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향포럼

“난 닥터 둠 아닌 ‘현실주의자’…직면한 위협 외면하면 추악한 미래”

뉴욕 | 안호기 사회경제연구원장 정리 김경학·이창준 기자

28일 기조강연하는 누리엘 루비니 뉴욕대 명예교수

너무 높은 인플레와 금융 위기 등
고금리 여파로 부채 위기도 ‘곧’
‘초거대 위협’ 서로 융합할 수도

누리엘 루비니 뉴욕대 스턴경영대학원 명예교수가 지난달 3일 미국 뉴욕의 한 카페에서 경향신문과 대담하고 있다. 뉴욕 | 이창준 기자

누리엘 루비니 뉴욕대 스턴경영대학원 명예교수가 지난달 3일 미국 뉴욕의 한 카페에서 경향신문과 대담하고 있다. 뉴욕 | 이창준 기자

‘닥터 둠(Dr. Doom).’ 누리엘 루비니 뉴욕대 스턴경영대학원 명예교수(64)의 이름 앞에 항상 붙는 수식어이자 그의 별칭이다. 그는 지난해 10월 책 <초거대 위협>을 통해 또 한 번 강한 경고의 목소리를 냈다. 이대로 가다간 스태그플레이션, 팬데믹 기간 폭증한 민간과 공공 부채, 고조되는 지정학적 갈등, 탈세계화와 보호무역주의, 기후위기, 질병, 전쟁 등 말 그대로 초거대 위협들이 서로 융합해 사상 최악의 경제 재앙이 도래할 수 있다고 예측했다.

루비니 교수는 오는 28일 <2023 경향포럼>에서 기조강연을 하기 위해 한국을 찾는다. 그는 ‘성장을 넘어 - 모두의 번영을 위한 새로운 모색’을 주제로 열리는 <2023 경향포럼>에서 현재 세계가 직면한 위기를 진단하고, 새 패러다임의 필요성에 대해 강연한다. 강연에 앞서 지난달 3일 미국 뉴욕에서 루비니 교수를 직접 만나 대담을 진행했다.

루비니 교수는 “서로 얽히고설킨 위협들을 제어할 정치적 능력이나 의지가 없게 됐을 때, 매우 추악한 미래로 이어져 경제적, 금융적 위기뿐 아니라 지구에도 심각한 피해를 줄 것”이라고 말했다. ‘닥터 둠’에 걸맞은 현재 위기 상황에 대한 냉철한 평가다. 갈수록 심화하는 다양한 위협과 문제들에 대한 해법도 제시했다. 그는 “전 세계의 공동선을 위해 단기적으로 어느 정도 희생을 감수한다면 충분히 해결할 수 있다”고 조언했다. 루비니 교수는 특히 문제 해결을 위해 정부의 의지, 역할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다음은 루비니 교수와의 주요 문답.

- ‘닥터 둠’이라는 별칭으로 잘 알려져 있다.

“나는 ‘닥터 둠’이 아닌 ‘닥터 현실주의자’라고 말한다. 지구를 침략하는 외계인이나 지구에 충돌하는 소행성의 위협 등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다. 기후변화부터 지정학적 긴장, 경제 금융 위기, 팬데믹, 탈민주주의나 탈세계화 등과 관련한 위협들은 매우 현실적인 위협이다.”

- 우리가 가장 먼저 직면할 위협은.

“우선 단기적으로는 너무 높은 인플레이션과 너무 낮은 성장에 대해 우려해야 하지 않나 싶다. 중앙은행들은 인플레이션과 싸우기 위해 금리를 인상하고 있지만, 민간과 공공 부채가 높아진 상황에서 이자 부담은 더 커지고 있다. 부채 위기도 우리가 곧 직면할 위협이라고 본다.”

- 언급한 초거대 위협들이 모두 현실화될까.

