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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촌의료 최후 보루, 공보의마저 빼앗나
농번기나 성묘 시기에 지역 언론을 통해 농촌 주민들에게 ‘교상’을 조심해 달라는 당부가 이어진다. 곤충이나 뱀에게 물리는 불상사가 교상인데, 농촌에서는 벌에게 쏘이거나 뱀에게 물리는 사고가 종종 일어난다. 2020년 홍성준 외의 연구자들이 쓴 <도시와 농촌에서 발생한 독사 교상 환자의 임상적 양상과 합병증 비교 연구>를 보면, 뱀물림 사고로 읍급실로 실려 오는 환자 57.1%가 농촌지역 환자였다. 다만 고령자가 많고 병원과 거리가 멀어 응급처치가 도시보다 늦어지는 바람에 교상 환자 예후가 훨씬 더 좋지 않다는 것이 논문의 결론이다. 의료종사자가 아니더라도 충분히 예측할 수 있는 결론이다. 그래서 농촌 주민들이 가장 빨리 도달할 수 있는 시군 보건소에라도 뱀독소 치료제를 갖춰야 한다는 의견이 오래전부터 나왔다. 뱀에게 물릴 일은 농촌 주민이 더 많건만 치료는 농촌에서 더 어렵다.도시생활자에게 보건소란 요식업계 종사자들이 보건증을 받거나 아이들이 어릴 때 예방접종을 받... -
평범한 이웃의 몫
대학에서 강의하게 되면서 서 있는 자리의 변화를 실감한다. 박봉이라고 하기에도 민망한 강사 월급 때문은 아니다. 한 학기 동안 강의를 꾸려나가고 학생들의 지적 성장을 도와야 할 강사로서의 책임 때문이다. 어른이 되는 시기가 늦어지는 시대에 나는 여전히 청년세대에 속하지만, 어느덧 사회에 그저 도전하고 요구하는 것보다 사회에 대한 ‘책임’을 고려하게 된다.그래서다. ‘텔레그램 딥페이크 성범죄’를 접했을 때 가장 먼저 떠올린 것은 내가 가르치는 학생들에 대한 책임이었다. 피해자와 가해자 다수가 10~20대라고 한다. 그들을 피해자와 가해자로 만든 것이 사회라면, 나는 이런 사회를 만든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피해자와 가해자가 같은 학교에 다니는 경우도 적지 않을 것이다. 만약 피해자와 가해자가 같이 내 강의를 듣는 학생이라면, 나는 어떻게 해야 할까? 피해자와 가해자는 추상적 개념이 아니라 구체적 얼굴을 하고 있다. 그것이 이 사태의 끔찍한 측면이기도 하다. 같은 교실에서 ... -
예언적 신탁
윤석열 대통령의 2023년 광복절 기념사. “공산전체주의 세력은 늘 민주주의 운동가, 인권 운동가, 진보주의 행동가로 위장하고 허위 선동과 야비하고 패륜적인 공작을 일삼아 왔습니다.” 올해 광복절 기념사에서는 가짜 뉴스를 상품으로 포장하여 유통하는 사이비 지식인들이 “국민을 현혹하여 자유 사회의 가치와 질서를 부수”며 “선동과 날조로 국민을 편 갈라, 그 틈에서 이익을 누리는 데만 집착”한다고 비난한다. “이들이 바로, 우리의 앞길을 가로막는 반자유세력, 반통일세력입니다.” ‘을지 자유의 방패’ 첫날인 올해 8월19일 국무회의 발언. “우리 사회 내부에는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위협하는 반국가세력들이 곳곳에서 암약하고 있다.”대한민국의 대통령이 ‘시민 언어’를 안 쓰고 ‘군사 언어’를 쓴다. 시민 언어는 수천 년의 문명화 과정을 겪으며 인류가 함께 만든 민주주의 언어다. 이 언어는 초월적인 이상으로 시민사회의 제도를 통해 실현된다. 선거를 통해 대통령을 선출하는 제도는 초월적인 ... -
윤 정부 연금개혁안 대 시민 공론화 연금개혁안
