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니와 칠공주는 노인에게 한글을 가르치는 성인문해학교에서 서로 만났다고 해요. 이 노인들은 "황학골에서 셋째 딸로 태어났다(박점순씨)"는 이유만으로 한글 교육을 받을 수 없던 시절을 살았습니다. 뒤늦게 한글을 깨치다가 랩을 배우고, 연극도 해보고, 새로운 글씨체도
고안했어요.
이 할매래퍼들이 워낙 인기를 얻으니 '노인'과 '힙합'의 만남에 이런저런 의미를 부여하고 있습니다. 가사 암기와 손동작이 치매 예방 효과를 줄 수 있고, K-POP처럼 'K-할매'로 성장할 수 있고, 인구 감소 지역에 활기를 가져올 수 있고….
그럼 수니와 칠공주 멤버들에겐 어떤 의미일까요? 리더 박점순씨는 말합니다. "요즘 랩 배워서 신나죠, 뭐." 외신 기자의 카메라 앞을 흐느적거리는 '힙합 걸음걸이'로 지나고, 시장통에서 고달픈 삶 이야기를 프리스타일 랩으로 내뱉는 노인들은 그야말로 신나 보입니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노년에도 이 정도로 신날 수 있고, 또 신나는 일이 필요한 걸까? 어릴 적 할머니가 지루할 거란 생각은 한 번도 해본 적이 없었거든요. 방 안에만 있거나 골목 어귀만 오가도 그것이 '그냥 노인의 삶인가 보다' 싶었죠. 그런 저에겐 할매래퍼들이 내뿜는 에너지가 정말 낯설고 놀라웠습니다.
얼마 전 '시니어 아미(senior army)'에 관한
기사를 읽었어요. 출생 인구가 줄어들면서 병력 자원이 절대적으로 부족해진 상황을 '노인 입대'로 해결하자는 단체가 등장했습니다. 온라인에선 '노인이 어떻게 전쟁에 나가느냐', '기본적 경계 근무만 맡기면 된다', '노인 빈곤을 해결할 수 있다', '가난한 노인만 군대에 또 가라는 거냐' 등 다양한 의견이 부딪쳤습니다.
칠곡의 할매래퍼들을 보며 이 뉴스가 다시 떠올랐어요. 어떤 노인은 다시 '군대에 가는 마음'을 간절히 원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노년에 군대가 주는 소속감, 안보에 기여한다는 자부심 같은 감정들이 생길 테니까요. 노년이 지루하지 않고 신날 수만 있다면, 시니어 아미 주장도 한번 살펴볼 만한 것 같습니다.
2023년 한국인의 평균 기대수명은
83.6세. 하지만 은퇴 등 사회적으로 '노년'을 정의하는 기준은 대부분 여전히 '60대 이후'를 가리키고 있어요. 불과 15년 후 노인이 인구 절반을 차지하는 미래가 닥칩니다. 노년을 위한 직업교육, 연금, 공공일자리, 복지수당 같은 논의는 참 익숙합니다. 다만, 이제는 노년에 물질뿐만 아니라 어떤 감정을 채우고 살 것인지에도 관심을 넓혀야 하지 않나 싶습니다. 그저 버티기엔 우리의 노년이 길어도 너무 길 테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