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하고 안 아름다운 레트로 나라 님, 오늘은 인도에서의 경험으로 레터를 시작하려 합니다. 전 낯선 생각으로 데려다주는 뉴스를 좋아하는 오경민 기자예요. 대학생 때 인도를 여행했어요. 슬슬 한국 음식의 매콤달달한 맛이 그리워질 때쯤, 한국식 양념치킨을 파는 식당이 있다고 해서 들렀습니다. 그곳에서 예상치 못한 풍경을 맞닥뜨렸어요.
식당 한쪽 벽에는 일본 스모선수가 그려진 족자가 걸려있었고, 은은하게 중국어 가사의 노래가 흘러나왔어요. 그곳에서 인도식 항아리 바지를 입은 백인들이 좌식 식탁 앞에 앉아 양념치킨을 먹고 있었습니다.
‘이것이 말로만 듣던 오리엔탈리즘이구나!’ 실감했던 순간이에요. 인도인·일본인·중국인·한국인 등 어떤 아시아인도 고개가 갸우뚱해질 공간이었으니까요. 아시아를 표방하고 '동양틱'한 이미지를 모두 가져다 놨음에도 아시아 그 어디의 정체성도 가지고 있지 않았습니다.
오늘 소개해 드릴 칼럼에서 조해람 기자는 “생(生)을 뽑고 껍데기만 남기는 박제의 공법”에 대해서 이야기합니다. 약 3분 분량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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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새문안 먹자골목이 사라진 '돈의문 뉴타운'에는 레트로를 표방한 돈의문박물관마을이 세워졌다. ☑️ 을지로 노가리골목의 터줏대감 '을지OB베어'는 세를 늘려가던 만선호프에 밀려 문을 닫았다. ☑️ 조해람 기자는 노포를 흉내낸 말쑥한 '힙 플레이스'를 좋아하지 않는 이유를 설명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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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둑맞은 손때 2023.10.06. 조해람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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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겨울 서울 노원구 백사마을 주민이 연탄난로의 연탄불을 확인하고 있다. 권도현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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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트로'를 그리 좋아하지 않는 편이다. 이유는 둘인데 첫째는 그저 취향 때문이다. 아무래도 '재현'보다는 '원본'이 좋다. 1980년대 음악을 완벽히 재현한 요즘 노래보다는 그때 당시의 노래를 듣는 쪽이다. 수십 년 전 영화 포스터를 붙이고 '오빠는 풍각쟁이'를 트는 힙한 식당보다는, 말없이 수십 살을 먹은 노포에 더 끌린다. 물론 누가 맞다, 틀리다를 얘기하고 싶은 건 아니다. 취향이란 사람마다 다른 법이니까. 레트로를 좋아하지 않는 두 번째 이유는 좀더 사회적 맥락에 가깝다. 만약 괜찮다면, 두 번째 이유에는 읽는 분이 공감해줬으면 좋겠다는 마음이 살짝은 있다. 생각할 거리 하나 정도를 곱씹어볼 여유가 있다면, '멸균소독 레트로 테마파크'에 관한 이야기를 나눠보고 싶다. 회사 앞에 '돈의문박물관마을'이라는 공간이 있다. 레트로를 표방한 깔끔한 문화공간이다. 옛 건물 40채를 유지·보수하고 오래된 소품을 들여놓았다. 1970년대 좁은 골목길을 재현했지만, 냄새는 나지 않는다. 골목 구석에 놓인 연탄재는 가짜라 비가 와도 허여멀건 잿물이 흐를 일이 없다. 개화기와 7080과 1990년대가 마구잡이로 뒤섞여서 도대체 뭘 재현하려 한 건지 모르겠지만, 인스타그램 사진을 찍기엔 좋다. 테마파크가 되기 전 이곳은 유명한 '맛집 골목'이었다고 한다. 회사를 오래 다닌 선배들은 '사람 냄새 나던' 골목의 허름한 맛집들을 아직도 기억한다. 