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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1월 11일 서울 마포구 와우산로  라이브클럽 ‘빵’에서 밴드 ‘강거루’의 베이시스트 이동빈이 연주를 하고 있다.

지난 11월 11일 서울 마포구 와우산로 라이브클럽 ‘빵’에서 밴드 ‘강거루’의 베이시스트 이동빈이 연주를 하고 있다.

객석이 텅텅 비어도 ‘주 5일 공연’은 엄격히 지킨다. 상업적 대관은 하지 않지만 해고노동자 등 사회적 약자를 위한 대관은 주저하지 않는다. 관객들이 내는 입장료 절반은 무대에 오른 뮤지션들에게 반드시 배분한다. 서울 마포구 와우산로29길 12번지. 홍대 일대에서 가장 오래된 라이브클럽, ‘빵’의 정체성을 드러내는 표현들이다.

‘Modern Rock Live Club BBang since 1994’라고 새겨진 입간판에 손으로 쓴 붉은색 글씨를 관객들은 먼저 마주한다. 라이브클럽 ‘빵’(이하 클럽빵) 무대에 오르는 그날의 뮤지션들 이름이다. 대부분은 생소한 이름의 인디음악가들이다. 40평 남짓한 지하 공간, 기타와 드럼의 강렬한 사운드가 귓가를 때린다. 특유의 어두침침한 불빛 너머 조명이 켜진 무대에서 뮤지션들이 준비한 음악을 쏟아낸다. 관객들은 의자에 앉거나 벽에 기대 선 채 맥주를 마시며 공연을 즐긴다.

지난 11월 18일 서울 마포구 와우산로 클럽빵에서  밴드 ‘신타펑크’가 공연을 하고 있다.

지난 11월 18일 서울 마포구 와우산로 클럽빵에서 밴드 ‘신타펑크’가 공연을 하고 있다.

지난 11월 18일 서울 마포구 와우산로 클럽빵에서 밴드 ‘아시아닉’이 공연을 하고 있다.

지난 11월 18일 서울 마포구 와우산로 클럽빵에서 밴드 ‘아시아닉’이 공연을 하고 있다.

클럽빵은 1994년 이화여대 후문 근처에서 복합문화공간으로 운영되다, 2004년 산울림소극장 인근 홍대 거리로 자리를 옮겨 라이브클럽으로 정착했다. 클럽을 운영하는 사람은 ‘홍대 인디문화 지킴이’ ‘빵 사장님’으로 불리는 김영등 대표(54)다. 그는 홍대 일대 다른 라이브클럽과는 달리 수·목요일을 포함한 ‘주 5일 공연’을 고집하고 있다. 평일 공연은 관객이 없어 적자일 때가 많지만 뮤지션들에게 무대에 설 수 있는 기회를 한 번이라도 더 제공하기 위함이다.

지난 11월 18일 서울 마포구 와우산로 라이브클럽 ‘빵’에서 김영등 대표가 공연시작 전 리허설을 지켜보고 있다.

지난 11월 18일 서울 마포구 와우산로 라이브클럽 ‘빵’에서 김영등 대표가 공연시작 전 리허설을 지켜보고 있다.

2019년부터 클럽빵 무대에 오르고 있는 싱어송라이터 박종범씨(31)는 “빵은 인디뮤지션에게 소중한 공연장소다. 경력이 쌓인 아티스트들과 신예 뮤지션들이 세대와 상관없이 어울리고 소통할 수 있는 공간이다. 여기서는 처음 보는 뮤지션들끼리도 서로를 응원한다. 늘 분위기가 좋다”라고 말하며 웃음 짓는다. 그는 가끔 김영등 대표를 대신해 클럽을 운영·관리하는 뮤지션스텝 중 한 명이다.

지난 11월 10일 서울 마포구 와우산로 클럽빵에서 밴드 ‘하지’가 공연을 하고 있다.

지난 11월 10일 서울 마포구 와우산로 클럽빵에서 밴드 ‘하지’가 공연을 하고 있다.

입장료 수입의 절반으로 월세와 인건비, 공과금을 내고 나면 김 대표 몫의 소득은 거의 생기지 않는다. 클럽 운영이 늘 힘겹지만 ‘상업적 대관은 하지 않는다’는 원칙을 고수하고 있다. 하지만 사회적 약자를 위한 대관은 주저하지 않는다. ‘콜트콜택 해고노동자를 위한 수요문화제’가 대표적이다. 2008년부터 10년 동안 매월 마지막 주 수요일에 문화제가 클럽빵에서 열렸다. 기타를 생산하는 노동자들의 힘겨운 복직 투쟁에 기타를 연주하는 밴드와 뮤지션들이 지속적으로 참여하는 연대의 장이 이곳에서 이뤄졌다.

2000년대 초·중반 라이브클럽 전성기 시절엔 늘 30~50명의 관객이 클럽을 찾았지만 이후 하향세를 겪고 있다. 코로나19 팬데믹 시절엔 집합금지조치로 최대 위기를 맞기도 했다. 클럽 운영을 접어야겠다는 생각도 했지만 김 대표는 손해를 감수하고 유튜브 채널을 이용해 뮤지션들 공연을 이어나갔다. 입장료 수입은 전혀 없었지만 지인들의 도움과 소상공인 지원금으로 고통의 시간을 버텨냈다.

