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소개한 기사는 경향신문 사회부 기획 '2030 내탓 설명서' 중 두 번째 기사입니다. 시리즈는 사회를 바꾸기보다 스스로가 바뀌는 게 현실적이라고 믿고, 바꿀 수 있는 건 태도뿐이라 말하는 청년들의 이야기를 담았어요. 첫 번째 기사는 <청년들은 매질하는 '세이노'에게 왜 고마워하나> 입니다. <세이노의 가르침>은 "세상의 기준에 맞춰 일하라. 그래야 부자가 된다"고 말하는 책입니다. 이 책을 열심히 읽은 독자들은 "사회 구조를 바꾸기는 쉽지 않다. 자기가 바뀌는 게 가장 쉽고 현실적인 대안" "기득권과 환경을 개인이 바꾸는 것은 불가능하다. 시간은 유한하다" "개인의 능력을 우선 개발해 서로서로 이끌어주는 사회를 만들어가는 게 현실적"이라고 말했습니다. 감사일기를 쓰는 이들과 <세이노의 가르침>에 열광하는 이들이 비슷한 듯 다르게 느껴졌습니다. 전자는 어떻게든 살아남기 위해 현실을 일부 낭만화하고 자신을 달랠 방법을 찾은 사람들이라면, 후자는 현실의 질서를 옹호하고 그 안에서 성공하기 위한 태도를 실천하는 사람들처럼 보였어요.
김현미 교수는 여성의 일 경험을 연구한 저서 <흠결 없는 파편들의 사회>에서 "동화는 자신의 정체성이나 자아의 일부를 숨기거나 드러내지 않는 방법으로, 통과되기(passing)와 덮기(covering)부터 차별적 규범을 옹호하거나 적극적으로 실행하는 것까지를 포함한다"고 말합니다. 기획 기사에 나온 청년들은 모두 '동화된' 이들입니다. 그 사이에서 어느 정도의 적극성을 취하는지는 각자 다르겠지만요. 모든 건 마음 먹기 달렸다, 작은 것에 감사하라, 가진 것을 소중히 여겨라…
이런 말들을 참 싫어했습니다. 부당한 현실에 저항하지 말라는 말로 들렸거든요. 기득권을 유지하려는 이데올로기가 숨어있는, 잘 포장된 '예쁜 말'에 불과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세이노의 가르침>과 감사일기 열풍에 합류한 청년들의 얼굴을 보며 마음이 복잡해졌어요. '왜 다른 시대 청년처럼 현실을 바꾸려 투쟁하지 않냐고 이들을 비난할 수 있을까' 의문이 들었습니다. 우리 사회가 주체성을 가지고 부당함에 저항한 시민들을 어떻게 대우해 왔나를 돌아보기도 했고요.
경악스러운 세상 속에서 살아남으려는 각자의 노력이 어떤 물결을 이루고 있는 것 같아요. 살아남으면서도 더 비참한 세상을 만드는 데 기여하지 않으려면 세상과 얼마만큼 불화하고 얼마만큼 타협해야 할까요? 독자님의 균형점도 궁금해집니다.
오경민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