그 골목의 재개발이 한창이던 2016년 4월, 한 식당 주인이 강제철거에 항의하며 분신해 숨졌다. 돈의문박물관마을은 바로 그 터 위에 세워졌다. 한때 골목을 채웠을 '사람 냄새'는 깔끔히 멸균 소독됐다. 허름함을 말끔하게 재현한 골목에서 나는 생(生)을 뽑고 껍데기만 남기는 박제의 공법을 본다. 도둑맞은 손때를 본다. 벽화 속 철수와 영희는 '크리피(Creepy)'한 미소를 짓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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을지로 노가리 골목 원조로 불리는 을지OB베어의 과거 모습. 서울시 미래유산 홈페이지 갈무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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을지로 테마파크도 빼놓을 수 없다. 오징어잡이배처럼 불을 켠 '만선호프' 대선단이 매일 밤 손님들로 만선의 꿈을 이루는 곳. 만선호프가 점령지를 늘려가면서 같은 골목에 있던 42년 업력 ‘을지OB베어’는 쫓겨났다. 을지OB베어는 '노맥(노가리+맥주)'의 원조이자 술집으로서는 처음으로 '백년가게' 인증을 받은 터줏대감이었다. 을지로에는 그렇게 밀려난 노포가 한두 곳이 아니다. 정겨운 동네가 인기를 얻으면 어김없이 일어나는 일이다. 오래된 삶들은 상어를 만난 노가리 떼처럼 뿔뿔이 흩어지고, 말쑥한 레트로 테마파크가 들어선다. 레트로 소품으로 장식하고 옛 간판 폰트를 흉내 낸 '힙 플레이스'들은 냄새마저 청량하다. 임대료가 더 치솟으면 그 가게들도 어디로 내몰릴지 모르지만, 테마파크는 계속된다.
을지로의 오래된 철공소들에는 '사진을 찍지 말아달라'는 안내문이 붙어 있다. 그 안내문들은 이곳이 누군가의 소중하고 오래된, 존중받아 마땅한 삶의 터전임을 말해 준다. 골목을 찾을 때마다 안내문이 하나둘씩 줄어 있었다. 낡은 꽃무늬 양철 쟁반에 손때를 묻히던 이들은 이제 없지만, 테마파크는 계속된다. 깔끔하게 멸균 소독된 신품 꽃무늬 양철 쟁반만 남기고. 나는 차라리 손때를 먹겠다. ※ 칼럼 제목은 박완서의 소설 ‘도둑맞은 가난’에서 따왔습니다. 🔎 경향신문 홈페이지에서 기사 전문을 읽으시려면 여기를 클릭하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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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님은 자주 가는 단골집이 있으신가요? 전 어렸을 적 항상 어딘가의 단골이 되고 싶었어요. 사장님과 정답게 인사를 나누는, 추억과 역사가 묻은 공간을 가지고 싶었지요. 새로 이사한 동네에 '단골'이라고 할 만한 카페와 미용실이 생겼습니다. 자연스레 인사를 나누고, 동네 소식을 주고받기도 해요. "이번에 ○○구 서울사랑상품권 샀냐" "△△건물 지하에 새로운 술집이 생겼는데 국수를 꼭 먹어봐야 한다" 같은 이야기요. 미용실 사장님은 제가 식물을 키우는 걸 알고 작은 무늬벤자민고무나무 화분을 주기도 하셨어요. 이 가게들이 없어지면 저는 많이 서운할 것 같아요. 특히 사장님들이 스스로 떠나는 게 아니라 돈에 밀려 쫓겨난다면요. 오래 한 곳에 터를 잡고 살던 이들이 자본에 쫓겨나 뿔뿔이 흩어지는 이야기는 반복됩니다. 조해람 기자가 언급한 새문안 맛집골목, 을지OB베어 말고도 두리반, 궁중족발 같은 가게들이 떠밀려 나갔습니다. 어디 가게만 그런가요. 세입자라면 주민·상인 가리지 않고 외곽으로 밀려나지요. 공간을 잃은 것도 서러운데, 거기에 내 삶과 역사를 흉내 낸 공간이 '레트로' 콘셉트라며 들어선다면 마음이 어떨까요. 저라면 모욕감을 느낄 것 같아요. 조 기자는 "사람의 삶을 몰아낸 뒤 '과거의 껍데기'만 박제시킨 공간에서 어떤 '낭만'을 느껴야 하는지 모르겠다"고 말했습니다. 위근우 평론가는 을지OB베어를 다룬 칼럼에서 "이 대립은 시장 논리와 문화적 생활세계의 상생 문제"라면서 "거의 대부분 이 대립에선 시장 논리가 문화적 세계를 야금야금 먹어 치우고 있다. 