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건희 여사 축사하는데···” 서울국제도서전서 끌려나간 작가들

김송이 기자

오정희 위촉 항의하던 예술인들

개막식 행사장서 강제 퇴거 당해

김건희 축사에 언론 취재 제한도

14일 개막한 서울국제도서전에서 송경동 시인이 대통령경호법을 위반했다는 이유로 끌려나가는 모습. 송경동 시인 제공

14일 개막한 서울국제도서전에서 송경동 시인이 대통령경호법을 위반했다는 이유로 끌려나가는 모습. 송경동 시인 제공

소설가 오정희가 서울국제도서전 홍보대사로 위촉된 것에 항의하던 예술인들이 도서전 개막식에서 강제로 퇴거당했다. 오 소설가는 박근혜 정부 당시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실행을 주도한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위원이었다.

국내 최대 도서전인 서울국제도서전이 서울 강남구 코엑스에서 14일 개막했다. 한국작가회의, 문화연대 등 문화예술단체는 개막에 앞서 기자회견을 열고 “대한민국 문학과 도서출판을 대표하는 국제행사의 홍보대사로 ‘블랙리스트 실행자’를 선택했다는 사실에 분노한다”고 밝혔다.

회견 직후 송경동 시인과 정보라 작가를 비롯한 참가자 10여명은 개막식에 참석하기 위해 행사장 안으로 발걸음을 옮겼으나 제지당했다.

송 시인은 “저희도 문화예술인이니까 개막식에 참여하러 갔는데 용역깡패같은 사람들이 가로막더니 갑자기 난입해 저를 강제로 연행해서 끌고갔다”면서 “끌고 나가는 이유를 물었더니 ‘대통령경호법을 위반했다’더라”고 말했다. 개막식에는 김건희 여사가 축사를 하기 위해 참석해 있었다. 송 시인은 “블랙리스트 실행자인 오정희씨가 적절하지 않다는 생각을 하는 우리가 그 자리에 있다는 것이 왜 경호법 위반이 되느냐”고 했다.

정윤희 블랙리스트 이후(준) 디렉터는 “개막식 하는 행사장으로 들어가며 피켓팅을 하지 않고 소리도 외치지 않았는데 갑자기 과잉진압이 시작됐다”면서 “본인들이 ‘대통령 경호실’이라고 하면서 ‘VIP 안전을 위해서 하는 것’이라고 했다”고 말했다.

현장에서 상황을 목격했다는 도서전 참가자 원동일씨(53)는 “순수하게 이뤄지는 도서전에도 문화계가 원하지 않는 인사들이 개입하는 등 정치적인 영향력이 행사된다는 것을 보면서 놀랐다”면서 “이에 항의하는 예술가들에게 도서전이란 공간에서 강압적으로 물리력이 행사된 것이 황당하다”고 말했다.

14일 개막한 서울국제도서전 홍보대사로 블랙리스트에 가담한 오정희 소설가가 위촉된 것에 항의하는 참가자가 제지당하는 모습. 블랙리스트 이후(준) 제공

14일 개막한 서울국제도서전 홍보대사로 블랙리스트에 가담한 오정희 소설가가 위촉된 것에 항의하는 참가자가 제지당하는 모습. 블랙리스트 이후(준) 제공

김건희 여사가 축사를 한다는 이유로 일부 언론의 개막식 취재가 제한되기도 했다. 이민우 뉴스페이퍼 편집장은 “8년간 도서전에 참여하면서 문학전문기자가 개막식장에 진입조차 못 하는 건 처음 있는 일이었다”면서 “저를 포함해서 문학기자 6명 정도가 개막식장에 들어갈 수 없었다”고 했다.

경호원에 의해 사진 촬영도 제지당했다는 이 편집장은 “‘못 들어가냐’고 물었더니 출협(대한출판문화협회) 관계자가 ‘여사님 가셔야지 갈 수 있다’고 안내했다”면서 “협회는 어느 곳보다 표현의 자유를 지키기 위해서 노력하는 곳인데 어떤 기자에게만 취재가 허용되는 것이 맞느냐”고 했다.

트위터 등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도 당시 분위기를 담은 목격담이 이어졌다. “지금 김건희가 왔고 항의하는 사람 비명 소리가 들린다” “번역원 예산을 줄이면서도 K북이 어쩌니 하더니 도서전마저 이 꼴이 났다” 등의 반응이 게시됐다. 2023 서울 국제도서전 홈페이지에는 “출판과 출판의 자유는 민주주의를 담는 그릇”이라고 적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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