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법 전문에 '5·18 정신'을 수록하겠다고 한 정당이, 5·18 민주화운동에 북한군이 개입했다고
주장하는 인사를 '
다양성'을 들어 품고 가려 했습니다.
5·18 민주화운동 폄훼는 누군가에겐 여전히 구체적이고 생생한 상처를 들추는 모욕입니다. 우리 공동체가 정립하고 합의한 역사적 사실과 의미를 무책임하게 뒤흔드는 일이기도 하고요. 멋대로 내뱉는 음모론, 낭설이 다양성의 범주 안에 들어올 수 없는 이유입니다.
일본 자민당 소속 정치인들은 행사에 여성 댄서들을 불러 노출이 심한 옷을 입고 춤을 추는 모습을 즐겼습니다. 다양성을 강조하는 취지였다고
해명했는데, 반라의 여성들에게 유흥을 맡긴 행위가 다양성이라니요.
자매품으로는 '표현의 자유'가 있습니다. 누군가를 찌르는 말, 거짓말, 공동체를 뒤흔들 수 있는 말을 자유롭게 지껄이도록 내버려 두라는 거예요.
대법원은 '악플'에 표현의 자유를 마냥 인정해줄 수 없다고
판단하면서 표현의 자유가 다른 가치를 고려해야 한다는 점을 확실히 했습니다. 자유와 방종 사이의 경계를 명확히 해야 하듯, 다양성도 아무 갈래로나 무한정 뻗어나갈 수 없는 거겠죠.
무엇보다 다양성을 입에 올린 이들의 주류성을 눈여겨보게 됩니다. 집권 여당에서 선거에 출마하려는 50대 남성 법조인, 한 나라에서 60년 넘게 집권한 정당의 남성 정치인…
4·10 국회의원 선거에서 국민의힘과 더불어민주당의 여성 공천율은 지난 7일 기준으로 모두
10%대에 그칩니다. 17일 현재 공천이 마무리된 국민의힘은 전체 후보의 88%가 남성입니다. 대법원이 인정한 양심적 병역거부자이자 커밍아웃한 성소수자가 '병역 기피'를 이유로 더불어민주연합 비례대표에서
컷오프되는 일도 있었습니다. 정치권에서 필요한 다양성 논의는 다른 데 있었네요.
5·18 민주화운동 폄훼 당사자의 공천은 결국
취소됐지만 찜찜한 뒷맛이 가시지는 않습니다. 우리, 다양성을 도둑맞지 말자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