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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울뿐인 민생이 아닌, 노동입법의 정치
한 달 후면 21대 국회도 마무리다. 곧 22대 국회가 출범한다. 그러나 지난 4년의 모습을 답습하면 안 된다. 되짚어 보면 21대 국회 입법 과정에서 여야의 눈치로 차별금지법은 좌절되었고 노조법 2·3조는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로 가로막혔다. 정부 부처와 관료조직의 소극적 행정 또한 제도의 지체에 영향을 끼쳤다. ‘아프면 쉴 권리’를 위한 상병수당 시범사업은 구멍투성이고 전국민고용보험은 소리 없이 정책에서 사라졌다. 이 모두 우리 사회가 차별이 아닌 평등으로 나아가야 할 바로미터인데도 말이다.21대 국회 평가는 여러 잣대가 있겠지만 입법성과만 살펴보자. 지난 4년 동안 국회에서 약 2만6783건의 법안을 다루었다. 그러나 법안 처리는 36.1%(9676개)에 불과하고 그 외 다수는 처리되지 못했다. 문제는 시민의 삶과 밀접한 고용노동과 보건복지 법안들 대부분이 계류된 점이다. 통과 법안 다수는 경제·산업, 건강·안전, 인권·참여 분야다. 그에 비해 복지돌봄과 고용노동 분야는 ... -
론스타 등에 5500억 주지 않으려면
5500억원이 넘었다. 대한민국은 2022년에 사모펀드 론스타에 패소했고, 작년에 엘리엇에 지더니, 지난 11일 메이슨 캐피탈에도 패소했다. 그래서 3개 펀드사에 주어야 할 배상금 원리금 총액이 5500억원이 넘었다. 한동훈 전 법무부 장관은 뉴욕과 런던에서 판정 무효 절차를 밟고 있으나 해결책이 되기 어렵다. 국민세금으로 막대한 배상금을 지급해야 하는 처지가 됐다. 이 시간에도 이자가 붙는 중이다. 펀드는 어떻게 국민의 세금으로 배상을 받게 되는가? 그 열쇠는 펀드사에 대한민국을 국제중재에 회부할 특권을 준 제도에 있다. 그 안에는 ‘공정하고 공평하게 대우할 의무’라는 조항이 있다. 거의 한없이 넓은 의무를 국가에 지우는 구조다. 한국이 이 의무를 위반했다는 이유로 배상명령을 얻어 낸다. 나는 2006년 <한미 FTA 마지노선>이라는 책에서부터 이러한 특권에 반대했다. 이유는 간단하다. 펀드사가 한국에 투자하여 수익을 내는 동안에는 한국법과 한국 법원에 따... -
‘자두청년’을 떠나보내며
설날이 지나자마자 농촌의 청년 활동가에게서 무거운 연락을 받았다. 청년 귀농귀촌 1번지로 알려진 의성군으로 귀농해 자두 농사를 지으며 ‘자두청년’이자 ‘로컬크리에이터’로 살았던 청년 농민이 스스로 목숨을 버렸고, 뇌사 상태라는 소식이었다. 고인의 유서에는 농촌에서 가장 영향력이 있는 청년단체의 수장으로부터 물질적, 정신적으로 당한 착취에 대한 처절한 고발이 적혀 있었다. 가해자로 지목된 이는 사실무근이라 반발하지만 조만간 수사결과가 나온다고 하니 지켜볼 일이다. 농촌에 살러 들어간 청년들은 이런 일이 언젠가는 터질 일이었다고들 입을 모았다. 알려지지 않은 사건사고도 많고, 좁은 지역사회에서 쉬쉬하며 넘어간 일도 적지 않았노라며. 그렇게 자두청년은 지난 3월8일 끝내 생을 놓고 말았다. 향년 29세였다.지역에 영향력을 행사하는 조직의 수장을 맡는 것은 지역 정치인으로 가는 기초발판이다. 청년단체나 봉사단체들은 행정과 지역 정가와 두루 관계를 잘 맺어야 함은 불문율. 윗선... -
시혜와 비난을 넘어
