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덕꾸러기 마당살이…견생역전의 날 올까요?”

귤엔터 이사진 : 구낙현·김윤영·금배

널브러진 고철에 다치고, 이웃들 가시돋힌 말에 치이고…

‘시고르자브종(시골잡종)’의 회고록

저는 제주탠져린즈의 엄마견 ‘감귤’입니다

‘제주탠져린즈’ 일곱 강아지의 모견 감귤이(두 살 추정)는 파보바이러스에 감염됐지만 수의사조차 믿지 못할 만큼 씩씩하다. 아직 쓰레기더미에서 생활하며 차도를 지켜보고 있다.

‘제주탠져린즈’ 일곱 강아지의 모견 감귤이(두 살 추정)는 파보바이러스에 감염됐지만 수의사조차 믿지 못할 만큼 씩씩하다. 아직 쓰레기더미에서 생활하며 차도를 지켜보고 있다.

내가 이 마당에서 살기 시작한 건 2년 전쯤 더위가 한창 기승을 부리기 시작한 때였다. 그때는 아직 너무 어려서 모든 기억이 단편적으로만 남아있다. 내가 태어난 건 어느 식당 뒷마당. 어느 날 식당 아주머니가 낯선 할아버지에게 나를 들어 건네주고는, 엄마의 목줄까지 억지로 쥐여주었다. 우리의 새로운 주인인 이 할아버지는 동네에서 개를 좋아하기로 소문난 사람이었다. 엄마는 황색 털에 검정 반점이 있었고, 나는 사람들 말마따나 ‘그냥 백구’였다. 그는 원래 어린 나만 데리고가려 했지만 무늬가 특이하고 멋지지 않으냐며 엄마까지 같이 데려가라는 성화 때문에 우리 두 모녀가 마당에 나란히 자리 잡게 되었다.

우리가 도착한 마당에는 아무렇게나 넘어져있는 가구 뒤로 다른 개가 이미 묶여 있었다. 그 개는 낯을 가리고 소심해서 언제나 구석에서 눈알을 굴리곤 했다. 언젠가 주인 할아버지가 하는 말을 들었는데, 새끼 때 꼭 도사견을 닮아 아무도 데리고가려 하지 않아 데려왔다고 했다. 그냥 주겠다는 걸 그럴 순 없다며 한국 돈 1만원과 일본 돈 1엔을 주고 데려왔다며 웃었다. 할아버지는 그 개를 ‘일용’이라고 불렀다. 사람들은 일용을 보고 무섭게 생겼다고 했지만, 사람들이 다가가도 못 본 척 자리를 피하는 그 소심한 개를 보고 왜 무섭다고 하는지 나는 이해가 되지 않았다. 운이 좋은 날엔 태권도학원 차에서 내린 어린이들이 우르르 몰려와 나를 쓰다듬고 놀아주었다. 이들은 때때로 나를 안고 나가 동네 모험을 시켜주기도 했다. 내가 몸집이 커지자 할아버지는 나를 엄마 옆에 묶어놓았고, 모험은 더 이상 못하게 되었지만 여전히 그들은 가끔 나를 찾아와 쓰다듬고 안아주었다.

열악한 환경에서도 열렬히 사람을 반기던 탱자는 며칠 전 무지개다리를 건넜다.

열악한 환경에서도 열렬히 사람을 반기던 탱자는 며칠 전 무지개다리를 건넜다.

식당 뒷마당서 태어난 백구 ‘나’
2년 전, 새 주인 할아버지 따라와
쓰레기더미 뒤덮인 마당에서 생활

산책 나간 어미의 소식은 끊기고
점점 열악해지는 생활환경 탓에
함께 살던 식구들 죽거나 병들어
우연히 만나게 된 귤엔터‘두 언니’
내 새끼 7마리의 안식처 찾아줘
세심하게 치료·입양 준비 등 도움
나도 누군가의 의미가 될 수 있을까

어느 날은 묶여있던 엄마의 줄이 풀렸다. 우리 마당 앞으로 하루에도 몇 번씩 동네 개들이 지나가는데, 얼씬도 하지 말라고 평소처럼 몸을 던지며 호통을 치던 엄마의 줄이 순간 풀려버린 것이다. 종종 내 줄도 풀린 적이 있었지만 나고 자란 마당 밖으로 나가는 것이 두려워 마당을 벗어나지 못했던 나와 달리 엄마는 줄이 풀리자 동네를 탐험하기 위해 떠났다. 늦은 밤이 되어서야 피곤한 얼굴로 온몸에 신기한 냄새를 잔뜩 묻히고 온 엄마는, 주인 할아버지가 퍼둔 밥을 먹고 쿨쿨 잠을 자다가 사람들이 움직일 시간이 되면 다시 산책을 떠났다. 깜빡 깊은 잠이 들었던 날 눈을 떠보니 엄마는 사라져 있었고 그 뒤로 다시는 볼 수 없었다. “너희 엄마 보신탕 집 갔어.” 어느 날 동네 아저씨가 진짜인지 모를 소식을 전해주었을 뿐이다.

