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도의 시대가 열릴까

유용화 | 동국대 대외교류연 책임연구원

선거철만 되면 ‘중도’ 정치가 상종가를 친다. 기존 정치인들은 내년 총선에서 당의 외연을 넓히는 선거 전략상 중도만큼 좋은 이미지가 없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각 당은 중도성향의 대중적 인물을 내세우기 위해 벌써부터 영입 전쟁까지 벌이고 있다. 캐스팅보트(Casting vote)로서의 중도층을 인식하고 있기 때문이다. 하여튼 중도 경쟁이 갈수록 치열해질 전망이다.

1992년 미국 민주당의 빌 클린턴과 1994년 영국 노동당의 토니 블레어는 ‘제3의 길’을 내세워 20여년간 연전연패하던 당을 위기에서 구해내고 집권에 성공했다.

[세상읽기] 중도의 시대가 열릴까

영국의 사회학자 앤서니 기든스(Anthony Giddens)에 의해 이론화된 ‘제3의 길’, 중도개혁주의(Radical Centrism 또는 Reform- Minded Centrism)는 지식산업사회에서 사회의 중추세력으로 떠오르는 신(新)중도층을 기반으로 하고 있다. 현실정치에서 한계를 드러낸 서구 유럽의 구좌파와 기득권만을 보호하려는 신보수주의 등 양극단의 문제점을 극복하기 위한 대안으로 제시됐다.

한국에서 ‘중도개혁주의’ 중요성을 처음으로 설파한 사람은 정치학자 황태연이다. 황태연 교수는 공자의 중용사상과 공감의 정치철학을 바탕으로 “좌우 극단세력을 제외하고 중도개혁세력을 중심으로 합리적 중도 좌익세력에서 개혁적 중도 보수세력까지 망라한 모든 정치세력들을 하나의 블록으로 묶는 중도 대통합론이 중도개혁주의 정치철학”이라고 주장했다.

최근 안철수 의원은 새정치의 신당은 ‘중도개혁정당’을 지향한다고 밝혔다. 천정배 의원도 중도개혁정치를 언급했다. 마찬가지로 분당 위기에 처한 새정치연합의 인사들도 중도 진보를 다시금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한국 정치권에서 중도층들은 선거전술 대상으로서만 후한 대접을 받았을 뿐, 선거가 지나면 용도폐기됐다. 중도층을 실제적 기반으로 하는 정치세력화는 제대로 조직화되지도 못했다. 1955년 창당된 민주당과 2000년의 새천년민주당이 중도개혁적 정당 성격을 표방했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구현되지 못했고 그 맥락 역시 한국 정치권에서 제대로 이어져 내려오지 못하고 있다.

21세기 지식·정보혁명을 주도하고 있는 지식근로자, 중소 벤처기업인, 전문직 종사자들을 지칭하는 신중도층은 한국에서도 점점 수적으로 증가하고 있으며, 사회 전반에서 진취적 개혁세력으로 부상한지 이미 오래되었다.

20세기 후반, 미국과 유럽 사회는 정치권에서의 이념 대립과 분열, 그리고 경제 활력의 돌파구를 찾지 못하고 있었다. 그러한 불투명한 환경 속에서 신중도층을 기반으로 하는 ‘제3의 길’이 사회통합 및 경제 성장의 역동적 대안으로 부상되었던 것이다.

현재 한국사회 역시 지루하게 벌어지고 있는 이념 대립, 분열과 갈등, 사회적 불평등, 불균형 성장, 기회의 차별화, 저성장과 꽉 막힌 경제 현실 등 제반 문제가 겹겹이 쌓이고 있다. 국민들은 대안 없는 정치에 지쳐 있을 뿐만 아니라, 박근혜 정권의 권위주의적 정치 회귀에 불안과 공포감마저 느끼고 있다. 우리 사회가 안고 있는 제반 모순과 문제점이 해결되기는커녕 악순환의 수렁에 빠져들고 있다.

‘중도’는 막연한 가운데, 중립이 아니다. ‘중도개혁 정치’는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는 균형, 그리고 관용과 함께하는 통합의 정치 철학이며, 부유층이든 빈민계층이든 모든 사회구성원들이 적극적으로 사회·경제활동을 할 수 있도록 하며, 협력과 배려, 합의의 사회문화를 만들고자 하는 개혁적 정치사상이다.

그런데 과연 대한민국에도 ‘중도개혁의 정치시대’가 열릴 것인가. 아니면 ‘중도 정치’가 외연 확장을 위해 정략적으로만 이용되고 도용될 것인가. 그것은 미래의 역사를 바라보는 안목을 갖춘 정치인의 존재와 현실정치를 구체적으로 풀어나가는 역량에 의해 결정될 것이다. 대한민국의 미래를 투자할 수 있는 ‘진정한 제3의 길’이 열리기를 기대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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