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흘 간 여섯 명이 커피를 끊어 보았다

‘새해 꿀잠을 위한 디카페인 챌린지’는 경향신문 식생활 뉴스레터 끼니로그 독자인 끼니어님들과 함께한 첫 이벤트입니다. 끼니로그는 독자 여러분께서 좋은 식습관을 만드는 데 도움이 될 정확한 정보를 제공하고자 노력하고 있습니다. 끼니로그 구독을 신청 하세요. 매주 금요일 오전 무료로 메일함에 보내드립니다. https://page.stibee.com/subscriptions/122110?groupIds=147996


끼니로그 독자님들과 함께한 디카페인 챌린지. 커피 대신 카페인이 없는 다양한 종류의 차를 마시며 컨디션의 변화를 기록했습니다.

끼니로그 독자님들과 함께한 디카페인 챌린지. 커피 대신 카페인이 없는 다양한 종류의 차를 마시며 컨디션의 변화를 기록했습니다.

카페인 생활을 그냥 둬선 안되겠다고 생각한 건 지난해 11월의 어느 날입니다. 오후 세 시 무렵 졸음을 물리치려고 마신 커피 한 잔이 결정적 한방이었던 것 같아요. 퇴근길에 지하철역 계단을 내려가는데, 심장이 너무 빨리 뛰고 자꾸만 몸이 휘청이는 것처럼 느껴졌습니다. 그날은 새벽까지 심장이 쿵쿵대 잠이 들 수 없었습니다. 다음날은 당연히 엄청난 피로가 몰려왔고요.

아침에 눈 뜨면 커피 향기로 하루를 시작하고 싶었습니다. 저녁엔 마지막 한 잔을 부스터샷 삼아 밤까지 더 많은 일을 할 계획을 세웠어요. 휴식이 필요할 때 내게 잠 대신 커피를 주는 일이 반복되면서 컨디션의 기복이 부쩍 커진 게 느껴졌습니다.

이 글을 읽고 계신 독자님도 혹시 커피를 달고 사시나요? 장점만 잘 누리고 계신다면 무척 좋겠지만, 너무나 일상이 된 나머지 부작용을 눈치채지 못하고 계실 수도 있어요. 푹 자고 개운하게 일어나는 느낌을 잃은 지 오래라면 카페인 섭취 패턴을 한 번쯤 돌아볼 필요가 있습니다.

카페인은 중독성이 있는 향정신성 물질입니다. 중추신경계에 작용해 활기와 집중력을 높여주는 것이 대표적 장점인데요. 카페인의 작용이 쉼과 잠을 대체할 수 있는 건 절대 아닙니다. 자칫하면 커피를 마시고 무리한 후 다시 커피를 마셔 몸이 보내는 신호를 무시하는 악순환에 빠질 수 있어요.

다행스런 것은, 카페인이 일으키는 중독이란 일정 기간 섭취를 중지하면 금방 벗어날 수 있는 종류라는 점입니다. 문제는 우리가 카페인 섭취를 자신에게 맞게 조절하기 쉽지 않다는 점입니다. OECD 국가 중에 두 번째로 많이 일하고, 전 세계에서 원두를 세 번째로 많이 사들이는 나라에서 커피의 유혹은 도처에 존재합니다.

보다 현명하게 마시는 법을 찾기 위해, 뉴스레터 끼니로그를 통해 참가를 신청한 다섯 분의 독자님과 함께 한시적으로 커피 섭취를 중단해 보았습니다. 열흘간 커피 대신 카페인이 들지 않은 여러 종류의 차를 마시면서 몸과 마음을 관찰하고, 커피를 안 마시면 어떤 변화가 오는지에 대해 소통했어요.

이 과정에서 발견한 것들을 여러분과 나누고자 합니다. 참가자의 이름은 모두 별명으로 소개합니다. 이 챌린지는 의학적 진단이나 의사의 처방과는 상관없이 개인의 습관을 돌아보고 개선하는 취지로 진행되었습니다. 참가자의 금단 증상 및 신체적 변화는 주관적 느낌을 바탕으로 서술했음을 알립니다.

뉴스레터 ‘끼니로그’를 통해 참가자를 모집했습니다.

뉴스레터 ‘끼니로그’를 통해 참가자를 모집했습니다.