제22대 총선이 마무리되었다. 성적표를 보면 정권심판론이 강하게 작용하면서 여소야대 국면이 이어지게 됐다. 혜성처럼 등장한 조국혁신당과 당을 박차고 나가 생존한 개혁신당도 주목할 만하다. 정작 그 와중에 녹색정의당은 국회에서 퇴장하게 됐다. 3%의 벽을 넘지 못해 의석을 잃었고, 심상정 의원은 은퇴를 선언하며 눈물을 보였다. 나는 그 광경 앞에서 문득 어린 시절의 기억을 떠올렸다.울산 출신인 나는 “권영길이 뽑으소, 영 아이다 싶으면 노무현이도 괜찮고”라는 말로 2002년 대선을 기억한다. 동네 사람들에게 권영길을 뽑아달라 당부하는 노조 아저씨들이 있었고, 노무현의 이름도 가끔 호의적으로 언급됐다. 당시 나는 권영길을 뽑으라면서 왜 그를 “영 아이다 싶은” 사람으로 여길 수도 있다고 말하는 건지, 그리고 당이 다른데 왜 노무현도 “괜찮다”고 말하는지 의문이 들었다. 이후 조금 더 자랐을 무렵, 민주당과 민주노동당의 차이를 ‘한강과 실개천’으로 비유하는 걸 보고 아리송하기도 했... -
검사와 의사
민주주의 사회에서 선거는 국가의 비시민적 활동을 조절할 수 있는 제도다. 선거를 통해 여론이 국가에 직접 개입할 수 있기 때문이다. 정당들은 상대를 이기기 위해극한의 ‘상징적 대결’을 벌일 뿐만 아니라 유권자 전체와 공감하는 ‘상징적 소통’을 이루려 노력한다. 이런 점에서 정당도 민주주의에 필수적인 시민사회의 조절제도다. 정당은 공약을 내걸고 표를 얻고자 하기에 되도록 이를 지키려 노력한다. 선거는 또 올 것이며, 유권자의 시민적 권력은 여전할 것이고, 상대 당의 비판도 항상 매서울 것이기 때문이다. 선출 공직이란 걸 망각한 대통령이 국가 관료제를 동원해 절대권력을 휘두를 때 정당이 나서 이를 조절한다.제22대 국회의원 선거가 끝났다. 이제 정당 정치는 무엇을 해야 하나? 요번 선거에서 분명하게 드러난 두 가지 의제에 집중해야 한다. 먼저 검사. 정치 권력이 검사 인사를 독점한다. 검사 동일체 원칙에 따라 검찰총장 1인이 전국 단일 조직으로 구성된 검찰을 지배한다. 수사, 기... -
총선 이후, 연금개혁의 방향은 어디?
선거 이후 바로 국회 연금개혁특위가 주도하는 연금개혁 공론화 과정이 본격화될 예정이다. 이번에는 시민대표단이 숙의 주체이다, 시민대표단이 다루게 될 연금개혁 선택지는 국민연금에 대해 ‘더 내고 더 받을 것인가, 아니면 더 내고 그대로 받을 것인가’ 두 가지로 정리되었다. 과연 어떤 결론이 나올까? 초고령사회로 가는 길목에서 가장 큰 위험은 바로 노인빈곤이다. 국민연금과 기초연금은 노후빈곤의 물결에 대응하는 두 개의 댐이다. 시민의 손으로 이 댐의 높이와 폭에 관한 의사결정을 하게 되었다. 연금개혁을 말하기 위해서는 노후라는 시기의 본질을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은퇴 이후는 어느 나라건 생애주기상 가장 빈곤하고, 불평등도 가장 심한 시기이다. 교육 격차를 비롯한 생애 초기 불평등의 영향이 전 생애에 걸쳐 소득과 자산의 격차로 쌓여 드러나는 시기이기 때문이다.이러한 노년기의 빈곤과 불평등을 복지자본주의에서는 공적연금을 통해 대폭 완화시켰다. 그래서 OECD 노인빈... -
기억은 동사다
잊지 않겠다는 약속은 기억할 말들을 만날 때 단단해진다. 세월호 참사 10주기가 다가올수록 무엇을 기억해야 할지 막막했는데, 내가 몇년째 엇비슷한 말들에 멈춰 있음을 깨달았다. 세월호 참사 이후 유가족이 앞장서고 수많은 사람들이 곁에서 밀어가며 만들어온 시간을 떠올리면 지금은 마치 시간이 멈춘 느낌이다. 조금 낯설고 많이 속상하다.지나온 시간을 복기하는 일이 필요하다. 내가 기억하는 변곡점 중 하나는 문재인 전 대통령의 공식 사과다. 2017년 8월 대통령은 세월호 참사 유가족과 생존자들을 청와대로 초청해 사과했다. 많은 이들이 촛불 이후 달라진 시대를 보여주는 징표로 읽었다. 하지만 주의 깊게 살필 필요가 있었다. “지난 정부가 선체 침몰을 지켜보면서도 승객 한 명 구조하지 못했을 정도로 무능하고 무책임했습니다.” 세월호 참사는 ‘지난 정부’의 문제가 아니었다.세월호 참사는 ‘국가’에 대한 질문을 등장시킨 사건이었다. “팽목항에서 우리는 국가의 거짓과 무능함을 마주했... -
