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레길·해변길 떠도는 개들…그들을 위해 사진기를 들었다

귤엔터 이사진 : 구낙현·김윤영·금배

제주살이 중 만난 들개

길에서 만나 가족이 된 반려견 금배와 제주 산책을 다니는 동안 점차 여러 가지 의문을 가지게 되었다. 대체 이 많은 개들은 어디에서 오는 것일까?

길에서 만나 가족이 된 반려견 금배와 제주 산책을 다니는 동안 점차 여러 가지 의문을 가지게 되었다. 대체 이 많은 개들은 어디에서 오는 것일까?

“제주도에는 아예 눌러앉을 거야?” “글쎄…아예 살고 싶은데…. 서울로 돌아오게 되면 들개 때문이지 않을까?”라고 대답하며 지난 여름휴가에서 마주쳤던 들개를 떠올렸다. 반려견 금배와 함께한 제주도 여행 마지막 밤이었다. 여행이 끝나가는 것이 아쉬워 숙소 주변을 간단히 걸을 심산으로 나선 산책에서 혼자 돌아다니는 백구를 마주친 것이다. 우리를 향해 다가오는 개의 목에는 끊어진 쇠사슬이 매달려 있었다. 공포에 질린 우리는 얼른 반대 방향으로 걸어가기 시작했지만, 그 개는 계속해서 우리를 쫓아왔다. 가로등 하나 없고 사람 한 명 보이지 않는 낯선 골목과 논 밭길 사이로 ‘스릉스릉’ 쇠사슬 끌리는 소리가 우리를 뒤따랐다. 막다른 공터에 다다라 갈 곳이 없어진 우리는 그제야 뒤돌아서 그 들개를 마주보고 소리쳤다. “저리 가!” 손에는 쫓기는 도중 무기로 쓰려고 주워놓은 나무 토막 하나를 비장하게 든 채였다. 다행히도 우리의 포효에 그 개는 머뭇대더니 이내 뒤돌아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한참 동안 멀어지는 쇠사슬 소리를 가만히 듣고 있었다. 제주도에서 금배랑 매일 산책할 것을 생각하니 그 긴장감이 다시 생생하게 떠올랐던 것이다.

반려견과 함께 떠난 제주도 여행은 대부분 바깥에 나가 걷는 일정으로 채워졌다. 그러다보니 이전엔 몰랐던 제주도의 새로운 모습을 알게 되었는데, 제주도엔 개가 정말 많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문제는 그 개들은 우리와 함께 걷고 있는 반려견에게 자꾸만 다가오려고 한다는 점이었다. 또 집집마다 묶여 지내는 마당 개들은 자신이 묶여있다는 사실을 잊은 것처럼 몸을 던지며 지나가는 우리를 위협했고, 어르신들이 줄을 풀어놓고 키우는 일명 ‘셀프 산책견’도 많았다. 더욱이 놀라웠던 건 마을길이건 해수욕장이건 시도 때도 없이 불쑥불쑥 나타나는 떠돌이 개, 들개들이었다. 어떻게 행동할지 예측할 수 없는 중대형 견들과 곳곳에서 속수무책으로 마주친다는 사실은 반려견과의 산책길에 꽤나 신경 쓰이는 부분이었다. 이렇듯 한편에 긴장감을 가진 채였지만, 어쨌든 우리는 여행 내내 이곳저곳 걸어 다니며 제주의 생생한 자연을 만끽했고 대체로 행복했다. 금배와의 제주 여행은 도장깨기식 관광명소 투어가 아니라, 한적한 동네와 해안도로를 따라 걸으며 시간대별로 달라지는 하늘과 바다를 구경하는 일에 더 가까웠다. 자연 안에서 있는 그대로 시간을 보내는 방법으로 강아지와의 산책보다 더 좋은 일이 있을까? 숲에서 이리저리 길을 잃어도 강아지에게 산책을 선물하는 기분이 들어서 시간이 아깝지 않게 느껴졌다.

어느 여름날 제주 여행, 반려견 ‘금배’와 산책 중 들개에 쫓긴 아찔한 경험…끊어진 쇠목줄 ‘스릉스릉’ 끌며 다가오는 소리는 공포 그 자체였다
산책하기 좋은 동네로 이주하려다 보니 자연스럽게 시작한 제주살이, ‘또 다가오면 어쩌지’하는 두려움은 어느새 걱정과 관심으로 바뀌어
매일 들개들 사진 찍어 SNS 올리기 시작해 입양 홍보 프로젝트까지 진행…강아지 아이돌 그룹 ‘제주탠져린즈’ 만든 지 2달 만에 팬미팅도 가져