“두 가지 시나리오가 있을 수 있다. 하나는 모든 위협이 현실화되는 경우다. 서로 얽히고설킨 위협들이 더 심화하고 우리가 그 위협들을 제어할 정치적 능력이나 의지가 없게 됐을 때다. 이는 매우 추악한 미래로 이어져 경제적, 금융적 위기뿐 아니라 지구에도 심각한 피해를 줄 것이다. 다른 하나는 디스토피아가 아닌 유토피아적인 시나리오다. 우리가 위협들을 하나씩 해결하기 시작하는 경우다. 운이 따라야 하겠지만 기술 혁신으로 일부 문제를 해결하고, 더 나은 균형으로 나아가게 되는 시나리오다.”

- ‘이제 성장 시대는 끝났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다. 선진국들이 제로 성장 혹은 마이너스 성장으로 돌입할 가능성이 있을까.

“미국이나 유럽, 한국과 같은 성숙한 경제 모델에 도달한 국가들은 낮은 잠재성장률을 보인다. 인구의 노령화가 잠재적 성장을 축소시키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인구 감소 추세와 높은 인구당 소득에도 불구하고 생산력을 높인다면 여전히 왕성하게 성장할 수 있다. 생산력 제고는 노동 기술, 기술 혁신, 혁신에 대한 투자, 크게 성장할 미래 산업에서 경쟁적 비교우위를 갖추는 것에 달려 있다.”

- 기존의 성장률을 측정하는 수단으로 국내총생산(GDP)이 있는데 ‘앞으로는 성장 패러다임을 바꿔야 한다’ ‘양적인 성장을 측정하는 지표 대신 질적 성장을 측정하는 새로운 지표가 필요한 것 아니냐’ 하는 의견들도 나온다.

“GDP나 GDP 성장률은 성장 척도를 완전하게 측정하지 못한다. 평등과 관련된 요소 등을 고려하지 않기 때문이다. 필요에 따라 지표를 개선해나갈 수도 있다고 본다.”

- 자본주의 이후 체제에 대해 구상해본 적이 있나.

“최선의 경제 체제의 한 축은 시장경제여야 한다. 그걸 자본주의라고 하면 다른 한 축은 정부다. 정부가 다양한 공공 서비스를 제공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해야 한다. 그리고 정부는 시장경제가 잘 운영될 수 있는 제도적 틀, 산업이나 금융 등에 대한 적절한 감독과 규제를 제공해야 한다. 금융위기와 사회적 불평등을 야기하는 순수한 자유방임주의적 서구 자본주의는 위험하다. 사회주의와 공산주의는 역사적으로 실패한 체제다. 따라서 최선의 경제 체제는 혼합경제 체제일 것이다. 대부분의 경제활동은 민간 부문, 기업가, 혁신 등에서 나온다. 그러나 정부 없이는 안 된다. 정부는 다양한 공공재를 공급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 정부가 나서는 건 일종의 사회주의 아닌가.

“모든 선진국뿐 아니라 성공한 신흥국 한국도 혼합경제 체제다. 대부분의 북유럽 국가는 소득과 부에 대한 높은 과세와 모든 공공 서비스가 정부 주도로 매우 광범위하게 제공되는 체제다. 미국은 정부의 역할이 약간 작고 민간 부문의 역할이 더 큰, 조금 다른 형태의 혼합경제 모델이다. 이처럼 혼합경제 체제라고 부르긴 하지만 정부의 크기와 지출, 과세 수준에 따라 다양한 모델이 있다. 어떤 모델이 가장 잘 작동하는지는 국가에 따라 달라지기 때문에 하나로 일반화할 수는 없다.”

한국서 비판하는 미국 IRA 대응
지정학적 긴장이 부른 탈세계화로
‘안전한’ 무역을 더 중시하기 때문

- 미국이 인플레이션감축법(IRA) 같은 것으로 다른 나라를 압박하는 측면이 있다. 한국에서는 미국이 ‘경제 악당’이 되어가는 것 아니냐는 비판도 나오고 있는데.