이동노동자의 은폐된 노동 재구성하기
밖에서 일을 하는 사람들의 시간은 어떻게 규정될까. 공장이나 사무실과 같은 특정 공간이 아니라 외부에서 일하는 사람들의 환경은 여러 변수도 많다. 여러 곳을 이동하면서 일하는 특징도 있다. 음식배달이나 마트배송 등 운송서비스부터 설치수리와 방문점검원 그리고 가사서비스까지 직업군도 다양하다. 주위를 둘러보면 민간만이 아니라 공공영역에서도 이동노동자들은 많다. 이들 다수는 특수고용이나 플랫폼노동자라는 것이 문제 해결의 걸림돌이다. 이 때문에 임금과 시간 같은 노동 기준을 찾는 것이 쉽지 않다.사실 새로운 산업과 일자리는 자본의 이윤추구 전략 속에서 끊임없이 창출된다. 이 때문에 기존과 달리 새로운 일자리나 직무가 만들어지기도 한다. 어떤 직업은 고객의 요구에 의해 부가적 과업이 발생하기도 한다. 고객의 욕구에 부응하기 위한 다양한 서비스는 기본이다. 그러나 노동과정 중 적지 않은 문제들이 발생한다. 고객으로부터의 폭언·폭행부터 반려견에게 물리는 사고까지 다양한 위험과 마주친다. ... -
고귀함을 알아볼 의무
어느덧 세월호 참사 10주기다. 당시의 “미안하다”고 말하는 ‘어른’들이 그리 곱게 보이지 않았는데, 어느새 나도 ‘어른’이 되어버렸다. 세월호 참사는 한국 사회의 모순들이 응축되어 벌어진 일이었고, “미안하다”는 고백은 분명 그런 사회를 만들어낸 것에 대한 간절한 반성을 담고 있었다. 그러나 십 년이 되어가는 지금, 우리 공동체는 과연 더 나은 곳에 도착했을까.단언컨대 한국 사회는 그 마음에 값하지 못했다. 사회가 나를 지켜주지 않는다는 것을 확인한 다음 찾아온 건 적나라한 각자도생과 혐오의 세상이다. 그러나 무에서 유가 나오지 않는다. 세월호 참사는 이 사회가 홀로 살아남아야 하는 곳이라는 걸 모두에게 재차 확인해 주었을 뿐이다.얼마 전까지만 해도 서구 사회가 개인주의가 강한 반면 한국 사회는 집단주의가 강하다는 믿음이 상식으로 통했다. 요즘의 한국 사회가 개인주의화되었다는 진단도 그런 상식에 기반한 것이다. 하지만 한국 사회는 오랫동안 어떤 의미에서 아주 ‘개인주... -
비닐하우스 라돈, 농민이 위험하다
국민 동요 ‘비행기’에 맞춰 “수헬리베붕탄질”로 시작해 “칼륨, 칼슘”으로 끝맺는 화학주기율표 노래는 지금도 부를 수 있다. 이 노래는 ‘칼슘’에서 끝나지만 지난 몇년간 가장 많이 들은 화학기호가 라돈(Rn)이다. 라돈침대로 워낙 많이 알려졌고, 흡연 다음으로 폐암 원인 물질이란 얘길 익히 들어서 두렵다. 환경부는 지나친 공포는 금물이며 환기를 잘하는 것만으로도 실내 라돈수치를 낮출 수 있다고 알려준다. 비록 문 열면 미세먼지가 그득하지만. 라돈은 암석이나 토양, 지하수에서 유입되는 자연 방사성 물질로 화강암 지대에 많이 발생하여 한반도도 취약한 편이다. 건축자재나 건물의 틈새로 유입되어 정부도 국제기준에 준해 ‘실내공기질관리법’으로 관리한다.2022년 환경부가 개인지하수관정(음용) 총 4415개를 조사한 결과 우라늄은 64개(1.4%), 라돈은 614개(13.9%)가 감시기준을 초과한 것으로 나타났다. 환경부는 2021년부터 우라늄과 라돈 기준치를 초과한 개인지하수관정에 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