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크리스마스엔 명동에 많은 사람이 모였다고 합니다. 1971년의 명동 번화가 풍경(링크) / ⓒ셀수스협동조합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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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레터의 비하인드 : 연말 결산 >12월의 해찰 피드 : #‘서울의봄’열풍 #의존하는 능력 >알림 : #2024년 연재주기 관련 >[증정이벤트] ‘빅토르 바자렐리 전시회’ 티켓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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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연구자님. 느릿하게 해찰하며 걷는 것을 좋아하는 김스피입니다.👤🎄 이번 크리스마스는 곳곳에 눈이 내린 화이트 크리스마스였습니다. 크리스마스를 잘 보내셨나요? 매년 크리스마스로 마음이 조금 들뜨고 나면, 곧이어 한 해가 저물고 새해를 맞이하게 될 준비를 하게 됩니다. 연구자님들도 이 편지를 받아보실 때쯤이면 2023년 한 해를 정리하고, 2024년 새해를 준비하고 계시리라는 생각이 듭니다. 흔히 연말연시는 2023년에 달성하지 못했던 목표들을 ‘뉘우치고’(왜 이렇게 나는 작심삼일이지?), 2024년엔 꼭 달성할 수 있는 목표를 세우는 시기입니다. 하지만 저는 어쩌면 우리가 1년치 목표를 제대로 달성하는 일이 드문 것은, 제대로 꿈 꿀만한 가치와 재미가 있는 대부분의 목표는 ‘1년치’라는 그릇엔 담기 어려운 것이기 때문이 아닐까도 생각해봅니다. 그래서 저는 내년의 목표를 ‘10년치 목표 세우기’(?)로 삼아 보았습니다. 목표가 목표를 세우는 것이라니 뭔가 어리둥절해지는 일입니다만, 내년에는 차분하게 1년치 궁리 대신 틈틈이 10년치 궁리를 해보고 싶습니다. 실현 가능성은 덜 생각하고 거창한 이야기 위주로 적어볼 셈입니다. * 2023년의 마지막 달인 12월에는 <커뮤니티는 ‘여론’인가? : ‘눈팅하는 뉴비’의 시대>( ✉️1주차), <살기 위해 ‘슈퍼맨’이 돼야 한다: 고립 돌봄 사회>( ✉️2주차), <‘각주의 감각’을 기르기 : 탈진실시대의 대화법>( ✉️3주차)를 보내드렸습니다. ‘넥슨 손가락 논란’을 계기로 온라인 커뮤니티의 작동 구조 및 여론에 대해 다루었던 1주차 레터를 준비하면서는 시의성 높은 주제를 한끗 다르게 다룬다는 것에 대하여 - 시의성을 놓치지 않으면서 지나치게 시의성에 매이지 않는 다는 것에 대해 생각했습니다. 이날 레터에서 미처 다루지 못했던 중요한 주제들에 대해서도, 조만간 다루어볼 기회가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2주차와 3주차 레터는 의식하지 않았지만, 절묘하게도 “의존하는 것도 능력이고 이를 배워야 한다”(+또한 서로서로 의존할 수 있는 사회를 만들어가야 한다)라는 테마로 엮을 수도 있었습니다. 2주차 레터의 핵심 메시지는 ‘우리가 안심하고 살기 위해선 개개인이 ‘슈퍼맨’이 돼야 하는 사회보다는, 누구나 취약하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서로 의존하는 것이 필요하다 - 그리고 우리에겐 ‘제대로 의존하는 능력’이 필요하다’ 라는 것이었죠. 나 혼자만 잘 살 수 있고, 나는 영원히 약해지지 않을거야!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정작 취약해졌을 때 다른 사람에게 제대로 의존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한편 3주차 레터의 주된 소재는 ‘탈진실시대’ ‘각주’라서 이런 내용과는 별 관계가 없어보이는데요. 그런데 3주차 레터에서 <지식의 착각>을 통해 살펴본 메시지는 우리는 원래 많은 정보를 다 통달해버릴 수 있는 ‘천재 로봇’이 아니고, 개인이 아는 것은 매우 적다. 이런 사실을 인정하고 ‘지식 공동체’에 제대로 의존하지 못한다면 우리는 탈진실시대를 헤쳐갈 수 없다는 것입니다. 