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랜스젠더를 병리현상으로 봐선 안 돼”

주영재 기자

영국의 작가 숀 페이에게 듣는다

<트랜스젠더 이슈>의 작가이자 팟캐스트 <콜 미 마더>의 진행자, 성소수자 인권단체 스톤월의 활동가로 일하는 숀 페이 / Paul Samuel White

<트랜스젠더 이슈>의 작가이자 팟캐스트 <콜 미 마더>의 진행자, 성소수자 인권단체 스톤월의 활동가로 일하는 숀 페이 / Paul Samuel White

정치인의 성평등 인식을 묻는 것이 한국의 상황이라면, 영국에선 최근 수년 사이 트랜스젠더(성별정체성이 본인이 태어났을 때 지정받은 성별과 일치하지 않는 사람들)에 관한 정치인의 입장을 묻는 것이 유행처럼 번졌다. 영국에서 트랜스젠더가 미디어에 등장해 의견을 제시하는 일이 많아지면서 트랜스젠더의 ‘가시화’가 두드러졌다. 모난 돌이 정 맞는다고 더 심한 조롱과 차별의 대상이 되는 측면도 분명 있다. 트랜스젠더가 존재를 드러낼 수 있게 된 분위기만으로 차별까지 없어졌다고 보는 건 크나큰 착각이다.

영국은 트랜지션(트랜스젠더가 자신의 성별정체성에 맞게 사회적 성별을 변화시키는 과정)을 위한 호르몬 요법과 외과적 수술의 일부를 국민건강보험(NHS)으로 보장한다. 보건의료 측면에서 우리보다 앞선 면이 있지만 차별과 혐오 문제에서는 비슷한 고민을 안고 있다. 미성년자인 트랜스젠더가 느끼는 젠더 디스포리아(성별 위화감)를 인정하지 않거나 그에 맞는 치료를 받기 어려운 문제, 적절한 치료를 받지 못한 채 성인이 돼 실업과 가난의 악순환을 겪는 문제는 한국과 마찬가지다. 양로원에 들어간 트랜스젠더들이 다시 출생 시의 성별로 취급당하거나 관리자나 수용자들에게 학대·소외당하는 문제는 고령화 속도가 빠른 한국에서도 충분히 발생할 수 있는 일이다.

영국의 작가이자 성소수자 인권단체 스톤월의 캠페이너로 활동하는 숀 페이는 트랜스젠더가 겪는 문제가 노동계급 일반이 겪는 현상과 유사하다고 봤다. 차별과 불평등을 해결할 열쇠로 ‘해방’과 ‘정의’를 강조하는 까닭이다. 그는 최근 한국어로 번역된 저서 <트랜스젠더 이슈>(돌베개)에서 ‘트랜스젠더 평등권’ 같은 소박한 목표로는 부족하다면서 “트랜스인이라면 자본주의적이자 가부장적이며 그 안에 사는 사람들을 착취하고 모멸하는 이 세상에서 평등한 존재가 되기를 바라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그는 트랜스젠더가 겪는 불평등은 ‘시스젠더’(트랜스젠더가 아닌 사람)도 경험하는 것이며, 다른 소수자 집단이 경험하는 것과 같은 불평등임을 깨달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트랜스젠더의 건강권 보장과 차별 해소를 위한 해법을 숀 페이와의 e메일 인터뷰로 들었다.

-트랜스젠더의 건강을 위협하는 원인은 무엇인가.

“어릴적 학교에서의 따돌림과 사회적 배제, 가족과 지역 사회에서 자신의 정체성이 거부당할 수 있다는 불안감, 직장에서의 차별과 배제, 친밀한 사람에 의한 학대 등을 들 수 있다. 특히 직장 내 차별은 트랜스젠더가 빈곤을 경험할 가능성을 높인다. 의료환경에서의 차별과 결합할 경우 신체건강에 있어서도 장기적인 문제를 겪을 수 있다.”

-영국에서 의료적 트랜지션을 시작할 때까지 최소 3~4년을 기다린다.

“일반적으로 트랜지션은 정신과 또는 심리학 배경 지식을 가진 임상의가 운영하는 전문 ‘성정체성 클리닉’에 국한된 ‘전문가’ 영역으로 간주된다. 환자는 치료에 대한 접근이 허용되기 전 여러차례 그들의 개인사와 관련해 치료와 관련 없는 질문을 많이 받는다. 이는 트랜스젠더를 병리적 현상으로 바라보는 것이자 긴 대기열을 만드는 불필요한 방해가 된다. 우리가 찾은 해법은 트랜지션 조치를 복잡한 전문 분야로 취급하는 것을 중단하고 보다 유연한 치료 모델을 갖는 것이다. 일반 개업의와 (해당될 경우) 내분비 전문의가 안전한 호르몬 수치와 같은 건강지표를 모니터링하는 데 집중하면 된다. 트랜스젠더가 되는 것은 마음의 장애가 아니다. 모든 사람은 자신의 성별을 스스로 결정할 권리가 있다. 젠더의 병리화에 뿌리를 둔 모든 분야의 역할은 폐지돼야 한다.”

