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이 없으면 제가 좋아하는 꿀술도 없는 거잖아요. 꿀벌이 멸종하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배우고 싶어요”
광진구 ‘도시양봉학교’ 수업에서 만난 남은비씨(29)가 말했다. 남씨는 “꿀술을 만들고 평가하는 일을 하면서 벌의 생태를 공부하고 싶어져 수업에 참여하게 됐다”고 했다.
서울 광진구 광장동자투리텃밭에서 17일 오전 열린 도시양봉학교 수업에 20대 청년부터 60대 이상 은퇴 세대까지 시민 20명가량이 모였다. 텃밭 벤치에 모여 앉은 이들은 강의 중 노트를 펼쳐 필기하거나 “배꽃도 꿀을 채취할 수 있냐”며 강연자에게 질문하는 등 학구적인 모습을 보였다.
드디어 실습 시간이 됐다. 벌에 쏘이는 걸 막기 위해 둥근 챙이 있는 모자에 망사를 씌운 양봉모자를 쓴 수강생들이 옹기종기 모였다. 강연자가 벌집을 들고 “가운데 부분에 벌들이 알을 낳는다”면서 구조를 설명하자 “벌집에서 벚꽃향이 나는 거 같다”며 신기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벌집을 들어보며 “벌들이 생각보다 순하고 귀엽다”며 화기애애하게 대화를 나누기도 했다.
수강생들이 수업을 신청한 이유는 다양한 연령대만큼 제각각이었다. 2년 전 은퇴한 전직 대학 교수 신광칠씨(67)는 “어린 시절 은퇴하신 이모부가 양봉을 하시는 걸 보며 나도 은퇴하면 해봐야겠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신씨는 “옥상 텃밭에서 기르는 채소에도 양봉이 도움이 되고, 매일 벌을 돌보면 은퇴 후에도 무언가를 생산할 수 있다는 자신감도 생겨 일석이조”라고 말했다.
이석원씨(33)는 직장 휴직 후 취미 삼아 양봉학교를 찾게 됐다. 이씨는 “반려동물을 기르는 것을 좋아해 벌을 돌보는데도 흥미가 생겼다”면서 “이번 수업을 통해 안전하게 채밀(꿀 뜨기)하는 법과 벌을 건강하게 돌볼 수 있는 법을 배우고 싶다”고 말했다. 차명희씨(60)는 “꿀로 생산한 상품에 관심이 많다”며 “아직은 취미 수준이지만 꿀과 관련한 일도 해보고 싶다”고 말했다.
수강생들은 기후변화 등으로 인해 꿀벌이 사라지고 있다는 사실에 깊은 관심을 보였다. 신씨는 “기후변화에 벌들이 적응하지 못해 점점 사라지고 있어 안타깝다”면서 “도시 농업을 통해 벌들이 도시에 적응할 수 있게 된다면 생태계에도 도움이 될 것 같다”고 말했다.
차씨는 “농약 사용도 많아지고, 전자파 때문에 벌들이 사는 환경이 많이 달라졌다”면서 “환경 변화가 걱정되기도 하고, 벌들이 살아가는데 도시 농부들이 도움이 됐으면 한다”고 말했다.
강연을 맡은 양봉 전문가 권모씨(74)는 “곤충을 통해 열매를 맺는 식물의 70~80%가 벌에게 의존하고 있어 벌이 없으면 우리가 먹는 식자재의 30% 가량이 사라지게 된다”라며 “양봉의 가치는 연간 6조원에 달한다”고 설명했다. 꿀벌은 생태계의 대표 환경 지표종으로, 환경 변화를 가장 먼저 감지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날 모인 수강생 20명은 앞으로 10월 30일까지 매주 수요일 도시양봉학교에서 수업을 받게 된다. 광진구 관계자는 “환경 보호와 생태계 복원에 기여하려고 지난 2016년부터 도시양봉 사업을 실시하고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