돌이켜보니 영 다른 주제처럼 보이는 이 두 가지 이야깃거리가 한데로 모일 수도 있다는 것이, 참 신기한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처럼 의존할 수 있는 사회, 그리고 의존하는 법을 배우는 개인들에 대한 이야기는 비단 돌봄이라든지 지식 공동체 뿐 아니라 오늘날 많은 것들에 적용될 수 있는 말일지 모르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다양한 관점에서 더 살펴볼만한 주제입니다. * 연말호를 어떻게 꾸릴까 고민하다가, 올 한해를 돌아보는 것도 의미가 있을 것 같아 간단한 ‘연말 결산’을 해볼까 합니다. 그 과정에서 인상적이었던 레터와 관련 이런저런 이야기도 조금 덧붙여볼 수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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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올해의 기억에 남는 레터(상반기/하반기) 2.반응이 뜨거웠던 레터 3.올해의 한마디 이상의 순서로 짤막하게 적어보겠습니다. 1.올해의 기억에 남는 레터 ▲상반기 : ‘단순 반복 작업’은 사라져야 할까? : 노동의 미래 (2023.4.12· ✉️레터) ▲하반기 : 가해자에게 ‘사연’이 필요할까? : 어떤 서사 (2023.9.16· ✉️레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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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선 상반기 레터 가운데선 <‘단순 반복 작업’은 사라져야 할까?: 노동의 미래>(✉️레터)를 꼽아보았습니다. 미국의 사회학자 리처드 세넷이 쓴 <장인>과 <노동에 대한 새로운 철학>(토마스 바셰크) 두 권을 지팡이 삼았던 레터였습니다. “이제 AI가 단순 반복 노동을 모두 다 해주니 우리는 이제 지휘봉을 쥔 ‘사장님’처럼, 지루한 반복 노동은 할 필요 없이 기계를 ‘지시’하기만 하면 된다!”는 내용의 기사들을 보고서 의아하던 차에 쓰게 됐던 회차였고요. 현재도 여전히 비슷한 내용의 기사들이 아주 많이 쏟아져 나오고 있습니다. 리처드 세넷이 이 책에서 주장하는 핵심 메시지는 “단순 반복 노동이란 결코 단순하지 않다!”라는 점인데요. 사람들이 ‘생각 없이’ 비효율적인 일을 반복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은 어떤 일을 거듭할 때마다 전체를 생각하고 문제를 예방하고, ‘감’을 몸에 체득하는 과정을 거치게 된다는 거죠. 세넷의 문제의식을 빌어, AI 시대에도 과연 ‘우리는 단순 반복 노동이 사라진다는 것을 기뻐하기만 할 수 있을까?’라는 물음표를 던져볼 수 있었고요.
이 회차가 많이 기억에 남은 이유는 이 레터에서 던졌던 질문이 아마도 앞으로 우리가 AI와 노동에 대해 이야기할 때 살펴보아야 할 중요한 지점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근래 우연히 펼쳐본 미국 저널리스트 크리스 존스의 책 <1%를 보는 눈The Eye test>(링크)의 부제는 ‘기계가 도달할 수 없는 오직 인간만이 가능한 창의성의 경지’인데요. 이렇게 놓고 보면 흔한 ‘AI 시대에 도태되지 않기 위한 짱센 자기계발서’ 같지만, 제가 읽은 이 책의 핵심 내용은 ‘결국 인간의 마음을 뒤흔드는 것은 반복, 반복, 또 반복이다’라는 것이었습니다. 이 미련할 정도의 비효율적인(비효율적이어 보이는) 반복이란 결국 인간만이 가질 수 있는 기이한 집념, 열정과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레터의 내용과 이어 조금 더 생각을 이어가보자면, 만약 이런 ‘1%를 보는 눈(=리처드 세넷의 장인정신)’이 의미 없어진 것처럼 보인다면 그것은 실제로 가치가 없어진 것이 아니라 우리 사회가 이런 능력에 대한 가치를 제대로 매기고 있지 않은 것입니다. 앞으로도 우리 사회가 주시해야 할 문제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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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반기 레터 가운데서는 <가해자에게 ‘사연’이 필요할까?: 어떤 서사>(✉️레터)를 꼽아보았습니다. 