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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세상 읽기]평균 압력에 지지 않는 삶
    평균 압력에 지지 않는 삶

    남들 다 한다는 것에 별 관심 두지 않고 산다. 그러다 어느덧 평균적 삶과는 무척 멀어졌음을 실감한다. 지난 문재인 정부 시기 내 또래 세대가 ‘공정’을 부르짖을 때 그랬다. 공정이란 말로 표출된 부당함과 억울함은 평균적 삶을 누리기 위해 무척 노력해야 하며, 노력 이외의 수단은 모두 반칙이라는 인식에 근거한다. 그 인식 이면에는 사회가 말하는 평균에 도달하지 못한 삶은 모두 실패한 것이며 결코 실패하고 싶지 않다는 모종의 깊은 공포감이 서려 있다. 그만큼 한국 사회의 ‘평균 압력’은 강고하다. 좋은 대학, 좋은 직장, 자가 아파트, 결혼과 육아를 달성하는 삶의 궤적이 실제 평균일 리가 없음에도, 마치 중력처럼 달성해야 할 규범적 압력으로 작용한다.정부가 앞서고 사회가 뒤따라 코스피 5000을 찬양하는 말잔치 앞에서도 그랬다. 오늘날 주식 투자는 닿지 않는 평균으로 비약할 기회이자 평균적 삶의 양식의 일부가 되었다. 그러나 나는 여유 자금도 없거니와, 주가를 들여다보며 전전긍...

    2026.02.09 20:10

  • [세상 읽기]‘사이코’가 되지 않는 법
    ‘사이코’가 되지 않는 법

    “내가 8개 이상의 전쟁을 중단시켰는데도 귀국이 나에게 노벨 평화상을 주지 않기로 했다는 점에서, 나는 평화만을 생각해야 한다는 의무를 더는 느끼지 않는다.” 그린란드에 대한 미국의 전면적인 통제권을 주장하며, 미국 대통령이 노르웨이 총리에게 보낸 서한의 일부다. 노벨상을 받지 못했다고 해서 평화를 도외시한다니, 우스꽝스럽지만 웃어넘길 수만은 없다. 무시당했다는 감정은 오늘날 폭력을 이해하는 열쇠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검색창에 “무시했다는 이유로”라는 문구만 입력해도 온갖 강력범죄 사건들을 마주하게 된다.도덕적 의무가 타인들의 인정에 기반하고 있다는 이 스스럼없는 발언을 접하며, 영화 <아메리칸 사이코>를 떠올렸다. 주인공 패트릭 베이트먼 역시 이런 세계에 살고 있는 인물이기 때문이다. 그는 뉴욕 금융가의 젊고 유능한 임원처럼 보이지만, 실은 동료들과의 기괴한 명함경쟁에서 줄곧 열패감에 시달리는 왜소한 자아를 지니고 있다. 거의 구별되지 않는 하얀색 명함들을 주고받...

    2026.02.05 20:11

  • [세상 읽기]AI 시대의 불안과 금융시장, 그리고 기본사회
    AI 시대의 불안과 금융시장, 그리고 기본사회

    오랜만에 대형서점을 거닐었다. 책 진열대와 사람들의 머리 위로 생각의 구름이 뭉게뭉게 피어오르는 상상을 해보았다. 한편에 놓인 책들은 당신은 인공지능(AI) 시대에 적응할 수 있는지, 당신의 일자리와 삶은 괜찮겠는지 끊임없이 물으며 불안을 건드리고, 건너편에선 시대에 뒤처지지 않으려면 금융시장으로 들어오라고, 너도 부자가 될 수 있다며 금융시장에서 희망을 찾으라 손짓한다.불안과 희망은 모두 지금보다는 미래에 관심을 둔다는 공통점이 있다. 사람들은 불안과 희망 사이를 탁구공처럼 오가며 책을 들춘다. 투자를 통해 부자가 되라는 손짓은 사실 역사가 꽤 오래된 것이지만 최근에는 한층 유혹적이 되었다. 주식시장 뉴스는 물론이거니와 트럼프 집안이 코인으로 불린 재산이 얼마라는 둥의 소식들도 한몫했다. AI를 필두로 하는 기술혁신의 성과를 누구든 대중 투자자가 되어 누리라는 것이니 이 얼마나 민주적인가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다.그런데 불안과 희망은 모두 불확실성에 뿌리를 두고 있으며...

