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종차별 철폐의날 결의대회
계절노동자 일당 15만원 중
8만원이 중개 브로커 몫으로
사업장 변경 제한·단속 증가
“권리 없는 인력 확대 규탄”
이른바 ‘외국인 계절노동자’가 겪는 문제를 상담하는 레지나 용인필리핀공동체 대표는 지난해 9월 겨울옷을 나눠 주기 위해 계절노동자들의 숙소를 찾았다가 안타까운 상황을 목격했다. 정부와 지방자치단체가 농어촌 인력난 해소를 위해 3개월 정도 초단기로 고용하는 이들이 받는 처우는 초라했다. 계절노동자 10여명이 마을회관이나 컨테이너에서 생활하고 있었고, 숙박비 명목으로 매달 월급에서 40만원을 떼이고 있었다. 이곳만의 문제가 아니었다. 건설 현장이나 선박에서 일하는 계절노동자들은 일당 15만원에 계약했지만 실제로 받는 일당은 7만원이었다. 나머지는 중개 브로커가 가져갔다.
정부나 공공기관에 도움을 요청해도 별 소용이 없었다. 임금 계산에 불만을 제기하면 고용주는 브로커에게 연락해 계절노동자를 조기 귀국시켰다.
레지나는 “시민단체에 연락해 권리를 주장하거나 회사를 떠나려고 하면 브로커는 계절노동자와 함께 입국한 5명을 모두 조기 귀국시킨다”면서 “공동책임을 지도록 돼 있어 부당한 취급을 받아도 문제를 제기하기 어렵다”고 했다.
세계 인종차별 철폐의날을 나흘 앞둔 17일 국내 이주노동자들과 인권단체가 서울역 광장에서 결의대회를 열고 정부의 이주민 정책이 후퇴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이들은 “정부는 인력 부족을 이유로 이주노동자를 대폭 늘리겠다고 하지만 처우 개선이나 정책 지원은 없다. ‘권리 없는 인력 확대’가 이 정부의 노동정책”이라고 했다.
현장에서 만난 이주노동자들이 쏟아낸 이야기들은 2024년 대한민국의 이주노동자 현실을 그대로 보여주었다.
이들은 먼저 현 정부 들어 이주노동자들에게 거주 이전의 자유가 제한됐다고 했다. 지난해 10월 정부가 지역소멸 위기에 대응하겠다는 이유로 이주노동자의 사업자 변경을 제한하는 정책을 시행했다. 우다야 라이 이주노동자노동조합 위원장은 “자유롭게 사업장을 선택할 권리가 이주노동자에게는 보장되지 않는다”면서 “고용허가제(E-9) 비자뿐 아니라 회화 강사, 선원 등 이주노동자 대부분이 사업장 변경 제한이라는 기본권 침해를 당하고 있다”고 했다.
한국은행이 지난 5일 돌봄·가사 이주노동자에게 최저임금을 차등 적용해야 한다는 보고서를 발표한 것을 두고는 “이주노동자를 도구로 보는 정책”이라고 비판했다.
미등록 이주노동자를 향한 무분별한 단속이 늘고 있다고도 했다. 압둘 라티프는 “일부 사람들이 미등록 이주민들의 집에 허락 없이 들어가거나, 경찰에 허위신고를 하는 등 미등록 이주민의 인권이 침해되는 경우가 늘어나고 있다”고 했다. 챗 디마아노는 “이번 총선에서 이주노동자 단속을 적극 추진하겠다는 공약을 내놓은 후보도 있다”며 “미등록 이주노동자는 한국인의 적이 아니다”라고 했다.
정부의 이주노동자 관련 정책 예산 삭감도 문제로 지적됐다. 고용노동부는 지난해 외국인노동자지원센터 예산을 전액 삭감했다.
서울이주여성상담센터에서 일하는 웬티현은 “정부는 이주노동자 도입을 늘리겠다면서 외국인노동자지원센터는 폐지했다. 이주여성의 폭력 피해 신고가 늘어나고 있지만 이주여성상담소는 10곳뿐”이라고 했다.
이주여성상담센터 상담통계에 따르면 2023년 가정폭력 상담은 5345건으로 2022년(4416건)보다 20% 넘게 늘었다. 다누리콜센터 가정폭력 상담도 2022년 1만778건에서 지난해 1만4133건으로 늘었다.
성착취에 노출된 이주여성을 보호할 제도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다고도 했다. 김조이스 두레방 활동가는 “미등록 이주여성은 성매매에 노출되는 경우가 많다”며 “이들은 인신매매방지법의 대상으로 보호받아야 하지만 성매매처벌법에 따라 피의자로 처벌받을 수 있는 모순적인 상황에 처해 있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