해당 회차는 제게 여러모로 각별했던 회차였는데요. 다른 레터들도 대체로 마찬가지긴 하지만, 이 회차에서 제가 던졌던 질문(“범죄에 대한 내용을 어떻게 다루어야 하는가?”)은 제가 오랫동안 마음 속에 품고 궁리해왔던 고민이기도 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결국 이 회차에서 질문을 던지고, 두 권의 책(<나는 가해자의 엄마입니다> <언더그라운드2:약속된 장소에서>)을 지팡이 삼아 해찰하는 과정은 제 나름의 답을 궁리해보는 과정이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그만큼 어려운 회차이기도 했습니다. 이 문제와 관련해서는 많은 사람들이 자기 나름의 답을 가지고 있고, 조금이라도 읽을 마음이 들게 하지 않는다면 안 읽고 그냥 넘어가는 분들이 많을 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죠. 결코 만만치 않은 주제이기도 하고요. 그리고 무엇보다도 제가 궁금한 이야기였기 때문에, 대충 그럴듯한 이야기만 하고 넘어가고 싶진 않았습니다. 이 때문에 실은 이 회차는 ‘어떤 책을 고를 것인가’부터가 굉장히 난제였습니다. 왜냐면 현실의 범죄에 대한 서사를 다룬다고 했을 때, 어떤 책을 고르느냐 자체가 저의 관점을 보여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마지막까지 다루려고 했던 메인 책을 깊은 고민 끝에, 불과 마감 며칠 전에 바꾸면서 아예 레터 자체의 흐름이 바뀌었고, 그 과정에서 제가 생각치 못했던 지점을 짚게 되었던 경험이었습니다. 이런 방식의 마감은 심장에 좋지 않습니다만(...👤), 이처럼 스스로도 잘 모르겠고 궁금한 주제를 정면으로 돌파할 때 오는 즐거움이 있는 것 같습니다. 너무 쓰는 과정에 대한 이야기만 한 것 같긴 한데요. 실은 해당 시점에 제가 하고 싶었던 이야기는 레터에 모두 담겨있으므로 직접 읽어보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이 글을 읽고서 레터를 읽게 되신다면, 고민의 궤적을 곰곰 상상해보시면서 읽어보는 재미도 있을 것 같습니다. 2.반응이 뜨거웠던 레터 ▲폰카 없이 살 수 있을까? : 사진 없는 사진첩, 응시 (2023.11.8·✉️레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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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비교적 최근에 보내드렸던 회차인, <폰카 없이 살 수 있을까?: 사진 없는 사진첩, 응시>(✉️레터)입니다. 그렇게까지 시의적인 내용은 아니었지만, 많은 연구자님들이 자신의 경험에 기반한 다양하고 흥미로운 피드백들을 보내주셨던 레터였습니다.(✉️피드백페이지) 실은 뉴스레터를 운영하는 사람으로서 ‘어떤 회차의 반응이 좋은가?’에 대해서는 일률적으로 말하기가 어려운 부분이 있습니다. 각 회차별로 천차만별이기 때문이죠. 어떤 회차의 경우 피드백은 거의 오지 않았지만, 나중에 어떤 분을 만나서 이야기를 나눌 때 ‘그 회차가 참 좋았다’라고 두고두고 많이들 말씀하시기도 하고, 어떤 회차는 주제가 시의적이라서 공유도 많이 되고, 특히 더 많은 반응들이 오기도 합니다. 오픈율이라든지 구독 전환율, 수신거부 숫자 등만으로 평가할 수 없는 부분도 많습니다. 다만, 그 중에서도 제가 ‘반응이 뜨거웠던 레터’에 ‘피드백이 가장 많이 왔던 레터’를 꼽은 이유는 - 이것이 ‘독자의 반응을 분석할 수 있는 객관적인 지표’이기 때문이 아니라, 제가 피드백을 받아서 읽고, 또 답장을 적는 것을 좋아하기 때문입니다. 가벼운 피드백도 좋으니 가끔 해찰거리가 생기시면 레터를 읽고 나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3.올해의 한마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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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리구치 노부오는 제자들에게 항상 “마음이 들썩이는 글이 아니라면 쓰지 말라”고 말했다고 하는데 정말이지 맞는 말이다. 