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극장은 카자흐스탄 알마티시에 있는, 91년 역사의 고려인 공연예술 공동체다. '극장'이라는 이름을 보고 장소로 극장만을 상상하면 곤란하다. 예술단체라는 의미를 보태야 완전체가 된다. 카자흐스탄에 뿌리내리고 사는 '고려인을 대표하는 공연예술 단체이자 극장', 이게 고려극장의 본모습이다.
지난 19일 오후 알마티 보겐바이 바트라 158번지에 있는 고려극장을 방문했다. 극장은 디귿자(ㄷ)형의 2층짜리 옅은 노란색 건물로, 바로크 양식의 균형미가 인상적이었다. 전체적으로 사뭇 포근한 느낌이어서 고즈넉한 어느 공원 속 저택에 온 것 같았다. 알마티 시내의 유서 깊은 건축물이 대개 이런 모습인데, 고려극장 건물도 예외가 아니었다. 전 로디온 고려극장 부원장 말로는 역사적으로 가치가 높은 '카자흐스탄의 기념건축물'이라고 한다.
바깥 분위기와는 달리, 극장 1층과 2층 내부는 한창 공사 중이라 어수선했다. 2층 극장 로비는 물론 로비와 연결된 극장 안의 객석과 무대, 음향 및 조명실도 모두 철거된 상태였다. 전 부원장의 말이다. "한국의 외교부로부터 무상원조를 받아 극장 전체를 개·보수하고 있다. 객석 의자도 새로 깔고 무대도 손보고, 음향과 조명 시설도 최신식으로 교체하는 중이다. 리노베이션을 마치면 12월 초 재개관 기념식을 열 예정이다."
고려극장의 정식 명칭은 '카자흐스탄 국립 아카데미 고려극장'이다. 여기 '국립'과 '아카데미'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카자흐스탄에는 특정 민족 공동체에 부여한 다섯 개의 국립극장이 있다. 고려극장도 그중 하나인데, 인구로 치면 열세인 고려인에게 국립극장을 안긴 건 고려인 커뮤니티의 위상이 그만큼 막강하다는 증거다. 고려인 외에 카자흐스탄과 러시아, 위구르, 독일인이 국립 타이틀 극장을 갖고 있다.
또한 아카데미는 교육을 실행할 능력을 갖춘 최고 수준 극장이라는 의미다. 2016년 카자흐스탄 정부는 고려극장을 '국립 아카데미 극장'으로 승격한 뒤, 이듬해엔 현재 건물을 전용극장으로 내줬다. 이로써 고려극장은 단체와 극장이 한 몸을 이룬, 명실상부한 조직 형태를 갖췄다. 고려극장은 연극과 무용, 사물놀이 단원 49명 등 총 100명으로 구성됐다.
이 영광스러운 여정의 중심인물이 이 류보비 아우구스토브나 예술감독(71)이다. 초·중·고 교사 출신인 이 예술감독은 1997년 '카자흐스탄 고려인협회' 추천으로 고려극장 첫 여성 극장장으로 취임해 25년 일했다. 얼마 전 세대교체를 위해 한참 후배인 옐레나 김에게 극장장 자리를 물려주고 자신은 예술감독을 맡았다.
"맘 편히 공연할 공간이 없어 이곳저곳을 전전하던 시절에 비하면 격세지감이다. 갖은 고난과 역경 속에서도 예술혼을 불태운 예술가들의 노력과 카자흐스탄 정부의 지원이 없었다면 불가능한 일이다. 우리 고려인 공동체가 합심하여 이룬 쾌거여서 한없이 자랑스럽다."
고려극장은 일제강점기인 1932년, 극동 러시아의 블라디보스토크에서 '고려인 구락부 소인예술단'을 모태로 출발했다. 공연단체로 걸음마를 뗄 무렵인 1937년, 고려극장은 스탈린의 정책에 따른 고려인의 중앙아시아 강제 이주 과정에서 카자흐스탄으로 옮겨 둥지를 틀었다. 지금의 알마티에 정착하기까지 우슈토베와 크질오르다 등 이 지역 저 지역을 전전하는 '유랑단체' 신세였다.
그 신고의 세월을 견뎌내면서 91년 동안 극장의 명맥을 이어온 것은 기적과도 같은 일이다. 위대한 고려인의 승리라고밖에 표현할 길이 없다. 100년이 넘는 한국의 근현대공연사에서 이 정도 연륜을 축적한 예술단체가 과연 있던가!
이 예술감독의 다음 목표는 카자흐스탄 고려인을 대표할 '정신적 영웅'을 고려극장 이름 앞에 새기는 일이다. '카자흐스탄 국립 아카데미 오페라 발레극장'이 카자흐스탄의 국민 시인이자 철학자인 아바이 쿠난바이울리(1845∼1904)를 기려 '아바이 오페라극장'으로 부르는 것처럼.
이 예술감독의 말이다. "고려인 사회에서 합의한 인물은 있는데, 때가 적절치 않아 안타깝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