[우당탕탕 귤엔터]“천덕꾸러기 마당살이…견생역전의 날 올까요?”

그 뒤로 계절이 몇 번 바뀌었고 일용이 새끼 5마리를 낳았다. 그 전에도 몇 번 새끼를 낳고 젖을 먹이는 걸 보았던 터라 놀랍지 않았다. 주인 할아버지는 묶여 지내기만 하는 개가 왜 이렇게 자주 임신하는 것인지 모르겠다고 혀를 찼다. 동네에는 돌아다니는 개들이 심심찮게 있었고, 우리 마당은 그 개들이 오고 가는 길목이었다. 일용은 묶여있던 탓에 피할 길 없이 새끼를 배고 낳는 것을 반복했다. 이전에는 작고 어린 새끼들을 아는 사람들에게 나눠주기도 했지만, 이런 일이 자주 반복되다보니 아무리 작고 어려도 데려가려는 사람이 나타나지 않게 된 것이다. 다섯 새끼 중 하나만 누군가 데려가고, 나머지 넷은 마당을 돌아다니며 지냈다. 며칠 지나지 않아 밤에 마당으로 후진해 들어오는 차에 한 마리가 치였다. 어떤 사람이 병원으로 급히 데려갔으나, 가는 길에 죽었다며 다시 들고 돌아왔다. 그리고 그 죽은 새끼를 마당 한쪽에 묻었다. 남은 새끼 셋은 자라나 나와 같이 마당에 묶여 지내게 되었다.

묶인 개가 늘어나자 주민들이 주인 할아버지에게 언성을 높이는 일이 잦아졌다. 쓰레기와 고물을 잔뜩 쌓아둔 걸 겨우 치워 한숨 돌리나 했더니, 이제 거기에 온갖 똥개를 들여오고 먹고 싸는 걸 치우지도 않으면 도대체 여기 어떻게 살라는 거냐며 소리를 질렀다. 그중에는 집세를 더는 내지 않겠다고 과격하게 항의하는 사람과, 밤마다 우리가 마당을 지키는 소리에 스트레스를 받는다며 이사를 가는 사람도 생겨났다. 그들 말처럼 마당에는 온갖 고물이 우리의 배설물과 함께 널브러져 있었다. 아무렇게나 놓여있던 거울은 넘어지며 깨져 우리를 할퀴었고, 텃밭에서 넘어온 흙과 우리의 배설물, 동네 사람들이 우리에게 주고 남은 음식물이 썩은 채 마당에 뒤엉켜 악취가 풍겼다. 사람들이 할아버지를 만날 때마다 항의하자, 그는 사람들에게 자기 감귤 농장에 우리를 다 옮기고 싶은데 아내가 반대한다고 변명했다. 농장에도 개가 8마리나 더 있는 데다 서울 사는 아들이 분양받은 조그만 반려견을 야근으로 돌보지 못하니 농장에 데려다 놓겠다고 하는 터라 시끄러워서 그렇지 조만간 해결을 보겠다고 했다.

파보바이러스로 입원 치료 중인 조생이를 비롯, 순한 강아지들의 임시 보호처를 찾고 있다.

파보바이러스로 입원 치료 중인 조생이를 비롯, 순한 강아지들의 임시 보호처를 찾고 있다.

마당의 말다툼이 지지부진하게 흘러가는 가운데 날이 차가워질 무렵 나도 새끼 7마리를 낳았다. 출산 전까지의 상황에 대해선 다시 떠올리고 싶지 않다. 그날 밤의 일로 송곳니가 빠졌고 콧등에 선명한 상처까지 생겼다. 새끼들은 그래도 대체로 건강하게 자랐다. 동네 사람들은 나와 새끼들을 보고 혀를 찼다. 소유권 포기나 동사무소와 같은 단어들이 자주 들렸다. 농장 개들도 새끼를 낳아 말농장을 한다는 이가 큰 트럭에 개들을 다 실어갔는데, 그 사람에게 우리도 보내고 싶지만 연락처를 알 수 없다고 했다. 내 새끼들도 운이 좋아 살아남으면 나처럼 이 마당에서 주는 밥을 먹으며 살게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야기가 달라진 것은 어느 날 도로가에 위험하게 놀고 있던 새끼들이 낯선 언니 둘을 마당으로 이끌어오며 시작되었다. 그들은 새끼들을 하나씩 자세히 살펴보는가 싶더니, 사진을 찍고 간식을 잔뜩 주고는 7마리를 모두 싣고 사라졌다. “새끼들 가족 찾아주고 다시 돌아올게”라는 알 수 없는 말과 함께.