아무리 심각한 문제 불행한 사건에 대해 쓸 때라도 탐구 그 자체, 또 쓰기 그 자체에는 역시 발견의 기쁨이 있다. 그것이 없다면 쓰지 않는 편이 낫다. 적어도 다음의 사실은 확실하다. 쓰는 사람에게 시시한 게 독자에게 재미있을리는 없다. 쓰는 사람에게는 재미있지만 독자에게는 그 재미가 잘 전해지지 않는 경우는 가끔-실은 종종-있다. 하지만 저자가 ‘시시하다’고 생각하면서 쓴 것이 읽는 사람에게는 재미있다는 형편 좋은 일은 절대로 일어나지 않는다고 생각하는게 좋다.” - 오사와 마사치, <책의 힘思考術>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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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보통 이런 대목에서는 ‘올해의 책’을 꼽아야 할텐데, 올해엔 레터를 쓰면서 신간들을 그래도 은근히 많이 읽긴 했지만 가장 개인적으로 재밌게 읽었던 책은 역시나 구간舊刊(...)이고 누구에게 보편적으로 추천할 만한 책이 아니기 때문에 책을 추천하는 대신 올해의 한마디를 꼽아보기로 했습니다. 그마저도 ‘올해의 발언’ 이런 게 아니라, 그냥 제가 올해 읽은 글 중에섭니다. (읽을 책을 추천받고 싶으신 분들이라면 올해치 레터 아카이브[아카이브]를 훑어보시고 관심이 가는 제목 레터 말미의 <참고문헌>을 살펴보셔도 좋을 것 같습니다. 또한 글의 하단 각주1)에서, 언론사들이 꼽은 올해의 책들을 소개하겠습니다.) * <책의 힘>(링크)은 일본의 유명한 사회학자 오사와 마사치가 공부, 독서에 대해 쓴 책입니다. 국내엔 ‘파국의 시대, 한 사회학자가 안내하는 읽고 생각하고 쓰는 기술’이란 부제를 달고 출간되었습니다. 위의 대목 일부는 제가 지난 11월 강연에서 인용하기도 했는데요. 우연히 읽고 난 뒤로 몇 달 째 제 모니터 앞에 붙여두고 있는 문구이기도 합니다. 때론 침울하고 잔혹한, 답답하고 엄밀한 문제들을 다루면서 ‘재미’ 운운하는 것은 다소 맞지 않아 보일 수 있습니다만, 곰곰 생각합니다. 과연 우리가 다른 사람에게 말 걸기로 마음 먹었을 때, 새로운 미래를 생각해볼 때, 무언가 없었던 생각을 나누고, 혹은 현실로 만들려고 할 때 그 일이 ‘재미’가 없을리가 있을까요? 미셸 푸코는 자신의 지적 활동의 원천에 대해 ‘호기심’이라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 ‘한마디’라는 문패를 걸었지만, 여기에 이어지는 한마디를 더 적어볼까 합니다. 고병권 노들장애인야학 철학교사가 ‘호기심’에서 ‘심정(염려)’으로 흐른 - 자신의 공부하는 마음에 대해 쓴 칼럼 일부입니다.(예전 회차 ‘글 속 한 문장’에 인용하기도 한 칼럼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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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지만 언제부턴가 공부란 호기심으로만 하는 게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호기심만큼 나를 매혹시키지는 않았지만 호기심 이상으로 내 마음을 붙드는 것이 있다. 우리가 어떤 주제에 마음이 가는 이유는 그것이 신기해서일 수도 있지만, 안타깝고 걱정이 되었거나 서럽고 화가 나 그것을 그대로 두고 볼 수는 없어서일 수도 있다. 공부하는 심정도 그렇다. 호기심 때문에 더 멀리까지 파고들어가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염려 때문에 더 멀리까지도 살피는 사람도 있다.” -고병권, ‘[고병권의 묵묵]공부하는 심정’ 경향신문, 22.9.16(링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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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심정’을 담은 그의 칼럼집(<사람을 목격한 사람>·링크)이 최근 발간되기도 했는데요. 