곧 윤석열 정부 연금개혁안이 공식 발표될 것이라고 한다. 지난 4월에 시민대표단이 참여한 연금개혁 공론화에서는 ‘더 내고 더 받는 연금개혁’이 선택된 바 있다. 국회는 이 결과에 기초하여 연금개혁 협상을 어렵게 진행하고 있었지만 대통령이 여야 간 협상을 직접 중단시켰다. 그 이후 몇 개월 만에 내놓는 정부 개혁안이니만큼, 발표 내용에 대한 궁금증은 크다. 얼마나 멋진 대안을 내놓으려고 시민공론화 결과까지 무시했을까?연금개혁안을 통해 윤석열 정부는 국민들의 노후소득보장 현실에 대한 인식과 국정철학을 드러낼 것인 만큼, 그 구체적 내용과 표방하는 가치에 주목하게 된다. 더욱이 시민 공론화 연금개혁안과의 비교는 불가피하다.지금까지 기사로 나온 정부 연금개혁안 윤곽을 보면 일단 출산 및 군복무에 대해 일정 기간 국민연금 보험료를 낸 것으로 인정해주는 크레딧 확대가 포함될 듯하다. 이는 그동안 수많은 위원회와, 시민 공론화 연금개혁안에서 한결같이 제안된 것이었다. 따라서 이것으... -
에어컨으로 시험에 든 기분이라면
에어컨으로 시험에 드는 기분, 나만 느끼는 건 아닐 듯하다. 틀어놓으면 죄짓는 기분, 틀지 않으면 자학하는 기분. 기후위기로 여름은 더 무더워지고 냉방은 더욱 필수적인 것이 되는데 그렇게 전기를 쓸수록 기후위기는 더 심각해진다니 고약한 시험이다. 그런데 이건 시험의 일부일 뿐이다. 지난주, 에어컨 설치 아르바이트를 하던 20대 노동자가 온열질환으로 사망했다는 소식이 있었다. 그가 작업한 공간은 중학교 급식실이었다. 누군가에게 밥을 먹이려 일하던 누군가는 더위를 견디며 밥을 짓고, 누군가를 시원하게 해주려고 일하던 누군가는 더위에 쓰러졌다. 그날, 13일은 전력수요가 역대 최고 기록을 경신한 날이었다. 전력수요가 늘어도 필요한 곳으로 흐르지 않고 에너지 소비를 줄여도 다 같이 줄지 않는다. 재생에너지를 늘리자는 요구는 그 자체로 순백하게 들리지만 고개가 갸웃거려질 때도 있다. 올해 1월 김동연 경기도지사가 윤석열 대통령의 발언을 두고 ‘무식한 얘기’라며 비판한 적이 있다. “반... -
AI 구독경제 전환과 편향 속에 숨겨진 노동
지난 몇년 새 인공지능의 속도는 매우 빠르게 변화되고 있다. 오픈AI의 ‘챗GPT’ 고급 버전부터 마이크로소프트의 AI 서비스와 구글과 애플의 AI 음성 비서까지. 다양한 인공지능 서비스들이 경쟁 중이다. 투자 기술 비용 해결을 위해서라도 ‘구독경제의 길’은 불가피한 선택일 것이다. 이미 지불 능력이 가능한 사람에게 더 많은 서비스를 제공하겠다고 발표했다. 혹자들은 거품 경제라고도 하지만 그렇게 치부하긴 힘들다. 컴퓨터와 AI 하드웨어부터 클라우드 플랫폼, 파운데이션 모델, 서비스 제품들까지 글로벌 기업의 각축장이 된 지 오래다. 네이버클라우드와 카카오엔터프라이즈는 사실 다윗과 골리앗 싸움에 비유될 정도다. AI 독점 자본주의 시대가 멀지 않은 이유다.무분별한 AI 자본의 축적과 자기 증식 과정은 끝이 보이지 않는다. 인권·비윤리적 문제부터 우리 삶에 경계 없이 스며드는 문제가 적지 않다. 2013년 개봉 영화 <허>(Her)에서처럼 AI 비서의 음성 모드와 대화의... -
2300억 국제배상금, 박근혜·이재용 책임이다
대한민국은 지난 1일 영국 법원에서 한 패소 판결문을 받아야만 했다. 작년 7월18일, 한동훈 당시 법무부 장관이 기자회견까지 열어 충분히 승산이 있다고 영국에 제기한 사건이다. 한 전 장관은 대한민국이 미국계 펀드 엘리엇에 약 1300억원의 배상금을 지급해야 한다는 국제중재판정에 불복하겠다고 발표했다. 그 방법으로 영국 법원에 소송을 냈던 것이다. 영국 법원 판결은 1년 만에 나온 거절 답변이었다.한 전 장관은, 작년에 불복을 발표하는 기자회견에서, 자신이 이 사건을 수사해서 잘못을 바로잡는 데 실질적으로 관여한 사람이라고 말했다. 그는 한국에 패소 판정을 내렸던 국제중재판정부에 관할권이 없다고 했다. 그러면서 인기 드라마 <더 글로리>의 대사를 인용하기까지 했다. ‘살면서 아끼면 안 되는 비용이 몇 가지 있다’고. 그런데도 왜 영국 법원은 한 전 장관의 신청을 기각했을까.35쪽에 이르는 영국 법원 판결의 핵심은 간결하다. 미국계 펀드인 엘리엇은 한·미자유... -