길고 지루하고 추운 겨울을 견뎠고 막 날이 따뜻해질 무렵, 그들은 다시 나타났다. 나와 마당에 같이 묶여 지내는 친구들에게 이름을 붙여 부르기 시작했다. 나는 감귤, 그리고 소심한 일용에겐 온주, 그 개가 낳은 세 마리에겐 자몽·조생·탱자라는 이름을. 가끔 사람들은 나를 백구나 삼용이나, 아무렇게나 부르곤 했다. 사실 이름이야 어떻든 무슨 상관이 있을까. 그 언니들 손에 이끌려 우리는 차례로 병원에 다녀왔다. 낯선 차, 낯선 동네를 거쳐 병원 주변을 조금 걸어보기도 했다. 곧 수술을 마치고는 무척 아팠지만 모든 낯선 것이 황홀했다. 잊은 줄만 알았던, 어릴 적 아이들 품에 안겨 동네를 모험할 때 보고 맡았던 풍경과 냄새가 선명히 떠올랐다. 신선한 풀 냄새, 푹신한 흙의 촉감, 길 위에 어지럽게 흩어져 있는 낯선 사람들의 체취, 먼 바다에서 불어오는 아득한 내음.

병원에 다녀온 후 나는 다시 마당으로 돌아왔다. 차가운 집으로 웅크리고 들어가 긴 꿈을 꿨다. 푹신한 잔디에 질릴 때까지 뒹굴어보고 싶어. 숨이 찰 때까지 뛰어보고 싶어. 그러다 기진맥진한 채로 숨을 고르며 쉬고 싶어. 아무도 방해하지 않는 곳에서 까무룩 잠을 자보고 싶어. 마당에 묶여 있는 나의 친구들과 꼬리를 흔들며 인사하고 싶어. 몸을 부딪치며 놀고 싶어. 먹어도 배가 아프지 않은 음식을 먹고 싶어. 낯선 개가 함부로 내게 다가오지 않았으면 좋겠어. 사람들이 코를 찌푸리는 악취가 아니라 쓰다듬어주고 싶은 냄새가 났으면 좋겠어. 그래서 너무 추운 날은 내게도 누군가 온기를 나눠줄 수 있도록. 골칫거리가 아니고 나도 누군가에게 의미이고 싶어.

며칠 전 탱자가 죽었다. 날이 따뜻해져 그래도 마당에서 시간을 보내기 좋아졌는데, 기운이 없다 싶더니 비가 오던 날 밤 그대로 고꾸라져 깨어나지 못했다. 다음날 언니들이 비에 젖어 차갑게 식은 탱자를 발견했다. 한동안 빗속에 서서 말이 없던 언니들은, 태어나 마당이 전부였던 아이를 죽어서까지 이 마당에 묻을 수는 없다며 탱자를 데리고 나갔다. 어제는 시름시름하던 조생이가 혈변을 싸더니 주저앉았다. 다행히 금방 도착한 언니들이 그 길로 조생이를 데리고 나갔다. 나에게도 밥을 왜 먹지 않는지 한참 걱정을 하더니 병원에 억지로 끌고 갔다. 나도 탱자나 조생이와 똑같은 병에 걸린 것 같고, 미안하지만 조금 더 이 마당에서 버텨달라고 했다. 언니들 손에 이끌려 병원을 오가며 숨 가쁘게 맡은 마당 밖 세상은 짜릿했다. 세상은 봄 내음으로 가득했다. 이 마당에도 매번 어딘가에 봄꽃이 피곤 했다. 아마 곧 볼 수 있을 것이다.

결국 나도 탱자처럼 죽어서 이 마당을 벗어나게 될까?

아니야. 그렇지 않을 거야. 나는 죽지 않을 거야. 어떻게든 살아낼 거야. 밥을 먹으며 살아내야지. 기쁨의 꼬리춤을 멈추지 않을 거야. 그래서 이 마당을 벗어날 거야. 끝도 없이 이어진 꽃나무 사이를 질릴 때까지 걸어볼 거야. 숨이 차도 뒤돌아보지 않을 거야.

▲이 이야기는 ‘제주탠져린즈’의 모견, 방치된 마당개 ‘감귤이’의 관점에서 주민들의 증언을 토대로 재구성한 이야기입니다. 방치견 네 마리는 최근 중성화 수술을 완료하였고, 파보바이러스와 심장사상충 치료 후 가족을 찾아줄 계획입니다.



[우당탕탕 귤엔터]“천덕꾸러기 마당살이…견생역전의 날 올까요?”

▶귤엔터 이사진 : 구낙현·김윤영·금배

MBTI가 ENFP인 사람, INTJ인 사람, 그리고 말이 없는 강아지 금배로 이루어진 팀이다. 매일 산책하는 금배와 더 행복하게 걷기 위해 최근 제주로 이주했다. 걷다가 만난 마당개와 들개의 새끼들을 길거리캐스팅하며 ‘제주탠져린즈’라는 반려견 연습생 그룹을 꾸렸다. 지금은 이들의 소속사 귤엔터로서 반려견으로 데뷔시키기 위해 불철주야 노력하고 있다. 강아지 금배와 걸으며 만난 제주의 자연과 개 이야기를 들려드리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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