이 책을 읽으며 - 2023년을 되돌아 보며, 그리고 2024년 새해를 맞이하며 - ‘재미’와 ‘심정’이 어우러지는 어떤 공부에 대해 생각해보게 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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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2023년 언론사들이 꼽은 ‘올해의 책들’의 링크 일부를 모아보았습니다. 여러 언론사가 중복으로 꼽은 책도 있습니다만, 각 언론사마다 다양한 주체들(책팀 기자, 사서, 출판계 관계자 등)의 추천으로 꾸렸으니 각 언론사마다 어떤 기준으로 꼽았는지 살펴보는 것도 흥미로울 것입니다. 제가 읽어본 책들도 있고, 재밌을 것 같아서 사두곤 미처 읽어보지 못한 책들도 많습니다. 아래 사진은 경향신문 책과 삶 팀이 선정한 10권입니다. 저 중에 읽어보신 책이 있으신가요? - 자세한 목록은 아래 각 링크를 누르면 보실 수 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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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이 꼽은 2023년 ‘올해의 책’. 저중 읽어본 책이 거의 없어서 시무룩해집니다만, 다르게 생각해보면 다른 사람들이 곰곰 열심히 생각해서 ‘올해의 책’으로 꼽을 만큼 훌륭한 책을 아직 읽지 않았다는 뜻도 되니 아직 뜯지 않은 대단한 선물이라고 볼 수도 있겠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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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의 해찰 피드 : #‘서울의 봄’ 열풍 #의존하는 능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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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 한 달간 SNS에서 특별히 이슈가 되었던 기사, 이슈가 된 사건 등에 대해 생각해볼만한 좋은 칼럼 등을 소개합니다. #‘서울의 봄’ 열풍 지난 24일 영화 <서울의 봄>이 천만 관객을 돌파하면서 ‘범죄 도시2’에 이어 올해 두번째 천만 영화의 반열에 올랐습니다. 12.12 군사 반란(1979)을 테마로 한 이 영화는 여러모로 큰 이슈를 불러왔는데요. 그 중에서도 독특한 점은, 1020 세대에게 특히 큰 인기를 끌었다는 점이었던 점이었고요. 너무 화가 나는 나머지 ‘심박수 챌린지’라는 것이 열릴 정도로 대단한 열기였다고 합니다. 이처럼 여러모로 이슈가 되고 있는 영화이기 때문에 그간 다양한 칼럼 등이 나오기도 했습니다. 그중 영화, 그리고 사건을 바라보는 다양한 시선을 소개해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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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두광 ‘악마화’가 우리를 구원할까 독서 시간: 약 6분 / 글자수 : 약 2700자
👤글 속 한문장 “난 눈물이 흘러나오기도 했다. 소름이 돋기도 했다. 영화는 전두광을 그냥 악마도 아닌 ‘절대적 악마’로 그려내는 듯했다. 9사단장 박해준(노태우)을 비롯한 12·12 쿠데타 가담자인 똥별 허수아비 장군들이 마지못해 악의 길을 택한 ‘상대적 악마’라면, 그들을 악의 사단으로 이끈 전두광은 악의 길을 택하는 데에 한치의 흔들림도 없는 절대적 악마였다[...]영화 속 이태신이 절대적 악의 절멸에 실패하긴 했어도, 절대적 선(정의의 사도)이라고 볼 수 있지 않느냐고 물을 이가 있을지도 모르겠다. 대답을 대신하면, 난 이태신에게서 그 어떤 씻김의 느낌도 갖지 못했다. 그 역시 구원의 평온함이 아닌, 치밀어 오르는 분노를 키워주었을 따름이다.“ 김윤철 교수의 칼럼입니다. 영화 속 전두광(전두환)를 향해 사람들이 강렬하게 느낀 굉장한 분노에 대해 성찰적인 시선으로 바라봅니다. 1988년 시위 당시 그 모든 군부, 시스템의 문제가 “전두환을 찢어 죽이자!”라는 구호로만 수렴되었던 것에 대한 답답함과 2023년 <서울의 봄>을 보며 느낀 끓는 분노의 감정은 약 40년의 시간을 지나 서로 이어집니다. |