■ 커피가 없으면 불안해요

평일의 커피는 참가자들에게 일을 위한 연료였습니다. 카누중독자님은 말 그대로 ‘물 마시듯’ 커피를 마셨다고 합니다. “회사 일을 하면서 커피 중독이 시작된 것 같아요. 마셔야 일이 더 잘 되는 것 같아서 한두 잔 마시기 시작하다가 어느 순간 물보다 많이 마시게 됐어요.” 역류성 식도염 증상이 생기고 주변에서도 걱정하자 카페인을 줄이기로 했습니다. 이파리님도 사정이 비슷했습니다. 마실 땐 두통이 사라지고 머리가 맑아지는 것 같아 좋았는데, 밤에 잠이 잘 안 오는 게 문제였습니다.

디카페인 챌린지에 참가한 사람들.

디카페인 챌린지에 참가한 사람들.

챌린지는 지난 1월 12일 수요일부터 21일 금요일까지 열흘간 진행했습니다. 커피를 최대한 피하기로 약속하고, 매일의 느낌과 변화를 작은 노트에 써서 오픈카톡방에 서로 공유했어요. 커피가 생각날 때마다 우려 마실 수 있는 다양한 종류의 차도 미리 준비했습니다. 커피를 대체할 수는 없겠지만, 무언가를 준비해서 마시는 행위만큼은 갈음할 수 있도록 계획한 것이죠.

챌린지를 수요일에 시작한 데는 이유가 있었습니다. 앞서 저는 11월 네 번째 끼니로그에서 혼자 열흘간 커피를 끊어 본 후기를 공유했는데요. ‘월요병’이 덮쳐오는 업무일의 시작점에 챌린지를 시작하니 죽을 맛이더라고요. 시야가 뿌연 느낌이 들고 글이 잘 눈에 들어오지 않았습니다. 그날의 일지엔 이런 내용들이 적혀있어요. “집을 나와 걷는 걸음마다 커피가 묻어있다.”(오전 8시) “온종일 힘이 없고 짜증이 난다. 이럴 때 카페인을 넣으면 곧 텐션이 쭉 올라온다. 오늘은 없을 것이다. 울고 싶다.”(오후 3시)

그때마다 ‘꿀잠이 주는 혜택을 온전히 누려보자’ 다짐하며 유혹을 뿌리쳤습니다. 놀랍게도 닷새째가 되자 더 이상 커피 생각이 나지 않았어요. 몸도 놀라우리만치 개운했습니다. 오후 9시부터 하품이 나기 시작해서 평소보다 훨씬 일찍 잠자리에 들었던 덕분일 겁니다. 7일 차가 지나자 이전보다 심신이 안정적이라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챌린지를 시작하며 참가자 여러분께 “챌린지 기간에는 수면 시간도 스스로에게 좀 관대하고 넉넉하게 주시면 좋겠습니다”라고 당부했는데요. 바쁘게 돌아가는 한국 사회를 살아가는 모두에게 이게 정말 어려운 일이라는 점이 아프게 느껴졌어요.

카페인이 없는 여러 종류의 차를 나눠 담은 ‘디카페인 키트’를 만들어 보내드렸습니다. 생강차, 레몬차, 우엉차, 도라지차, 캐모마일, 한방차 등이 등을 넣었습니다.

카페인이 없는 여러 종류의 차를 나눠 담은 ‘디카페인 키트’를 만들어 보내드렸습니다. 생강차, 레몬차, 우엉차, 도라지차, 캐모마일, 한방차 등이 등을 넣었습니다.

■ 얼마나 마셔야 적당한가

식품의약품안전처가 권고하는 하루 카페인 섭취량은 성인 기준 최대 400㎎입니다. 음료별 카페인 함량을 공개하는 스타벅스의 상품을 예로 들면, 톨사이즈(355ml) 아메리카노 한 잔에는 150㎎의 카페인이 들어있습니다. 세 잔째가 되면 기준을 넘기는 셈입니다. 카페인에 대한 민감도는 사람마다 달라서 권고량을 지킨다고 괜찮은 건 아닙니다. 식약처도 “카페인에 대한 민감도는 사람마다 다르며 불면증, 신경과민 등 부정적인 영향이 생길 수 있다”고 경고합니다.