“우리는 불행하게도 지정학적 긴장 속에 살고 있다. 지정학적 긴장이 탈세계화, 세계 경제의 분열, 미국과 중국 간의 분리, 글로벌 공급망의 분리 위험으로 이어지고 있다. 어느 정도는 지금보다 더 파편화되고 덜 개방적인 글로벌 무역 시스템이 도래할 것이라는 점은 받아들여야 할 것으로 보인다. 왜냐하면 우리는 단지 자유무역이 아니라 안전한 무역, ‘프렌드쇼어링’(우호 동맹국끼리만 공급망을 구축하는 것)을 더 중시하고 있기 때문이다.”

- 불평등이나 빈부격차를 해소하기 위해 보편적 기본소득 혹은 자본소득 등을 도입해야 한다고 제안한 바 있다.

“국제통화기금(IMF) 연구 결과, 소득과 부의 불평등은 결국 사회분쟁으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아 경제성장률을 낮춘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계몽된 자본가라면 누구나 사회복지 시스템을 만들고, 어느 정도 합리적이지만 과도하지 않은 누진세를 만들어 재분배가 필요하다는 걸 인지하고 있다. 과도한 불평등은 결국 사회적 기능 장애로 이어질 뿐 아니라 경제 성장을 더 약화시키기 마련이다.”

- 물리적으로 가장 큰 위협 중의 하나가 전쟁이다. 우크라이나 외에 대만이나 북한 등지에서 위기감이 고조되고 있다. 새로운 전쟁이 발발할 가능성은 있다고 보는지.

“우리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스라엘과 이란 등 중동의 긴장이 높은 ‘지정학적 불황’의 시대에 살고 있다. 그러나 아시아에서는 전쟁이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아시아에서 긴장이 고조되는 건 한국, 일본, 인도는 물론 중국과 심지어 미국에도 이익이 되지 않는다. 전쟁이 일어난다면 세계 경제 파탄뿐 아니라 지구 파괴, 핵전쟁, 핵겨울과 같은 결과로 이어지기 때문에 실제 일어나지는 않을 것이라 믿는다. 싸움은 언제나 있을 수 있다. 그러나 그 싸움에서 승자는 없을 것이다.”

- 조금 더 구체적으로, 미국과 중국 간의 경제 전쟁은 어떤 방식으로 해결하는 것이 바람직한가.

“양측이 먼저 서로 대화를 시작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중요한 건 냉전으로 심화하지 않고, 완전하게 탈동조화하지 않는 방식으로 관리해야 한다는 것이다. 쉽지는 않겠지만, 아마도 가능할 것이라 생각한다.”

- 결론적으로 미국과 중국의 갈등, 동아시아의 지정학적 위험이 관리될 것으로 전망하는 건가.

“당장은 내가 말한 방향으로 가지는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미국은 이제 대선 주기라 민주당과 공화당 모두 중국에 강경하고 공격적으로 보이기 위해 소음을 낼 것이기 때문이다. 중요한 건 점점 더 고조되는 건 피해야 한다는 점을 이야기하고 싶다.”

포럼서는 해결책 등 이야기할 것
‘제로섬’ 게임 아냐…협력하면 돼
공동선 위해 단기적 희생 감수해야

- 오는 28일 <2023 경향포럼>에서 어떤 이야기를 할 것인가.

“<초거대 위협>에서 언급한 위협 중 몇가지를 중심으로 구체적으로 이야기할 것이다. 위협을 강조하는 게 아니라 모든 문제에는 해결책도 있다는 사실을 이야기하고 싶다. 우리는 한 행성에 살고 있다. 제로섬 게임이 될 수 없다. 서방과 그들의 친구, 우호 동맹국이 상대방을 이길 수도 없고 패할 수도 없다. 내가 정리한 많은 위협은 우리가 협력한다면 해결할 수 있는 포지티브섬 게임이다. 우리가 파멸할 것이라 말하는 것이 아니다. 경종을 울리는 것이다. 지난 75년간 유지된 상대적인 평화, 진보, 번영은 당연한 것들이 아니다. 이를 이어가기 위해서는 협력해야 한다. 전 세계의 공동선을 위해 단기적으로 어느 정도 희생을 감수한다면 충분히 해결할 수 있는 과제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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