1020세대의 새로운 ‘12.12’ 독서 시간: 약 3분 / 글자수 : 약 1700자
👤글 속 한문장 “반복 속에서도 차이가 존재하고, 비록 그 차이가 당장에는 눈에 띄지도 않을 정도로 미세한 것이라 하더라도, 그 차이의 흐름이 역사를 바꿔나가는 것이라면, 우리는 단순한 ‘라떼 이야기’에서 벗어나 차이 속에서도 반복되는 구조, 그 구조하에서도 생겨나는 차이를 되새겨보려 노력해야 한다[...]덧붙이자면, 새로운 세대가 발견해내는 앞선 세대는 바로 앞선 세대들 스스로 원본이라 생각하는 모사본과는 다른 또 하나의 모사본이다. 그 모사본이 앞선 세대들의 성에 차지 않더라도 새로운 세대가 반복되는 사회적 문제를 자신들만의 방식으로 깨닫고 해결해나가리라 믿는 것, 그것이 반복되는 역사 속에서 얻어야 할 행동지침일 것이다.“ 류동민 교수의 칼럼(‘차이와 반복’)입니다. 이번 <서울의 봄> 흥행에는 MZ세대들 사이의 호응이 큰 영향을 미쳤는데요. 류 교수는 역사적 사건에 대한 재현, 해석은 세대가 바뀌도록 반복되는 과정에서 새로운 교훈을 얻게된다고 말합니다. ‘2023년 버전의 12.12’...등이 계속 이어진다는 것이죠. 벌어진 역사적 사건(Fact) 자체가 바뀌진 않습니다만, 그것을 어떤 방식으로 그려낼지, 또 거기서 어떤 교훈을 얻을지는 후세의 몫이라는 것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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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재난이 또 일어나지 않기 위해서 독서 시간: 약 3분 / 글자수 : 약 1700자
👤글 속 한문장 “그러나 그 사건의 본질은 악의 무리와 몇몇 빌런들의 오판이 아니다. 눈에 띄는 악역들이 존재하긴 하지만 40여년 전의 그 사건은 누구에 의해서든 언제 어디서고 일어날 수 있는 일이었다. 세상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선과 악의 대립으로 이해하는 것은 도움이 되지 않는다. 이 사실을 이해하지 못하면 그 사건은 장소와 형태를 바꿔 언제 어디서든 반복될지 모른다.“ 한민 문화심리학자의 칼럼입니다. 유명한 밀그램 실험 등을 예시로 들면서 우리가 악독한 개인에게로 모든 화살을 돌리고 분노하기보다는, 그런 일이 가능케했던 시스템에 대한 비판을 함께 해야 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
타란티노라면 전두광을 어떻게 했을까? 독서 시간: 약 4분 / 글자수 : 약 2000자 👤글 속 한문장 “영화감독 쿠엔틴 타란티노는 2차대전 당시 미군 특수부대를 다룬 <바스터즈: 거친 녀석들>(2009) 시나리오를 쓰면서 ‘히틀러를 어떻게 할까’ 고민했던 경험을 털어놓은 적이 있다. “옛날 영화를 재탕하고 싶진 않았어요. 그러면 실망스럽잖아요. (암살 위기의) 히틀러를 뒤로 빼내고 싶진 않았거든요. 그럼 어떻게 할까. 새벽 4시쯤에 시나리오를 쓰다가 결심했어요. ‘그냥 죽이자.’ 그래서 종이 한 장을 꺼내 그렇게 썼어요. ‘X발 그냥 죽여.’”[...]독일 영화평론가 게오르그 제슬렌은 <바스터즈>를 두고 “이 영화는 히틀러처럼 스스로 죽은 나치범들을 영화를 통해 복수하는 것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부당한 현실 그 자체를 복수한다고 볼 수 있다”고 분석했다.” <장고> <원스 어폰 어 타임...인 할리우드> 등에서 대체 역사를 통해 가해자들에게 ‘통쾌한 한방’을 날렸던 쿠엔틴 타란티노 감독이 만약 <서울의 봄>을 만들었다면 어땠을까?라는 질문을 던져본 백승찬 기자의 칼럼입니다. 한때 SNS에서는 <서울의 봄> 관람 후 배우 황정민(전두광 역)이 괴롭힘당하는 영화(?)를 추천해달라는 이야기가 나오기도 했는데요. 아마 셀프-가상으로나마 전두광에게 ‘통쾌한 한방’을 날리고 싶었던 관객의 열망이었을 것입니다. 