참가자들이 평소 커피를 얼마나 마셨는지 살펴보니, 권고량을 넘긴 경우가 많았습니다. 아메리카노(에스프레소)보다 추출 시간이 긴 드립, 필터 커피는 카페인 함량이 더 높습니다. 스타벅스 ‘오늘의 커피’를 예로 들어보면 톨 사이즈 한 잔에 260㎎의 카페인이 들어있어, 두 잔만 마셔도 권고치를 훌쩍 넘겨버립니다.

물에 타서 먹는 인스턴트커피의 경우 식품의약품안전평가원 조사 결과를 보면 1회 제공량(분말 2g) 기준 54.5㎎의 카페인이 들어있습니다. 커피 뿐만 아니라 에너지 음료, 녹차, 초콜릿, 콜라 등에도 카페인이 들어 있습니다.

■ 첫 사흘만 넘긴다면

한국인의 커피 섭취량은 빠르게 전 세계를 추월해왔습니다. 시장조사기관 유로모니터에 따르면 2019년 한국의 커피전문점 시장 규모는 약 5조4000억원으로 미국, 중국에 이어 세계 3위 수준입니다. 국민 한 명이 카페에서 쓰는 돈도 연 평균 약 10만4000원으로 세계 3위입니다. 팬데믹 이후에는 집에서 커피를 직접 만들어 마시는 수요도 부쩍 늘어, 지난해 가정용 커피 기기 수입액이 전년 대비 35%나 늘었다는 보도도 나왔습니다. 미국 저널리스트 마이클 폴란은 커피와 차의 역사를 추적한 후 “자본주의가 밤의 경계를 정복하는 데 큰 도움이 된 물질”이라고 카페인을 정의했는데요. 이런 특성은 치열하게 살아온 한국인의 생활과 꼭 맞아들어가는 데가 있는 것도 같습니다.

챌린지 시작 전날 온라인 화상 플랫폼 줌(ZOOM)에서 참가 동기와 목표를 서로 공유했습니다.

챌린지 시작 전날 온라인 화상 플랫폼 줌(ZOOM)에서 참가 동기와 목표를 서로 공유했습니다.

챌린지 첫날 아침, 매일 쓰던 캡슐커피머신을 외면하는데 자꾸만 뒤통수가 당기는 느낌이었습니다. 전날 참가자들과 함께한 줌 미팅에서 다람쥐님이 “빈 속에 커피를 마시는 건 절대 하면 안 된다”고 조언해주셔서 모두 고개를 끄덕였는데, 이렇게 집에 커피 머신을 두고 쓰는 게 빈 속에 커피를 붓는 일을 부추겨왔다는 생각도 들었어요.

동료의 커피 냄새가 마스크를 뚫고 들어오는 오전 시간은 큰 고비였습니다. 단톡방의 참가자 모두가 커피의 그 ‘씁쓸한 맛’을 그리워하고 있었습니다. 집중이 안 되면 자꾸 커피의 부재를 탓한다는 것도 우리 모두의 공통점이었습니다

커피를 끊으면 나타나는 금단 증상은 보통 일주일에서 열흘 이내에 사라진다고 합니다. 가장 심한 금단 증상을 겪은 사람은 코코넛님이었습니다. 연구실로 출근해 매일 네 샷 정도의 커피를 마셔온 코코넛님은 1일차에 머리가 깨질 듯이 아팠다고 했습니다. 다행히 2일차에 이 증상은 훨씬 덜해졌어요. 커피를 줄이고 싶은데 금단 증상이 너무 심하다면 한 번에 끊기보다는 섭취량을 서서히 줄여 나가는 편이 좋습니다.

모두가 겪은 것은 졸림입니다. “계속 졸고 있어요.” 단톡방은 오후 세시쯤 되면 특히 활발해졌습니다. 참가자들 일지를 보면, 평소보다 훨씬 이른 오후 9시부터 잠이 밀려온다는 내용이 자주 등장합니다.

챌린지 기간 동안 카카오톡 오픈채팅방을 열어 두고 일지를 공유했습니다.

챌린지 기간 동안 카카오톡 오픈채팅방을 열어 두고 일지를 공유했습니다.

■ 커피의 빈자리

커피는 노동의 연료인 동시에 휴식의 좋은 수단이기도 합니다. 셋째날이 지나고 주말이 다가오자 단톡방 기류가 살짝 달라졌습니다. 졸음이나 피로에 대한 이야기보다 커피의 즐거움을 잃은 데 대한 이야기가 많이 나왔어요.