지난 11월 11일  밤, 서울 마포구 와우산로 클럽빵 공연에 참여한 모든 뮤지션들이 무대에 올라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지난 11월 11일 밤, 서울 마포구 와우산로 클럽빵 공연에 참여한 모든 뮤지션들이 무대에 올라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클럽빵은 먼저 무대에 오른 뮤지션들이 마지막 공연이 끝날 때까지 객석에서 함께 하는 전통을 가지고 있다. 공연이 끝난 후엔 그날 무대에 오른 뮤지션들끼리 기념촬영을 하고 헤어진다. 김 대표가 뮤지션들 간의 소통을 중요시한 탓에 만들어진 클럽빵만의 독특한 문화다. 교류가 활발해진 뮤지션들은 자체적으로 기획한 공연을 이곳에서 열기도 한다. 신인 뮤지션 발굴을 위한 오디션도 매주 수·목요일 밤 지속되고 있다.

지난 11월 9일 서울 마포구 와우산로 클럽빵에서 밴드 ‘병아리블루’가 공연을 하고 있다.

지난 11월 9일 서울 마포구 와우산로 클럽빵에서 밴드 ‘병아리블루’가 공연을 하고 있다.

올해 데뷔한 신인밴드 ‘병아리블루’ 보컬 송성미씨(26)는 “빵 무대에 오르는 걸 무지무지 좋아한다. 인지도가 높은 밴드들과 같은 날 라인업을 짜주기도 해서 좋은 경험을 할 수 있다. 빵 무대에 오른 경험이 있는 뮤지션들에게 입장료를 받지 않아서 다른 뮤지션들의 공연을 보러 자주 오게 된다”라며 클럽빵만이 지닌 장점을 설명한다.

지난 11월 11일 서울 마포구 와우산로 클럽빵에서  팀해체를 결정한 밴드 ‘강거루’의 고별공연이 열렸다. 보컬이자  기타리스트인 강승찬(25)이  노래를 부르고 있다.

지난 11월 11일 서울 마포구 와우산로 클럽빵에서 팀해체를 결정한 밴드 ‘강거루’의 고별공연이 열렸다. 보컬이자 기타리스트인 강승찬(25)이 노래를 부르고 있다.

지난 11월 11일 서울 마포구 와우산로 클럽빵에서 열린 밴드 ‘강거루’의 고별공연. 드러머 민태준이 상의를 탈의한 채 드럼 연주를 하고 있다.

지난 11월 11일 서울 마포구 와우산로 클럽빵에서 열린 밴드 ‘강거루’의 고별공연. 드러머 민태준이 상의를 탈의한 채 드럼 연주를 하고 있다.

지난 11월 어느 토요일 밤, 1년 6개월을 활동하다 팀 해체를 결정한 록밴드 ‘강거루’의 고별공연이 클럽빵에서 열렸다. 평소보다 많은 관객들이 공연장을 가득 채웠다. 마지막 공연을 보기 위해 팬들과 동료 뮤지션들이 함께 한 것이다. 앞선 세 팀의 공연이 끝나고 마지막으로 강거루가 무대에 올랐을 때 김 대표 제안으로 관객들은 전원 자리에서 기립했다. 록밴드 특유의 경쾌한 음악과 멤버들의 화려한 퍼포먼스에 무대와 객석의 경계는 사라졌다. 웃옷을 벗고 드럼을 치는 드러머, 객석으로 돌진하는 기타리스트와 베이시스트. 음악에 몸을 맡긴 채 서로 어깨를 걸고 팔을 위로 뻗으며 고함을 지르는 관객들. 좁은 공간의 라이브클럽에서 록페스티벌에서나 가능한 ‘슬램’이 연출되는 흥겨운 풍경이 벌어졌다. 고별공연이 끝나고 기념촬영을 하고 있는 뮤지션들을 향해 김 대표는 상기된 표정으로 엄지를 치켜세웠다.

지난 11월 11일 서울 마포구 와우산로 클럽빵에서 밴드 ‘강거루’가 고별공연을 하고 있다.  이날 관객들은 전원 기립해 공연을 즐겼다.

지난 11월 11일 서울 마포구 와우산로 클럽빵에서 밴드 ‘강거루’가 고별공연을 하고 있다. 이날 관객들은 전원 기립해 공연을 즐겼다.

“클럽운영의 실질적 목표는 현상유지다. 여기서 돈을 벌겠다는 생각은 접은 지 오래다. 공연장인 만큼 매일 매일 공연을 이어가는 게 최상이다. 내가 이걸 계속하는 게 맞나하는 생각이들 때도 있지만, 이 문화를 지키고 싶다.”

30년 이라는 긴 세월이 흘렀지만 라이브클럽 ‘빵’은 여전히 인디뮤지션들의 버팀목으로 소중한 역할을 이어가고 있다.

서울 마포구 와우산로29길 12번지 라이브클럽 ‘빵’ 외부 간판.

서울 마포구 와우산로29길 12번지 라이브클럽 ‘빵’ 외부 간판.

사진·글 서성일 선임기자 centing@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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