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하승씨(33·가명)는 영남권의 한 지방자치단체에 속한 재난 담당 공무원이다. 폭염과 한파에 대비해 시설물을 설치·관리하거나 집중호우가 내릴 때 침수 위험 지역을 살피는 일을 한다. 그는 28일을 끝으로 2년 넘게 몸 담아 온 공직생활을 마무리한다.
주변 동료들은 만류하기보다 ‘부럽다’고 말한다. “곧 따라갈게, 이렇게 말하는 사람들이 많아요.” 민씨는 “비상근무를 하고 돌아가는 길에 졸음운전을 하는 날도 많아지면서 그만둬야겠다는 생각도 강해졌다”고 말했다.
대단한 사명감으로 시작한 일은 아니었으나 공익에 기여한다는 보람을 느낄 때도 적지 않았다. 직접 설치한 그늘막 아래서 시민들이 더위를 식히는 모습을 볼 때는 특히 그랬다. 민씨는 “그나마 2년이라도 버틸 수 있었던 이유”라고 했다. 반복되는 밤샘 근무와 쏟아지는 민원, 감당할 수 없는 과중한 업무에 민씨는 갈수록 지쳐갔다고 했다. 언젠가부터는 ‘헬부서 탈출’만이 목표가 돼 있었다.
집중호우나 산사태 등의 재난이 닥칠 때마다 지자체의 대응 역량이 도마에 오른다. 올여름에도 충북 청주시 오송읍 궁평 제2지하차도가 침수돼 14명이 숨지는 등 인명피해가 나자 “왜 막지 못했냐”는 비판이 이어졌다. 재난 대응 실패는 왜 반복될까. 재난을 담당하는 공무원들에게 직접 물어봤더니 이들은 하나같이 인력 부족과 그로 인한 ‘번아웃’을 호소했다. 일선에는 “삶이 더 망가지기 전에 하루빨리 탈출하고 싶다”는 체념이 가득했다.
방재안전직 유준기씨
“30만 공무원 중 791명뿐인데 낮은 직급·연차만 수두룩”
“이제 와서 거창한 얘기 별로 하고 싶지 않아요.” 방재직 공무원 유준기씨(40·가명)는 27일 경향신문과 통화하면서 ‘왜 이 일을 시작했냐’는 물음에 힘없는 목소리로 답했다. 비가 내리는 날이면 제대로 잠들지 못하는 생활을 꾸역꾸역 이어온 지 4년째다. 그는 “이틀에 한 번꼴로 밤을 새우며 일해도 눈앞에 나타나는 성과가 없다”고 했다. “매년 (침수를 막기 위한) 개선 공사를 해도 주민들은 늘 화가 나 있다”고도 했다. 재난의 강도가 커지고 빈도가 잦아지면서 지자체 역량이 따라가지 못하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유씨는 ‘재난 전문가’가 양성될 수 없는 환경이라고 했다. 이직률이 높아 숙련을 쌓기 힘들다는 것이다. “방재직렬 공무원이 생긴 게 생각보다 그렇게 오래되지 않았어요. 다들 연차도 낮고 직급도 낮아요. 10년 이상은 근무해야 전문가가 될 거 아니에요. 그런데 그전에 다 갈려서 나가는 거예요. 어떻게 전문가가 만들어질 수 있겠어요.”
10년 전인 2013년 정부는 ‘방재안전직 공무원’을 신설하고 “재난 관리 핵심으로 양성하겠다”고 했다. 행정안전부의 ‘2022년도 지자체 공무원 인사통계’를 보면 방재안전직 공무원은 총 791명(임기제 포함)이다. 30만여명에 달하는 전체 공무원의 0.25% 수준이다. 정부는 2019년 ‘제4차 국가안전관리기본계획’을 발표하며 2024년까지 방재안전 공무원을 1640명까지 늘리겠다고 했으나 아직 목표치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한 상태다. 채용 대비 퇴직률이 매우 높기 때문이다.
일반 행정직 권두현씨
“재난 때 선제적 대응 했다가 왜 멋대로 했냐고 질타받아”
재난 공무원들은 권한은 없고 책임만 있는 구조가 가장 큰 문제라고 말한다. 서울의 한 자치구 재난안전대책본부에서 일반행정직 공무원으로 일하는 권두현씨(48·가명)는 일선 공무원들이 소극적으로 행동할 수밖에 없는 이유를 이렇게 설명했다. “재난 상황에 선제적으로 대처하려면 주관적 판단이 필요한 경우가 많아요. 재난을 막으려고 어떤 조치를 했는데, 생각보다 재난 피해가 없으면 어떨까요. 다른 불편이 발생한다면 어떨까요. 주민들도, 기관도 ‘왜 멋대로 했어’라고 책임을 묻는 거예요.”
재난 대응에 실패한 공무원을 제대로 처벌하고 징계하라는 목소리는 많지만 ‘그에 걸맞은 권한을 주자’는 목소리는 잘 들리지 않는다. 이들은 “언젠가 더 큰 재난이 닥칠 게 두렵다”고 했다. 다시 유씨의 말이다. “앞으로도 재난은 더 강해지고, 더 자주 찾아올 겁니다. 이대로 있으면 내 삶이 무너지는 것도 시간문제예요. 제 인생을 망가뜨리면서까지 이 일을 할 필요는 없지 않을까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