“재충전을 위해 커피를 내리는 것이 나만의 의례였는데, 이 의례가 실천 불가하니 스트레스를 받을 때 무엇을 해야할지 모르겠다”(코코넛님)라거나, “주말에 마시는 커피는 일주일 간 고생한 나에게 주는 힐링 같은 의미였다”(이파리) “냄새라도 맡고 싶어서 카페에 머물렀다”(초록병아리) 등이었어요.

실제로 커피 향은 어마어마한 힘을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의 감각을 어떻게 파고들어야 주머니를 열게하는지 연구해온 학자 찰스 스펜서는 커피 향을 “전 세계인이 열광하는 냄새”라고 했습니다. 음료 가게 뿐만 아니라 옷가게, 서점 등도 소비자를 잡아두려고 일부러 커피 냄새를 풍깁니다.

그래도 나흘 째가 되니 커피에 대한 박탈감은 많이 사라졌습니다. 저는 결혼식에서 지인 몇과 식사를 함께했는데, 후식으로 모두들 커피를 주문할 때 혼자 물을 마셨어요. 오후 5시가 넘었지만 예전이라면 유혹에 넘어갔을 텐데, 잘 참아내 밤까지 편안하게 지낼 수 있었습니다.

주말 동안 모두에게 비슷한 경험이 있었습니다. 일요일 밤, 초록병아리님은 이런 톡을 남겨주었어요. “저도 오늘 카페 투어를 했는데요! 달지 않은 블루베리 라임에이드를 오전에, 당근사과주스를 오후에 마셨어요. 평소였다면 ‘아아(아이스 아메리카노)’ 두 잔을 마셨을 텐데, 챌린지 덕분에 알록달록한 일요일을 보냈네요.”

초록병아리님이 ‘알록달록한 일요일’의 사진을 공유했습니다.

초록병아리님이 ‘알록달록한 일요일’의 사진을 공유했습니다.

■ 일주일을 버텨보았다

만 일주일이 지난 시점에 모든 분께 선택지를 드렸습니다. 카페인이 너무 생각나면 다시 섭취해도 좋다고요. 하지만 다들 커피를 마시지 않은 채로 나머지 사흘을 보냈습니다. 견딜 수 없을 정도의 금단증상은 없어진 셈입니다. 이파리님은 “커피의 각성효과가 좋아 옆에 끼고 살았는데 멀리하니 확실히 머리는 맑아진 기분”이라고 했습니다. “잠도 이전보다 잘 자는 것 같고 미묘하게 신체적 리듬이 좋아졌다”는 감상도 남기셨어요.

시작 때 심한 졸음을 호소하던 카누중독자님께서 변화가 가장 크게 나타났습니다. “오후에도 졸지 않기 성공! 오늘 생생하게 일해서 신기했다.” 일주일 째인 1월 17일 카누중독자님의 일지엔 이렇게 써 있어요. 전날 밤 7시간을 푹 잤고, 이날도 9시30분부터 졸음이 밀려온다고도 남겼습니다.

시작 때 역류성 식도염과 속쓰림을 크게 호소한 카누중독자님과 초록병아리님은 공통적으로 “위가 많이 편안해졌다”고 했습니다. 챌린지 기간 내내 야근을 한 초록병아리님은 그동안 속이 아픈 채로 커피를 마시면서 ‘내가 이것 하나 통제 못 하나’ 자괴감에 시달렸었는데, 챌린지 이후 생활의 자신감을 덤으로 얻게 되었다고 기뻐했어요.

저는 일을 하다가 커피 생각이 나면, 텀블러를 들고 카페에 가는 대신 ‘5분 산책’을 하기로 했습니다. 꽤 효과가 있었어요. 하지만 왠지 입이 심심한 건 어쩔 수 없었습니다. 단톡방에서는 커피가 없으니 차갑고 단 것, 군것질거리가 계속 생각난다는 얘기가 오갔어요. 찬물을 마시거나 달콤한 젤리를 먹으면서 허전함을 달랬다는 분들도 계셨어요.

누군가와 카페에 가야만 하는데 고를 게 없는 상황은 여전히 난감했습니다. 티백 하나 달랑 넣어주는 허브차가 아메리카노보다 항상 비싸서, 오늘치 카페인을 다 채웠는데 또 커피를 사게 되는 경우가 이전에도 종종 있었거든요. 부득이 카페에 가게 되면 루이보스나 캐모마일, 히비스커스같은 허브티를 고르고, 집이나 사무실에서는 머그컵을 항상 준비해 두고 티백을 담가 마셨습니다.