주 5일 경로당 급식, 조리노동의 문제다
가스불 켜기 겁나는 계절, 독거노인인 아버지의 식사도 걱정이다. 그간 경로당에서 점심을 잡쉈지만 얼마 전 급식도우미 여사님이 힘들다며 그만두었다. 노인 25명의 점심을 책임졌던 여사님이 가져간 임금은 고작 69만원. 59만원은 지자체가 지원하고 나머지 10만원은 경로당 노인들이 보탠 돈이다. 장보기와 조리, 설거지까지 하는 노동의 가치가 저랬다. 여기에 일주일 치 부식비가 15만원 내외. 고물가 시대에 15만원어치 장을 봐서 지지고 볶는 일에는 요령이 필요하다. 생선을 선택하면 과일을 빼야 했다. 텃밭 채소나 각자 집의 밑반찬을 추렴하거나 기부도 받으면서 그럭저럭 식사를 꾸려왔어도 끝내 노동의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였다. 그렇게 아버지의 점심은 멈추고 말았다.전국의 경로당은 6만9000곳, 그중 5만8000곳에서는 주 3회 정도의 급식이 제공된다. 조리시설과 인력이 없어 점심은 각자 먹고 모이는 경로당도 많다. 이에 지난 5월 정부는 경로당 주 5일 급식 실시계획을 발표했다. ... -
태도로서의 마음
일전에 한 선생님이 물었다. “글로 읽은 저와 실제 보는 제가 많이 달라 실망하지 않았나요?” 그 순간에 명쾌한 답변을 하지 못했던 것이 지금도 아쉽다. 내가 그의 글을 좋아하고 그의 팬이 된 것은 단순히 그가 훌륭한 사람일 거라 믿기 때문이 아니었다. 애초에 그가 일상에서 어떤 모습을 하는지 알 만큼 가까운 사이도 아니다.그 질문에 대한 나름의 답변을 얻게 된 것은 한 뮤지션을 ‘덕질’하면서였다. 지금은 내 ‘최애’가 된 그를 처음 목격한 공연에서 내가 인상 깊었던 것은 그의 ‘태도’였다. 당시 그는 사랑이라는 주제로 노래를 만들면서 사랑을 마치 지켜나가야 할 태도라고 정의했다. 갚기 어려운 깊은 애정을 알려준 팬들을 향해, 자신의 사랑의 태도를 계속 점검하면서 단어 하나하나 신중히 골라 말하고 노래했다.그는 나에게 ‘마음’의 의미를 알려주었다. 한국어로 마음은 두 가지 용법으로 쓰인다. 짝사랑에 아파하는 사람은 자신의 마음이 마음대로 되지 않는다고 슬퍼한다. 무언가... -
지네의 딜레마
윤석열 대통령이 초대 저출생대응수석비서관으로 계량경제학자를 임명했다. 경제기획원을 모델로 인구전략기획부를 만들겠다고 선언하더니, 인구를 주로 경제 문제로 접근하고 있음을 다시 한번 명확히 드러냈다. 인구 관련해서 수행한 연구를 살펴보니 계량경제학자답게 실증분석에 주력하고 있다. 예컨대 일반원리에 해당하는 함수를 채택하고 특정 변수를 통제할 경우 그 함수의 누진도가 어떻게 변화하는지 패널 자료를 통해 추정한다. 정부 출연 연구소도 대부분 계량 연구에 치중한다. 이를테면, 인구수와 인구구조에 영향을 미치는 여러 변수를 인구균형방정식으로 모형화하고 이를 통해 인구수와 인구구조의 변화를 예측하고 설명한다.왜 이렇게 인구를 변수의 방정식으로 접근하는 계량 연구가 저출생대응 정책을 주도할까? 변수 중심의 사회학 연구를 미국사회학의 주류로 제도화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라자스펠트. 지네의 우화를 통해 변수 중심의 사회학을 정당화한다. 지네는 두꺼비가 장난으로 다음과 같이 묻기 전까지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