필자는 이런 욕구가 허망한 것만은 아니라고 말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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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존하는 능력 지난 2주차 레터에서는 우리가 각자 ‘슈퍼맨’으로 살기 위해 노력하기보다는(그리고 대체로 실패해서 절망의 늪에 빠지기보다는) '의존하는 능력’, 그것이 가능한 사회적 분위기를 북돋는 것이 중요하다!라는 이야기에 대해 생각해보았는데요. 관련 기사, 인터뷰가 눈에 띄었기에 소개해보고자 글을 가지고 왔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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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독사(생) 줄이려면 동네 되살려야” 독서 시간: 약 9분 / 글자수 : 약 5000자
👤글 속 한문장 “고독사가 가장 많은 연령층은 중장년 남성입니다[...]노인들은 공적 지원망을 통해 도움을 받는 자신의 모습을 비교적 수월하게 받아들입니다만, 40~50대 남성들은 ‘내가 이 정도로 망가져서 이웃들과 국가 복지시스템에 의존하는 상태가 됐다’는 낙인감을 견디기 힘들어합니다. 한국 성인 남성들은 대체로[...](스스로) 받는 사람이 될 것이라곤 상상해본 적이 없거든요. 세상을 떠난 이들의 거처에서는 최악인 상황에서도 월세를 꼬박꼬박 내면서 도움받지 않고 살아보려 애썼던 흔적들을 발견하곤 합니다[...]이웃에게 폐를 끼치면 안 된다는 강박이 지나치다 못해 서로 곁을 안 내주고 상호작용을 잊어버리고 있어요.“ 송인주 서울시복지재단 선임연구위원 인터뷰입니다. ‘고독사/생’과 도시민들의 외로움을 깊게 파고들어보았습니다. 물론 고독사/생의 문제를 특정 연령 혹은 계층에만 국한된 문제라고 볼 순 없겠지만, 대체로 스스로의 취약함을 인정하기 힘들어 하는 사람일수록 도움을 받지 않으려는 경향이 크다고 합니다. 이 인터뷰를 읽으며, 어떻게 하면 우리 사회가 스스로 취약함을 드러내고, 또 그것을 ‘함께’ 돌볼 수 있을지에 대해 생각하게 됩니다. |
의존에도 연습과 용기가 필요하다 영문(NYT) 👤글 속 한문장 “극단적인 경우 우리는 도움을 요청하는 일 자체를 반드시 피해야 할 것으로 본다. 이는 치명적인 결과를 낳을 수 있다[...]“의존의 기술”은 도움을 감사히 받아들이고, 결정적으로 타인의 중요성을 인식하는 것을 의미한다. 친구, 사랑하는 사람, 동료 - 심지어 국가에 의존하려고 해도 나름의 위엄과 기술이 필요하다. 협업에는 수완이 필요하다[...]의존을 병리화하는 사회에서 취약해지려면 용기가 필요하다.“ <자력갱생Bootstrapped> 책을 통해 미국인들 사이에 깊게 뿌리박혀있는 ‘자력갱생 신화’를 비판한 작가 Alissa Quart의 칼럼입니다. 저자는 스스로의 취약함을 인정하지 않고, 남에게 의존하지 않으려는 미국 특유의 기업가 문화(모든 개인은 자기자신의 기업가이고, 가난한 사람은 ‘부자-되기를 실패한 사람’일 뿐이다)를 비판하고 - 의존의 능력과 아름다움을 강조합니다. 미국의 사례를 들고 있지만, 오늘날 우리나라의 상황과도 굉장히 유사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런 ‘자력갱생 신화’가 위험한 이유는 이것이 어디까지나 ‘신화’이기 때문입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서로 무/의식적으로 서로에게 의존하고 있고 의존해야만 합니다. 그렇다고 할 때 의존해야 한다는 사실 자체를 인정하고 ‘어떻게’ 의존할 것인가를 고민해가야겠죠. 의존 그 자체가 모든 걸 해결해주는 거룩한 요술방망이도 아니니까요.( 링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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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림: 2024년 연재주기 관련 * 인스피아는 2021년 8월 이후, 약 2년 반의 기간 동안 총 110여통의 편지를 보내드렸습니다. 오는 2024년부터는 격주+마지막주(에세이)의 체제로 당분간 시도를 해보려 합니다. 원래 연재 주기와 관련해 격주, 시즌제 등을 고려했었습니다만. 