■ 신체 리듬을 파악하기

여드레 째 되던 날, 저는 두 가지 중요한 점을 눈치채게 됩니다. 첫째, 차를 많이 마시는데도 전과 달리 방광의 다급한 부름으로 화장실에 달려가는 일이 거의 없어졌다는 점입니다. 단톡방에 얘기했더니 대부분 동의했습니다. 실제로 이날 이후 매일 기록해 보았더니, 비슷하게 한두 잔의 음료를 마셨을 때 업무시간 중 소변을 보는 횟수가 2~3회로 카페인 섭취 시(4회 이상)보다 줄어든 게 눈에 보였습니다. 커피를 마시면 수분을 많이 섭취하는 느낌이 들지만, 실제로는 카페인의 작용으로 수분을 더 많이 배출하게 됩니다. 때문에 탈수 현상이 오지 않도록 물을 잘 챙겨 마셔 줘야 합니다.

너무 졸릴 땐 잠깐 눈을 붙일 수 있다면 좋겠습니다. 언스플래시 No Revisions

너무 졸릴 땐 잠깐 눈을 붙일 수 있다면 좋겠습니다. 언스플래시 No Revisions

이날도 오후 3시 무렵 극심한 졸음이 찾아왔어요. 캐모마일 차를 우려 마셨습니다. 꾹 참고 일을 하다 보니 어느덧 5시가 되었는데, 너무나 정신이 말짱하고 커피를 마신 듯 개운한 것이었습니다. 평소였다면 3~4시쯤 커피를 한 잔 더 마시고 ‘역시 카페인 덕분이야’ 했을 시간입니다. 그동안 커피의 각성효과라고 믿었던 ‘말짱함’의 일부는 어쩌면 자연스러운 신체리듬이 아니었을까요?

“문화나 지리적 위치에 상관없이, 모든 인류는 유전적으로 이른 오후에 각성도가 급감하도록 되어 있다. 점심을 먹은 뒤 회의실을 둘러보면 그렇다는 사실이 명백히 드러날 것이다.” 수면 전문가 매슈 워커는 이렇게 말합니다. 문화에 따라 사람들의 수면 습관은 조금씩 다르지만 “인류에게 가장 적합한 수면 패턴은 밤에 지속적으로 한차례 길게 자고, 이른 오후에 짧게 낮잠을 자는 형태”랍니다. 점심 후에 살짝 눈을 붙이면 최상의 컨디션을 유지할 수 있는데도 우리가 카페인으로 잠을 꾹꾹 눌러 밀어냈던 게 아닌가 생각하게 만드는 대목입니다.

■ 현명하게 마시는 방법

커피를 마셨을 때 우리 몸에 들어온 카페인이 절반으로 줄어드는 데는 평균 5~7시간이 걸립니다. 오후 6시에 커피를 마셨다면 자정 무렵에도 섭취한 카페인의 절반만 분해됐을 뿐 나머지는 아직 몸에 영향을 미친다고 봐야 합니다. 밤에 잠이 잘 안 온다면 커피는 가급적 이른 시간에 섭취하는 게 좋겠습니다.

온종일 커피를 다루는 바리스타들은 섭취량을 어떻게 조절할까요? 서필훈 커피리브레 대표는 <커피를 좋아하면 생기는 일>에서 “커피가 가진 카페인에 대한 신체적 반응은 개인차가 크다”며 “몸과 마음이 편할 정도만 즐기면 된다”고 권합니다. 일을 위해 온종일 커피를 마시는 데다 저녁에 마시면 잠이 안 와서 집에서는 주로 차를 드신다고 합니다.

성훈식 빈브라더스 디렉터는 자사 메일링 서비스 <BB레터>에서 “왜인지 카페인에 의존하고 계신 것 같다면 커피의 양을, 특히 늦은 시간의 커피를 줄이세요”라고 조언합니다. 성 디렉터는 원래 저녁에는 커피를 못 마셨는데, 요즘은 좋은 디카페인 원두도 많이 늘어나서 오후 세시 이후에는 디카페인 커피로 마신다고 합니다.

■ 챌린지 이후 변한 것들

챌린지 마지막 날 다시 한 번 모여 소회를 나눴습니다.

챌린지 마지막 날 다시 한 번 모여 소회를 나눴습니다.