반려견 금배와의 라이프가 시작된 것은 2018년 여름, 기상관측 이래 가장 더웠다는 해이다. 근처에 사시는 어머니로부터 메시지가 왔는데, 며칠 전부터 길고양이 밥이 숨붕숨붕 줄어들어 이상하다 싶더니 웬 누런 강아지 하나가 고양이밥을 먹고 있다는 것이었다. 우리는 일단 뒷산으로 가 그 강아지를 찾아보았다. 캔 사료 냄새에 홀려 곧 모습을 드러낸 털북숭이는, 인식 칩이 있는지 확인하러 내민 손에 ‘발라당’ 배를 까고 누워버렸다. 모기가 극성을 부리던 한여름 숲속에 그 아이를 모른 척 두고 올 수 없어, 우리는 일단 강아지를 무작정 집으로 데리고 왔다. 인식 칩은 없었고, 전단을 붙여보아도 주인은 나타나지 않았다. 그 아이가 우리 집에 눌러앉으며 금배(金湃 쇠 금, 물결칠 배. 황금물결 같은 금배의 걷는 모습을 잘 표현한 이름이라 할 수 있다)가 된 것이다. 금배를 유기한 사람은 배변 문제로 어린 강아지를 꽤나 괴롭혔던 모양인지, 금배는 배변패드를 잘 사용하고도 구석으로 들어가 숨곤 했다. 그런 모습을 보며 우리는 강아지 본성에 맞게 밖에서 편하게 배변을 해결할 수 있도록 산책을 자주 하자고 결론 내렸다. 그렇게 우리는 강아지와 산책하는 삶으로 풍덩 빠져들게 된 것이다.

제주살이를 시작한 필자는 도처에서 만나는 들개들의 사진을 찍어 기록하기로 결심했다.

제주살이를 시작한 필자는 도처에서 만나는 들개들의 사진을 찍어 기록하기로 결심했다.

매일 하루에 네 번, 여가시간의 대부분을 산책으로 보내다보니 우리는 자연스럽게 산책하기 좋은 동네로 이사했다. 이사 간 집에서 도보로 10분 거리에 있던 서울숲 공원은 우리의 자랑이었다. 그러다 제주도 이주를 결심하게 된 것은 어느 한적한 아침 산책 중의 일이었다. 사람이 없는 평일 오전, 공원 한편에 있는 연못의 물을 빼고 청소하는 사람들을 문득 보게 된 것이다. 그 순간 ‘맞다. 이 숲 인공적으로 만들어진 숲이지?’라는 생각이 퍼뜩 떠올랐다.서울숲이 깨끗하고 안전할 수 있었던 이유는 관리되는 공원이어서 가능했다는 걸 새삼 깨닫자, 매일 똑같이 도는 코스가 순식간에 지겨워졌다. 서울숲까지 오기 위해서 매일 지나쳐야 하는 복잡한 교차로, 좁은 골목에서 담배를 피우고 침을 뱉는 사람들과 음식물과 쓰레기가 너저분하게 떨어져 있는 도시의 거리. 그에 반해 제주도에서 보았던 넓은 하늘과 걸어도 걸어도 끝없이 이어지던 해안도로, 적막이 감도는 깊은 숲 한가운데에서의 휴식이 떠올랐다. ‘고작 15년 남짓한 삶을 사는 금배와 이렇게 인공 숲만 뱅뱅 돌며 살아야 하는가? 진짜 자연에서 살아봐야 하는 것 아닌가?’라는 물음이 ENFP 인간의 가슴을 울렸고, INTJ 인간이 마침 일을 그만둔 때라 그 말도 안 되는 원대한 계획이 전면적으로 검토될 수 있었다. INTJ 인간의 예산 검토를 통해 우리는 간단한 ‘알바’를 병행하며 2~3년 정도는 제주도에서 지내볼 만하겠다는 결론을 도출했다. ‘살다보면 제주도에서 몇 년은 살아볼 수도 있는 거지 뭐.’ 그렇게 우리는 몇 차례의 당근마켓 거래를 거치고 남은 단출한 짐만 챙겨, 작년 3월 제주도로 이주하게 되었던 것이다.