완전 격주는 너무 중간이 붕 뜰 것 같고(아닌가요?👤) 시즌제는 작년 약 1달 반 동안 휴재를 시도해본 결과, 통으로 쉬면 약간 루즈해지는 감이 없잖은 것 같더라고요. 즉, 그래서 기존의 에세이는 그대로 마지막주에 고정으로 하고, 향후 당분간은 [첫째주 셋째주 + 마지막주] 의 형태로 편지를 보내드릴 예정입니다. 고로 통상 수요일이 4번 있는 달의 경우 [둘째주]만 휴재이고, 첫째 셋째 넷째주는 편지를 받으실 수 있고, 가끔 수요일이 5번 있는 달의 경우 격주의 형태로 가고, 다음달엔 통상처럼 첫주부터 편지가 배송됩니다. 아래 처럼요.(2024년 달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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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 고민 끝에 이렇게 연재주기를 조정한 것은, 조금 더 다양한 층위의 책과 기사 등을 읽고 의미있는 글을 쓰기 위해서는 약간의 심적 여유가 필요하다는 판단에서 입니다. (더 읽으면 더 읽었지 덜 읽진 않을 것 같습니다...😂) 또한 SNS 운영, 인터뷰 등 다양한 시도를 해보려고 해도 1인 매체이다보니 아무래도 매주 연재주기를 가져가면 사부작사부작 새로운 시도를 해볼 여유가 없더라고요. 아직 구체적으로 어떤 새로운 시도를 해볼 수 있을진 모르겠습니다만, 책을 많이 읽으면서도 틈틈이 고민해서 별도의 재미난 소식이나 계획이 생기면 반드시 편지를 통해서도 알려드리겠습니다! :) 인스피아는 짧은 정비 기간을 거친 뒤 1월 셋째주(2024년 1월 17일)부터 새로워진 연재주기로 돌아오겠습니다. 즐거운 연말연시 되시길 바랍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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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회차의 반응 지난 회차 레터(‘각주의 감각’을 기르기 : 탈진실시대의 대화법‘)에 대한 감상 및 피드백 노션 페이지는 아래 버튼을 누르면 보실 수 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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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정이벤트] ‘바자렐리 전시회’ 티켓을 드립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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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12월 21일부터 2024년 4월 21일까지 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에서 프랑스 추상화가 빅토르 바자렐리(1906~1997)의 <빅토르 바자렐리 : 반응하는 눈> 전시회가 개최 중입니다. 아래 링크를 통해 응모해주신 연구자님들 가운데 추첨을 통해 총 20분(1인 2매·총 40매)께 전시회 티켓을 보내드릴 예정입니다. 전시회 관람을 원하시는 분들께선 1월 12일(금)까지 아래 버튼을 눌러 신청해주세요. 휴재가 끝난 이후 1월 17일자 레터에 당첨자를 발표하겠습니다. 많은 응모바랍니다.👥🎄 ✏️ “나는 순수한 형태와 순수한 색으로 세상을 묘사할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추상의 진가를 깨닫게 되었다.” 바자렐리는 도형과 색상으로 이뤄진 자신만의 조형적 언어를 창조했다. 컴퓨터가 상용화되기 전에 수학적 계산과 광학 이론을 토대로 컴퓨터로 코드를 짜듯 색상과 형태를 정교하게 그려넣어 미묘한 변화와 착시를 일으키는 화면을 만들어냈다. 현대미술, 그래픽 아트, 상업 디자인과 패션에 이르기까지 바자렐리가 미친 영향이 크기에 ‘바자렐리는 어디에나 있다’는 말은 성립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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