챌린지를 마치고 눈에 띄는 변화가 있었는지 꼽아보니 다음과 같았습니다.

도토리 에디터 : 두근거림과 불면증이 사라짐.
다람쥐 : 두통이 사라지고 목이 건조하지 않음.
이파리 : 이뇨작용과 입안의 텁텁함이 줄어 전체적인 컨디션이 좋아짐.
초록병아리 : 속이 안 좋아 밥도 못 먹을 정도였는데 불편함이 사라짐.
카누중독자 : 속쓰림이 없어졌고 피부에 여드름이 나지 않음.
코코넛 : 커피 없이도 일상을 꾸려나갈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됨.

식습관을 바꾸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지만, 서로 이야기를 나누며 독려하니 훨씬 수월하게 느껴졌습니다. 참여자들은 무심코 들여온 습관을 살펴보고 몸 상태를 관찰하는 시간이 좋았다고 했습니다. 챌린지 기간 동안 음악캠프에서 학생들을 가르쳤던 다람쥐님은 커피 없이 빽빽한 일정을 소화하느라 힘들었지만, 목을 많이 써도 건조해지지 않아 좋았다고 했습니다. 챌린지에 참여하지 않았다면 피로를 물리치기 위해 목이 칼칼해지는 것을 감수하고 커피를 마셨을 것 같다고요.

챌린지는 차에 대한 견문이 넓어지는 계기가 되기도 했어요. 그동안 커피가 모든 음료의 블랙홀이 되어 다른 차를 맛볼 기회를 다 빨아들였으니까요. 코코넛님은 챌린지 기간 중에 부모님 댁을 방문했다가, 놀고 있는 다기를 발견해 쓰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혹시 너무 많은 커피를 마시고 계신다면 설탕이나 액상과당이 든 음료 말고 곡물차, 허브차, 한방차 등으로 커피의 빈자리를 채워보시는 것도 좋겠습니다.

이파리님은 “커피와 영원한 이별은 어렵고 조만간 재결합할 것”이라고 했습니다. “다만 이전처럼 각성제로 들이붓는 커피가 아니라 챌린지 기간에 마셨던 여러 종류의 차 마시듯 가볍게 기분 좋게 한두 잔 마시는 습관을 들이려고 합니다.”

두 차례의 디카페인 챌린지 이후 저도 섭취하던 카페인의 양을 많이 줄였습니다. 챌린지 기간 동안 커피값이 굳었다는 점도 언급하지 않을 수 없겠어요. 열흘을 무사히 보내고 처음으로 커피 가게에 들렀던 날, 문자 메시지로 날아온 카드 영수증을 보며 ‘헉’ 싶었거든요. ‘매일 이 돈을 쓰고 있었구나!’

이제는 가끔 커피를 안 마시는 날에도 무난한 하루를 보낼 수 있게 되었습니다. 몸에서 카페인이 분해되고 나면 갑자기 엄청난 피로와 무력감이 몰려오는 현상을 ‘카페인 허탈감’(caffeine crash)이라고 하는데요. 전에 자주 겪던 이 증상이 요즘 거의 없어졌어요. 커피와의 밀당은 앞으로도 계속될 것 같습니다. 기복 없는 안정된 심신이, 카페인이 주는 각성효과만큼이나 매력적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으니까요.

몸에 맞게 마실 수만 있다면 참 좋겠지요! 언스플래시 Nathan Dumlao

몸에 맞게 마실 수만 있다면 참 좋겠지요! 언스플래시 Nathan Dumlao

참고 기사 및 자료

매슈 워커, <우리는 왜 잠을 자야 할까>
마이클 폴란, <Caffeine : How coffee and tea created the modern world>
찰스 스펜서, <일상감각연구소>
서필훈, <커피를 좋아하면 생기는 일>
성훈식, BB레터 ‘수면생활과 카페인’ 편
식품의약품안전처 보도자료(2020년 3월 18일)
중앙일보, “1인당 연간 커피 353잔 마셔…코로나 후 입맛 더욱 고급화”(2021년 11월 8일)

식생활과 관련해 궁금한 점이 있으시면 다음 링크로 들어와 질문을 남겨주세요. 기사에 대한 의견이나 식생활 고민 등도 받습니다. 보내주신 내용을 반영해 더 좋은 끼니로그를 만들겠습니다. https://forms.gle/p3mt1QSmB5pkzFVo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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