들개가 걱정되긴 했지만, 밀린 방학숙제가 무섭다고 노는 걸 미루지 않았던 사람으로서 그건 일단 모른 척하기로 했다. 결국 무작정 이주한 다음날, 집 바로 앞에서 무리지어 다니는 들개 세 마리를 마주치게 되었다. 금배를 얼른 안아들고 구석에서 숨죽인 채 그들이 지나가길 기다려야 했다. 그 후로도 가는 곳마다 매일 몇 마리씩 들개와 마주쳤다. 많은 날에는 하루에 세 마리도 넘게 마주쳤다. 물론 갓 이주한 사람들답게 신나게 돌아다닌 탓도 있다. 어쨌든 매일같이 이들과 마주치다보니 처음의 두려움도 조금 희미해졌을 뿐 아니라, 대부분 사람을 피해 도망다니기 바쁘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혹시 몰라 챙겼던 호신용품은 무겁기만 해서 들고 다니지 않게 되었다. 가끔 호기심에 가까이 다가오는 들개도 있었지만 대부분 눈을 부릅뜨고 마주보거나 “가!”라고 하면 후다닥 도망쳤다. 점차 여러 가지 의문을 가지게 되었다. 대체 이 많은 개들은 다 어디에서 오는 것일까? 이 개들은 우리를 스쳐지나가서 어디로 가는 것일까? 제주도에 관광객이 놀러 와서 강아지를 많이 유기한다던데 그러기엔 돌아다니는 개들이 너무 크지 않나? 왜 집집마다 비어있는 개집이 이렇게나 많은 것일까? 지난주까지 마당에 묶여있던 그 개는 왜 안 보일까? 왜 떠도는 개들 중에 목줄을 한 개가 저렇게나 많을까? 목줄이 있다는 건 주인이 있다는 건데 그런 개들도 왜 이렇게 칼같이 안락사시키는 것일까?

이러한 물음을 가진 채 마주치는 들개들의 사진을 찍어 기록하기로 결심했다. 이 결심은 사실 ENFP 인간이 비싼 카메라를 질러버린 뒤에, 뭔가 생산적인 일을 해야 할 것 같다는 압박감을 느낀 것에서 출발했다. 누구든 그런 명분이 필요하지 않은가. 매일 만나는 들개들을 위해 작은 일이라도 해보자는 생각이기도 했다. 사진을 찍어 꾸준히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업로드하다보면, 앞선 의문에 대한 답을 찾을 수 있을 것 같기도 했다. 더 나아가 ENFP 인간은 영화 <뱅뱅클럽> 속의 사진기자 케빈 카터의 이야기를 언급하며, 관찰자로서 철저하게 기록만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우리는 실제로 산책 중에 들개가 돌에 맞는 것을 목격한 적 있었는데, 그런 경우를 또 만나더라도 관여하지 않고 사진만 찍어야 한다고 열을 올리며 주장했다. INTJ 인간은 일단 알겠다고 했다. 어차피 그렇게 되지 않을 건 불 보듯 뻔했지만 신난 ENFP 인간을 말릴 방법은 없다는 걸 오랜 경험을 통해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로부터 며칠 후, 우리는 자주 가던 산책로에서 우연히 도로변에 나와 있는 새끼 강아지를 보게 되었다. 그 아이를 따라 들어간 곳에는, 쓰레기더미에 묶여있는 마당 개들과 새끼 강아지 일곱 마리가 담뱃갑과 참치 캔을 가지고 놀고 있었다. 묶여있는 개와 근처를 지나던 들개 사이에서 태어난 강아지들이었다. 주인이 포기한 그 아이들을 좋은 곳에 입양 보내야 한다는 생각에 사진을 찍었고, 이름을 붙였다. 이른바, 국내 최초 강아지 아이돌 그룹 ‘제주탠져린즈!’ 반려견 데뷔 준비 중이라는 연습생 콘셉트까지 더한 입양 홍보 프로젝트였다. 관찰자로서 기록만 할 것이라는 다짐은 잊은 지 오래였다. 어쨌든 그 강아지들의 입양 홍보를 위해 찍은 사진이 흥행하여 꽤나 이슈가 되었으니, 이러나저러나 카메라는 제 역할을 해낸 셈이다. 그렇게 우리는 이 들개의 새끼들과 함께 제주도로 이주한 지 1년 만에 서울을 찾았다. 그것도 ‘제주탠져린즈’ 서울 팬미팅을 위해서였다.

“서울로 돌아오게 되면 들개 때문이지 않을까?”라는 말이 예언처럼 들어맞게 된 것이다.



[우당탕탕 귤엔터]올레길·해변길 떠도는 개들…그들을 위해 사진기를 들었다

▶귤엔터 이사진 : 구낙현·김윤영·금배

MBTI가 ENFP인 사람, INTJ인 사람, 그리고 말이 없는 강아지 금배로 이루어진 팀이다. 매일 산책하는 금배와 더 행복하게 걷기 위해 최근 제주로 이주했다. 걷다가 만난 마당개와 들개의 새끼들을 길거리캐스팅하며 ‘제주탠져린즈’라는 반려견 연습생 그룹을 꾸렸다. 지금은 이들의 소속사 귤엔터로서 반려견으로 데뷔시키기 위해 불철주야 노력하고 있다. 강아지 금배와 걸으며 만난 제주의 자연과 개 이야기를 들려드리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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