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인표 국제에디터·중국전문기자

중국은 ‘전관예우’가 남다르다. 부처마다 노간부국(老幹部局)이라는 조직이 있다. 전직 간부들이 은퇴 이후 생활에 불편이 없도록 챙기는 게 주요 업무다. 해마다 명절이 오면 현직 간부들은 꼬박꼬박 선물보따리를 들고 전직 간부들을 찾아가 문안인사를 드리곤 한다.

외국 전직 인사들도 잘 챙겨준다. 현직에 있을 때 각별했다면 물러난 뒤에도 인연을 이어간다. 미·중 수교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던 헨리 키신저 전 미국 국무장관은 지금도 중국 고위 인사들이 미국을 방문할 때면 꼭 찾아뵙는 ‘멘토’다. 빌 클린턴 전 미국 대통령이나 토니 블레어 전 영국 총리는 요즘도 중국을 자주 찾아간다. 특강 한 번 하면서 우리돈으로 수억원씩 강연료를 챙긴다. 국내서는 보기가 드문 한국의 전직 총리도 중국 동북지방의 국제행사에 가보면 자주 만날 수 있다.

[홍인표의 차이나칼럼]대들면 죽는다

중국의 전관예우는 동양 특유의 미풍양속으로 볼 수도 있지만, 현직을 위한 의도적인 행동이기도 하다. 조직을 위해 충성하면 우리가 끝까지 챙겨준다거나, 중국을 도와주면 밑지는 장사가 아니라는 메시지가 담겨 있다. 중국 공산당 중앙정치국 상무위원이라고 하면 우리에게 생소하게 느껴지지만, 중국의 최고 집단지도체제를 말한다. 공산당 최고지도자는 총서기지만 총서기를 포함한 정치국 상무위원 7명이 중국의 각 분야를 책임지고 있다. 예컨대 류윈산(劉雲山) 중앙정치국 상무위원은 권력 서열이 5위지만, 사상·문화·언론 분야에 관한 한 가장 막강한 권한을 갖고 있다. 정치국 상무위원은 현직에서 물러나더라도 국가원수에 준하는 예우를 받는다. 현재 생존하고 있는 전직 정치국 상무위원은 18명. 그들은 최고 수준의 의료기술을 갖추고 있는 인민해방군 301병원이나 305병원을 이용할 수 있고, 지방을 시찰할 때면 현지 간부들이 수행한다.

1980년 이후 정치국 상무위원을 지내면 형사처벌을 받지 않고있다. 하지만 이런 특혜도 이제는 깨질 운명을 맞고 있다. 2007년부터 지난해까지 5년 동안 정치국 상무위원을 지낸 저우융캉(周永康) 전 중앙정법위원회 서기(71)가 사법처리를 눈앞에 두고 있다. 중앙정법위 서기는 200만명에 이르는 검찰과 경찰, 무장경찰을 통괄지휘하는 막강한 자리였다. 연금상태인 것은 확실하고, 그가 얼마나 중형을 받을지는 수사 결과에 따라 결정될 것으로 예상된다.

저우융캉 전 서기는 이른바 석유방(석유업계에 몸담은 고위 간부) 출신이다. 1966년 석유 관련 전문대학인 베이징 석유학원을 졸업한 뒤 다칭(大慶)유전, 랴오허(遼河)유전에서 일했다. 석유방의 대부는 장쩌민 전 국가주석의 최측근인 쩡칭훙(曾慶紅) 전 국가부주석이다. 그 덕분에 저우융캉은 장쩌민 사람으로 꼽힌다. 석유 관련 국영기업인 중국석유천연가스총공사 총경리(사장)로 있다가 1998년 3월 신설한 국토자원부 초대 부장(장관)으로 부임할때까지 32년간 석유와 인연을 맺었다.

정치국 상무위원을 지낸 고위 간부 출신은 형사처벌을 받지 않는다는 불문율을 깬 이유는 무엇인가. 지금까지 드러난 바로는 저우융캉 전 서기의 비리가 위험수위를 넘었다는 것이다. 그는 아들을 통해 석유업계 이권과 부동산 개발에 손을 대 천문학적인 재산을 모은 것으로 전해졌다. 그렇지만 단순 비리로 사법처리까지 받는 것은 선뜻 이해가 가지 않는다. 물론 비리 규모가 크다는 점도 작용할 수 있겠지만, 어떻게 보면 부정부패는 중국 사회에 만연해 있고, 굳이 누가 누구를 처벌하느냐는 말이 나올 정도로 뿌리박힌 현상이기 때문이다.

여기서 추측할 수 있는 것은 저우융캉이 더 이상 지도부가 봐줄 수 있는 선을 넘지 않았느냐는 것이다. 그는 무기징역을 선고받은 보시라이(薄熙來) 전 충칭시 당서기와 수시로 연락을 주고 받을 정도로 각별한 사이였다. 당국의 공식적인 발표는 아직 없지만, 지난해 3월19일 정법위 서기 시절 자기 휘하에 있던 무장경찰을 동원해 당 지도부가 살고 있는 중난하이(中南海) 부근에 장갑차를 출동시켜 위력을 과시했다는 점을 낙마 계기로 보는 관측이 유력하다.

그런데 중국 지도부는 저우융캉 전 서기를 비리 혐의로만 처리한다는 방침을 세웠다고 한다. 굳이 국민들을 자극할 필요가 없다는 판단에 따라 쿠데타 기도는 밝히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시진핑 주석이 부패와의 전쟁을 강도높게 펼친 결과 저우융캉이 걸려든 것이고, 법 앞에 평등하다는 원칙을 내세워 어쩔 수 없이 처벌할 수밖에 없다는 점을 강조할 것으로 보인다.

그렇지만 속사정을 들여다보면 당의 권위에 정면도전했을 때는 가차없는 응징이 이뤄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런 점에서 저우융캉의 사법처리는 권력투쟁·정치투쟁의 결과일 뿐, 법치의 결과가 아니라는 중국 인권 변호사 푸즈창(浦志强)의 지적은 충분히 일리가 있다. 대들면 죽이거나, 잠재적인 적대세력은 싹부터 자르는 것이 권력의 속성인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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