    2026.02.02 19:49

  • [세상 읽기]밥은 먹고 하는 정치
    밥은 먹고 하는 정치

    곡기를 끊겠다는 결심은 비장하다. 밥은 먹고 다니는지가 중요한 나라에서, 그 나라 국민을 대표하는 정치인이 곡기를 끊겠다니, 그 결심은 비장하다. 장동혁 국민의힘 대표가 8일간의 단식을 끝내는 모습도, 그동안 단식을 이어갔던 여러 정치인도 저마다 비장했다. 대화, 협상, 표결 등 통상적인 정치적 수단을 다 써도 정치적 목표를 달성할 수 없다고 판단할 때 어떤 정치인들은 곡기를 끊겠다고 선언한다. 민주주의 국가라면 이런 극적인 장면은 등장하지 않는 것이 정상이다. 우리는 이러한 비장함을 얼마나 자주 목격해왔을까. 민주화 이후 정치인의 단식은 예외적인 선택이었을까.1988년 이후 2026년 현재까지 38년 동안 총 35건의 정치인 단식을 찾았다(간단한 신문 검색에 의존했으니 일부 사례가 누락되었을 가능성은 있다). 연평균으로 보면 일 년에 한 번꼴이지만, 연도별 분포는 고르지 않다. 민주화 직후인 1990년대에는 고작 세 건뿐이었으나, 2000년대에는 12건, 20...

    2026.01.29 19:57

  • [세상 읽기]자극의 시대에 놓치는 것들
    자극의 시대에 놓치는 것들

    요즘은 시사 교양도 재미가 필수다. 우리는 왜 재미있고 자극적인 내용을 좋아할까? 당연한 말이다. 세상살이가 피곤하니 복잡함보다 단순함에 끌리고, 어려운 것보다 재미있어 보이는 것에 관심을 더 준다. 그렇다면 자극적인 말과 글은 어떻게 사람들을 흔들까?스물일곱 살인 여성이 어느 술자리에서 운명 같은 남성을 만난다. 그런데 그는 사실 테러 혐의 용의자로 쫓기는 처지였다. 그를 취재하던 언론은 둘이 함께 있는 사진을 공개해 버린다. 대중은 그녀를 범죄자와 내통하는 인물로 낙인찍는다. 사람들은 진실이 무언지에 관심을 가지지 않고, 더 자극적이게도 그녀를 창녀로 몰아간다. 미디어는 왜곡된 정보를 진실로 포장해 재생산한다. 대중은 팩트와 그녀의 실추된 명예에는 더 이상 신경 쓰지 않는다. 일부 사람들은 전혀 친분이 없는 여성에게 폭력적인 내용의 우편물을 발송한다.쇼츠나 릴스에 나올 법한 이 이야기는 하인리히 뵐이 쓴 소설 <카타리나 블룸의 잃어버린 명예>의 줄거리이다...

    2026.01.26 19:51

  • [세상 읽기]농식품부 농촌여성정책과 승격에 부쳐
    농식품부 농촌여성정책과 승격에 부쳐

    얼마 전 타계한 여성 농촌사회학자인 김주숙 교수가 1980년에 쓴 ‘농촌여성문제 소고’에서 “아주머니 생각에 여자들이 농사일을 하는 양이 전에 비하여 많아졌습니까?” 물었다. 이에 58.6%의 여성농민들이 일이 훨씬 많아졌다고 답했다. 소득을 벌충하려 일을 더 많이 해도 가정과 마을일의 부담이 줄지 않아 여성농민의 삶은 더욱 고단해졌다는 것이다.43년이 지나 2023년 농림축산식품부가 작성한 ‘여성농업인 실태조사’ 결론도 다르지 않다. 여성농민은 농작업의 50% 이상을 담당하고 있고, 가장 큰 어려움으로 ‘농사일에 체력 부족’(36.4%), ‘가사와 농사일 병행 어려움’(32.2%), ‘농기계 사용 어려움’(12.1%) 등 노동 부담 문제를 꼽았다. 43년 전에 새댁 소리를 들었을 여성농민은 이제 초고령 농민이 되어 육체적 고통은 깊어졌건만 도농 간 소득격차는 당시보다 더 벌어졌다. 농업 기술도 1980년과 비교조차 되지 않을 정도로 발전했지만 수확 작업과 잡초 관리, 수확 ...

    2026.01.22 19:45

  • [세상 읽기]너는 강물처럼 말한단다
    너는 강물처럼 말한단다

    캐나다 시인 조던 스콧은 2025년 12월 부산국제아동도서전 북 토크 무대에 섰다. 자신이 글을 쓴 그림책들을 가지고 독자와 만나는 자리였다. <나는 강물처럼 말해요>는 말을 더듬어 놀림받고 얼어붙어 한마디도 할 수 없었던 작가 자신의 아픈 어린 시절 교실 풍경이 모티프이다.하굣길에 아버지는 아들을 강으로 데려간다. 그리고 뱃속에 폭풍이 일어난 것 같아 눈물을 흘리는 아들에게 말한다. “강물이 어떻게 흘러가는지 보이지? 너도 저 강물처럼 말한단다.” 아이는 “물거품이 일고, 소용돌이치고, 굽이치다가, 부딪치”는 강물을 보고, 그 뒤로 울고 싶을 때마다, 말하기 싫을 때마다 그 말을 떠올린다. “나는 강물처럼 말한다.” 그러면 울음을 삼킬 수 있게 되고, 말할 수 있게 된다. “아버지는 자연의 움직임 속에도 내가 더듬거리면서 말하는 것과 비슷한 일들이 일어나고 있다고 말씀해 주셨”다고 작가는 후기에 말한다. “덕분에 내 입이 바깥세상을 향해 움직이는 것을 즐겁게 지켜...

