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위기는 인권의 위기다

송지원 영국 에든버러대 교수

지난 4월9일, 유럽인권재판소는 스위스의 64세 이상 여성 2400여명으로 구성된 ‘기후보호를 위한 노인단체’(KlimaSeniorinnen Schweiz)와 스위스 정부의 기후소송에서 단체의 손을 들어주었다. 기후보호를 위한 노인단체는 기후변화가 여성 노인의 건강권을 위협하고 있으며, 스위스 정부의 기후위기에 대한 미흡한 노력이 인권침해로 이어졌다고 주장해왔다. 특히, 고령 여성이 폭염으로 인해 실내에 머무는 시간이 길어지면서 건강이 악화되었고, 외출 시에도 질병 및 사망의 가능성이 높아지는 등 어려움을 겪었다며 소송을 제기했다. 이에 인권재판소는 스위스 정부가 탄소배출량을 줄이기 위한 적절한 전략을 마련하지 못했다고 밝히며, 이는 유럽인권협약 제8조(사생활과 가족생활을 존중받을 권리)를 위반한 것이라고 판단했다.

이번 판결은 유럽뿐만 아니라 전 세계 다른 지역의 소송에도 영향을 미칠 것으로 예상된다. 유럽인권협약에 포함된 모든 국가는 탄소중립을 목표로 하고 이를 달성하기 위한 조치를 취하고 있음을 입증할 수 있어야 하며, 그렇지 않을 경우 인권을 침해하는 것으로 간주될 수 있다. 현재 유럽인권재판소와 각국 법원에 계류 중인 다른 기후소송도 이 판결의 영향을 받을 것으로 보인다. 노르웨이 정부는 새로운 석유 및 가스 면허 발급과 관련한 문제로 환경단체 그린피스에 의해 유럽인권재판소에 제소되었고, 오스트리아에서는 온도 의존성 다발성 경화증을 앓고 있는 한 남성이 정부의 기후변화 대응이 미흡하다고 유럽인권재판소에 제소한 바 있다. 영국에서도 장애인 권리 운동가가 정부가 기후변화가 장애인에게 미치는 영향에 적극적으로 대응해야 한다고 주장하며, 영국 정부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다. 특히, 그는 자신을 비롯한 다수의 장애인이 기후변화의 영향으로 2022년 폭염이 찾아왔을 때 의도치 않은 ‘동면’을 해야 했다고 주장했다.

미래세대도 기후 문제에 지속적인 관심을 가지고 있다. 2020년 9월 포르투갈 청소년 및 어린이 6명은 미래세대가 산불 재난 등 더욱 강한 기후 피해를 볼 것이라며 생명권 침해를 근거로 유럽인권재판소에 제소하기도 했다. 포르투갈 법원을 먼저 거치지 않았다는 이유로 유럽인권재판소에서는 사건으로 취급되지 않았지만, 젊은 세대의 기후변화에 대한 위기의식을 볼 수 있는 좋은 사례였다. 이번 소송의 판결이 발표된 직후, 재판소 밖에서 기후보호를 위한 노인단체 일원들과 포르투갈 소송에 참여했던 청소년, 스위스 어린이들, 미래세대 기후운동가의 대표 격인 그레타 툰베리가 함께 승리를 축하하는 장면은 기후위기에 대한 노력을 촉구하는 세대 간 연대를 볼 수 있는 아름다운 모습이었다.

우리나라에서도 이와 비슷한 기후진정 및 소송이 진행되고 있다. 지난 3월6일 노년층으로 구성된 ‘60+기후행동’은 정부가 기후위기 대책 마련에 나서지 않아 노년층의 생명권이 침해당하고 있다며 국가인권위원회에 진정을 냈다. 이 밖에도 미래세대인 청소년, 어린이와 학부모들이 주축이 되어 제기된 기후소송들도 진행 중이다. 이번 유럽인권재판소의 판결은 기후위기가 인권침해를 수반한다고 주장하는 소송의 선례를 제시하고 있어 우리나라에서 이어질 기후행동과 기후소송에 큰 영향을 줄 것으로 전망된다.

송지원 영국 에든버러대 교수

송지원 영국 에든버러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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