-외과 수술로 생식능력이 없어졌다는 의사 소견이 성별 정정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

“성별 승인 전 의사의 소견을 요구하는 건 국가가 트랜스젠더 당사자의 말을 신뢰할 수 없는 것으로 간주하기 때문이다. 트랜스젠더의 마음을 볼 수 없는 의사가 왜 그러한 권력의 자리에 앉았는지, 그리고 왜 트랜스젠더는 의사가 듣길 원한다고 생각하는 것을 의사에게 말해야 하는지 고민해야 한다. 이런 상황의 이점은 의료기관을 통해 젠더의 경계를 통제할 수 있다고 시스젠더 사회를 안심시키는 것밖에 없다.”

-일찍부터 사회적 트랜지션을 할 경우의 이점이 있는가.

“개인이 결정할 문제지만 어렸을 때 트랜지션을 하면 자신의 (출생 당시) 성으로 겪는 고통을 상당히 완화하리라 기대할 수 있다. 아동은 자신이 이분법적인 젠더에 속하지 않는다고 표현할 때 ‘어른들로부터 처벌과 배제를 당하지 않을까’라는 공포를 느낀다. 건강한 사회라면 아이들이 그들의 젠더로 더 편안하게 살아가는 방법을 찾도록 허용해야 한다. 어떤 경우엔 ‘완전한’ 사회적 트랜지션을 요구하지만 큰 사회적 위험을 감수하지 않고도 젠더 유동성(자신이 동일시하는 젠더가 달라질 수 있다는 의미)이나 (성별 정체성) 탐색을 허용하는 것으로 충분할 수 있다. 궁극적으로 트랜지션의 이점은 고통을 완화하고 삶을 더 온전히 추구할 수 있다는 거다.”

-2018년 영국 정부는 전국 단위 LGBT(성적소수자) 조사를 했다. 실태 파악이 중요한 이유는.

“당시 조사는 일회성이었다. LGBT 권리가 퇴보하는 영국에서 더 나은 데이터에 대한 필요성은 그 어느 때보다 시급하다. 차별을 정당화하기 위해 트랜스젠더의 현실을 최소화하고 지우려는 지속적인 시도가 있다. 이런 ‘삭제’를 방지하려면 정확한 데이터 확보가 중요하다.”

-트랜스인의 해방과 정의를 강조했다.

“평등과 인권은 트랜스젠더의 대의를 발전시키기 위한 중요한 틀이다. ‘해방’은 한걸음 더 나아가 자본주의와 사회계급, 가부장제, 인종차별주의와 국경선 같은 더 넓은 체제에 도전하는 것이다. 이 모든 것은 트랜스젠더를 포함해 전 세계 수많은 사람을 해하고, 착취한다. 이미 타락한 시스템에서의 평등은 만족스러운 최종 목표가 아니다. 종종 다른 사람을 착취할 것을 요구하는 생활방식에 동화되는 것처럼 보인다. 트랜스 해방은 모든 형태의 압제를 살펴보는 데서 시작해 엘리트의 이익을 보호하기 위해 사람들을 궁핍하게 만드는 모든 형태의 지배와 폭력의 체제에 도전하는 ‘연합의 정치’를 찾는 것이다.”

-페미니즘과 연대할 수 있는 기반이 있다면.

“트랜스젠더 해방과 여성 해방은 근본적으로 같은 투쟁의 두가지 표현이다. 둘 다 위계(남성의 여성 우위)를 재생산하기 위해 고정된 이분법적 젠더(남성과 여성)를 요구하는 가부장제 시스템에 도전하고 있다. 이분법적 젠더에 도전하는 것은 위계 구조에 도전하는 것이고, 그 반대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남성이 여성보다 선천적으로 우월하지 않은데도 이들이 사회·경제·정치적 권력을 계속해 행사할 수 있는 것은 다른 원인이 있기 때문이다. 이는 여성을 동료 시민으로 보지 않는, 고의로 만들어진 ‘소원함’의 감정과 그로 인해 여성에 대한 폭력을 직접 혹은 국가폭력을 통해 행사할 수 있는 일종의 ‘면허’라고 인식하는 데서 기인한다. 트랜스젠더의 존재 또한 이런 소원함이 지속적으로 재생산되고 사람들에게 부과된다는 점을 폭로하는 역할을 한다. 가부장제는 트랜스젠더를 폭력과 자율권 제한으로 처벌해야 한다고 요구한다. 결국 두가지(트랜스젠더 해방과 여성 해방)는 연속적이다. 협력해야 잘 작동하는 형제간의 투쟁으로 받아들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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