보호한다는 취지로 발의됐지만, 발의 이후 우려가 이어지고 있다. 가장 큰 문제는 익명출산의 취지를 살리려면 자신의 뿌리에 대해 알고자 하는 아이의 권리와 친생부모의 익명성 보호라는 가치가 상충한다는 점이다. 두 발의안에 따라 출산기록이 익명화되면, 아이가 입양을 간 이후 나중에 친생부모에 대해 알고 싶어하더라도 소위 ‘뿌리 찾기’가 어려워진다. 두 발의안에서 입양된 아동은 ‘성년에 도달한 이후’ 출생기록 열람을 신청할 수 있으며 그 전에는 알 수 없다. 열람을 신청한 경우에도 익명출산을 신청한 자, 즉 친생부모가 열람을 동의하지 않는 경우에는 ‘친생부모의 인적사항’에 대해선 받아볼 수 없다. 이는 현행 입양특례법상 양자가 된 사람이 미성년자라 하더라도 양친의 동의 하에 입양정보 공개를 청구할 수 있도록 규정한 것보다 제한적이다.

익명 입양 당사자인 민영창 국내입양인연대 대표는 “익명출산제를 통해 아이를 살려보겠다는 순수성까지는 의심하지 않는다. 다만 이 방법이 최선이라는 생각에는 반대”라고 말했다. 그는 만 한 살 때 비밀입양됐고, 이 사실을 중학생 때 알게 된 이후부터 생부모에 관한 정보를 찾아왔다. 하지만 당시 기록이 마땅치 않은데다 개인정보보호 문제 때문에 과정은 순탄치 않았다. 민 대표는 “입양 기록을 남기는 것은 생부와 생모의 정보를 단순히 알거나 모르는 문제로 끝나지 않고, 내 존재의 정당성에 관한 문제로 이어진다”고 했다. 그는 “출생부모에 관해 알고 싶다는 것이 꼭 그들을 찾아가겠다는 것이 아니고, ‘나의 존재가 도대체 어떻게 시작됐는지’를 알고 싶다는 것이다. 그 ‘아는 것’ 자체가 막혀 있는 건 굉장히 답답한 상황이고 이러한 사례를 더 만드는 제도엔 찬성할 수 없다”고 말했다. 민 대표는 “내가 어떻게 해서 여기까지 왔는지를 알게 되는 건 정체성 문제를 회복하는 데 많은 도움을 준다. 단순히 족보를 아는 것이 아니고 존재의 조각을 맞추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익명출산은 최후의 수단

최형숙 미혼모협회 인트리 대표는 익명출산제가 익명입양을 전제함으로써 입양을 장려하게 될 것을 우려했다. 최 대표는 미혼모 당사자로서, 미혼모 지원을 하며 입양을 생각하던 엄마들도 막상 아이를 낳고 나면 생각이 바뀌는 것을 여러차례 경험했다. 그는 “엄마가 됨으로써 아이에게 해줄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 다 알고 고민할 기회를 줘야 하고, 설령 입양을 선택한다 하더라도 아이가 어떤 경로로 어느 가정에 입양됐는지에 대해선 알 수 있게 해야 한다”고 말했다. 최 대표는 이어 “모든 여성이 출산에 대해 안정적으로 지원을 받을 수 있을 땐 익명출산제를 고민해볼 수 있겠지만, 아직은 아니다. 출산 후 분윳값, 양육 어려움 같은 힘든 것만 해결해주면 충분히 아기를 키울 사람에게 입양을 먼저 생각하게 해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익명출산제를 도입하면 현행법상 미인가·무허가 시설인 베이비박스가 양성화될 수 있다는 지적도 있다. 베이비박스는 아이를 익명으로 두고 가는 것으로, 주로 교회 같은 종교시설에서 후원금으로 운영한다. ‘최소한 아기를 죽게 해선 안 된다’는 궁여지책이지만, 엄밀히 따지자면 유기에 해당한다. 이 때문에 유엔 아동권리위원회는 2019년 9월 한국 정부에 “종교단체가 운영하면서 익명으로 아동 유기를 허용하는 베이비박스를 금지하고, 익명으로 병원에서 출산할 수 있는 가능성을 허용하는 제도의 도입을 최후의 수단으로 고려할 것”을 촉구한 바 있다. 소라미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임상교수는 두 발의안 모두 아동보호 원칙에 위배될 가능성을 지적했다. 소 교수는 “두 발의안은 익명출산과 아동 유기를 조장할 수 있다. 원가정에서 보호받아야 할 아동의 권리를 침해할까 우려된다”고 말했다.

이 같은 우려에 대해 조오섭 의원은 “익명출산을 한다고 해도 충분한 설득과 정보를 제공한다는 것이 전제”라면서 “우려하는 부분을 알고 있다”고 밝혔다. 조 의원은 “위기 임산부가 발생하지 않는 것이 제일이고, 그다음은 위기 임산부가 출산 이후 아이와 같이 살 수 있도록 국가가 지원해주는 것이다. 그래도 안 될 때 입양을 하는 것이고, 시설에서 보육하는 것이 마지막”이라며 “병원도 가지 못하고 화장실 같은 곳에서 출산하는 일이 현실에 나타나고 있기 때문에 이를 해결하기 위한 다른 대안이라도 나오면 좋겠다”고 말했다.


일러스트 | 김상민 기자

일러스트 | 김상민 기자

■차별 재강화하지 않아야

제반 현실이 그대로라면 아무리 좋은 취지의 제도가 도입된다 하더라도 빛을 발하길 기대하긴 어렵다. 익명출산제를 둘러싼 논의는 단순히 법을 제정하는 것만으론 사회적 차별과 인식을 단번에 바꿀 수 없는 현실에서 제도를 만들기에 앞서 복잡다단한 문제를 숙고해야 한다는 점을 보여준다. 차별을 덜어내고자 만든 제도가 도리어 차별을 재강화하도록 하지 않게 하려면 미리 다듬어야 할 조건이 많다.

익명출산제의 경우 미혼모는 ‘숨어서 아이를 낳는 존재’, ‘아이를 키울 수 없고 입양을 보내는 엄마’란 낙인을 공고히 할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 반대 측의 공통적인 지적이다. “익명출산제가 도입되면 결혼하지 않고 아이를 낳는 여성들에 대한 편견이 더 심해질 것”이라는 최형숙 대표의 우려가 대표적이다. 익명출산의 주 대상이 미혼모이기 때문에 ‘미혼모는 몰래 아이를 낳을 수 있다’가 자칫 ‘미혼모는 몰래 아이를 낳아야 한다’거나 ‘미혼모는 몰래 아이를 낳는다’란 인식을 형성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는 “‘결혼 안 하고 애 낳는 여성들은 비밀리에 애를 입양 보낼 수 있다’는 것에 초점을 맞출 것이 아니라 미혼모를 둘러싼 사회의 분위기를 바꾸는 노력이 선행돼야 한다”고 말했다.

김희진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아동위원회 변호사는 “원인은 그대로 두고 결과만 해결하려 하면 아무것도 해결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 그는 “근본적으로 원치 않는 출산을 하는 것부터 시작해 아이를 낳았을 때 최대한 키울 수 있게끔 지원하는 분위기로 가야 하는데 익명출산제는 아동의 생명을 보호하자는 명목으로 결과만 해결하려고 하는 것”이라며 “차별을 차별로 강화하는 법안이란 비판을 계속 받을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민영창 대표는 “현재의 논의는 지극히 어른들의 사고에서 출발한 것 같다. 아이의 입장에서 생각해본다면 쉽게 답을 내려선 안 될 문제”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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