    2026.01.19 19:50

  • [세상 읽기]마왕의 귀환
    마왕의 귀환

    음악을 듣고 있다. 2025년 한국 대중음악상에서 올해의 신인상을 받은 2인조 포크 듀오 ‘산만한 시선’의 노래다. 노래를 알게 된 경로는 가수 신해철의 목소리로 진행되는 유튜브 채널 ‘고스트스테이션: 더 넥스트’(이하 고스트스테이션)를 통해서였다. 2024년 10월 첫 음반을 낸 이들의 음악을 2014년 10월 세상을 떠난 신해철의 목소리로 추천받았다. 인공지능을 통한 재현이었다.인공지능 기술을 활용해 고인이 된 유명인을 만나는 일은 이제 일반인에게도 친숙한 일이 되었지만 ‘고스트스테이션’은 조금 다르게 존재한다. 과거가 아닌 현재에 머물기를 선언한다. 2001년 시작되어 2012년까지 SBS와 MBC, 인터넷 방송을 넘나들며 이어졌던 심야 라디오 방송 ‘고스트스테이션’의 뒤잇기를 자처한다. 새로운 ‘고스트스테이션’의 제작진은 “이 시대에 가장 그리운 목소리가 누구냐고 묻는다면, 뭐라고 답하겠는가?” “만약 그였다면 이런 상황에 뭐라고 이야기했을까?”라는 질문에서 시작된 프...

    2026.01.15 20:12

  • [세상 읽기]평화의 시대로 이어지는 길
    평화의 시대로 이어지는 길

    1999년 12월31일, 시민들은 서울 광화문 일대에 몰려들어 새천년의 전야를 맞았다. 인류는 20세기의 상처를 뒤로하고 21세기를 향한 희망과 기대를 품었다. 한반도는 분단의 역사와 대면해 평화로 나아가던 참이었고, 유엔은 미래를 향한 낙관을 품고 새천년개발목표를 제시했다. 당시를 돌아보면 그야말로 격세지감을 느낀다.어느새 낙관은 힘을 잃었다. 새천년의 희망은 증발했고, 세계가 더 나빠지고 있다는 비관이 가득하다. 1월3일 미국의 베네수엘라 마두로 대통령 납치가 온 세계를 뒤흔들었다. 국제법을 무시한 채 군을 파견하고 베네수엘라를 운영하겠다 선언한 트럼프 대통령의 행보는 일정한 논리적 일관성을 갖춘 노선의 발로라 보기 어렵다. 1월7일 트럼프는 국제기구 66곳을 탈퇴하는 행정명령에 서명했다. 미국은 20세기 전쟁의 폐허 위에 자신이 세웠던 평화와 번영을 향한 국제질서를 스스로 무너뜨리는 중이다. 그 질서는 비록 문제가 많았을지라도 식민지 해방과 독립적 주권국가 건설을...

    2026.01.12 19:52

  • [세상 읽기]독재를 생각한다
    독재를 생각한다

    새해 벽두부터 독재자들의 소식을 접했다. 지구 반대편에서 국제법과 의회를 무시한 채, 독재자를 생포하겠다는 독단의 정치가 벌어졌다. 미국이 전격 단행한 베네수엘라 대통령 마두로 생포작전 이야기다. 주권국가의 불가침성을 부정하는 독단과, 국내 반대세력을 억압하는 독단 사이에서 세계가 어디로 가는지 도무지 가늠하기 어렵다. 그러던 찰나, 지하철에서 내 발을 밟고도 싱긋 웃던 한 아저씨의 얼굴이 떠올랐다. 스마트폰에 빠진 그의 모습은 자못 행복해 보였다. 타인에 무신경한 태연함 속에서 그는 자기만의 왕국을 세우고 있었다.세계는 점차 핵을 가진 패권국과 패권 도전국들이 주변국의 존재를 부정하는 방향으로 치닫고 있다. 우리의 일상은 스마트폰을 손에 쥔 채 타인을 유령처럼 대하는 사람들로 가득하다. 나는 이 두 장면 사이의 거대한 간극을 의식하면서도, 하나의 지점에서 맞닿아 있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다. 그것은 바로 세계에 대한 ‘무감각’이다. 해나 아렌트는 이 무감각이 자기 자신과의...

    2026.01.08 19: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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