당장은 자본의 승리처럼 보이지만 모든 문화적 자원을 다 먹어 치운 뒤에도 과연 시장은 동력을 유지할 수 있을까" 물었습니다. 너무나 익숙해진 젠트리피케이션 속에서 당장은 소중한 장소를, 멀리 보면 시장을 움직이는 문화적 동력을 잃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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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에 제조업 장인들이 있습니다. 수십 년 연마한 기술로 무엇이든 뚝딱 만들어내는 이들은 을지로, 청계천, 문래동 등에 모여 마치 하나의 톱니바퀴처럼 생태계를 구축하고 있어요. 이들은 잇따른 재개발 때문에 번번이 흩어져야 했습니다. 또다시 재개발을 앞둔 문래동. 소공인들의 목소리를 유경선 기자가 전합니다. |
지난해 말 별세한 조세희 작가의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은 자본과 재개발, 사회정의를 이야기합니다. 1996년, 고인은 "더 이상 <난쏘공>이 필요하지 않은 시대가 왔으면 한다"고 했습니다. 10년 뒤엔 "출간 30주년인데 오히려 상황은 더 나빠졌다"고 했습니다. 그렇다면 <난쏘공>이 세상에 남긴 것은 무엇일까, 칼럼은 고민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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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산율이 낮다는 수치를 보면서도 실제로 얼마나, 어떻게 심각한 건지 잘 몰랐는데 유치원이 요양시설로 대체된다는 사실을 접하며 문제의 심각성을 더 잘 인지할 수 있었어요." (슬기로운불꽃님) 📬 "요양시설 증가는 정해진 미래일 텐데, 요양보호사 부족을 외국인 육아도우미 정책 같은 방식으로 풀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익명의 독자님) 📬 "저희 어머니가 유치원 원장님이셨다가 요양 보호사로 직업을 바꾸셨던 분입니다. 옆에서 체험적으로만 알고 있다가 수치로 접하게 되니 좀 더 정확하게 현실을 바라볼 수 있었습니다. 요양원이 기피시설로 여겨진다는 게 충격적이었습니다. 이건 찬반의 문제가 아닌 우리의 현실인데 말이죠." (익명의 독자님) 📬 "폐교된 학교 건물을 재정비해서 요양원으로 만드는 것도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제도 정비는 필수겠죠? 고령화를 피할 수는 없고 조손 가정이 늘고 있는 만큼 공공돌봄에 대한 논의도 더 활발하게 이루어지면 좋겠습니다." (제이드님) 📝 "지난 점선면Lite < 🐸유치원 줄게 요양원 다오>를 읽고, 많은 독자님께서 저출생·고령화 문제를 새삼 체감했다는 말씀 전해주셨어요. 참, 제이드님께서 내주신 ‘폐교 재활용’ 아이디어는 이미 현실이 되고 있습니다. 경남 하동과 충남 부여 등에서 폐교된 학교 건물에 요양원이 들어선 사례가 있어요. 최근에는 고양이 보호·분양센터, 공립 한국어교육센터 등으로 전환된 폐교가 주목을 받았습니다." 📬 "처음부터 끝까지 좋았습니다. 특히 마지막에 오경미 대법관님께서 해주신 말씀에 크게 공감합니다. 법의 존재 이유와 목적은 인간의 존엄성인데 여기서 말하는 인간에 소수자와 약자까지 포함된 사회가 꼭 오면 좋겠습니다. 그러기 위해선 우리 사회의 이정표 역할을 하는 대법원이 다양한 배경을 가진 구성원들로 이루어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누구도 소외당하지 않고 다양성이 존중되는 사회가 언젠가는 오길 바랍니다ㅎㅎ. 그리고 지난 레터의 독자분들 후기도 너무 좋았어요!" 📝 "지난 점선면Lite < ⚖️재판만 잘하면 되지>에 남겨주신 말씀입니다. 독자님들께서 보내주신 의견을 읽을 때마다 점선면팀도 매번 감탄하고 있답니다. 점선면을 더 풍성하게 만들어주시는 독자님들께 늘 감사드립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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