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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세상 읽기]각자의 민주주의 모멘트
    각자의 민주주의 모멘트

    지독히 더웠던 여름을 지나 날씨가 제법 차가워졌다. 찬 공기를 들이마시고 있자니 지난겨울 날들이 새록새록 되살아난다. 내란 청산은 아직 진행형인데, 아득하니 멀게 느껴지는 12·3 내란 이후 1년 시점이 벌써 다가온다. 다 지난 후에 돌이켜 보니, 고백건대 지난겨울은 아름다워서 즐거웠다. 지독하게 괴롭고 우울한 가운데서도 평범한 사람들이 얼마나 큰일을 해낼 수 있는지, 어디까지 훌륭한 시민이 될 수 있는지 지켜보는 감격과 흥분이 있었다. 형형색색의 빛깔이 한겨울 밤거리에 흘러내렸고, 무수한 사유와 문장이 자유발언과 SNS로 쏟아졌다. 나 역시 그들 중 하나가 되어 손에 꼽을 만큼 생의 가장 반짝이는 비일상의 시간을 보냈다.안 그래도 사람들은 겨울의 날들을 이야기하기 시작한 참이다. 지난 11월3일, 포크 뮤지션 예람이 발매한 싱글에는 그의 곡 ‘거리를 행진하는 소리’가 실렸다. 내란 정국의 와중에 작곡되어 광장 무대에서 불린 노래다. “연약한 불빛 하나 들고” “...

    2025.11.17 21:31

  • [세상 읽기]21세기 복지자본주의, 금융과 복지의 결합
    21세기 복지자본주의, 금융과 복지의 결합

    주식, 코인과 같은 투자에 온통 사람들의 마음이 쏠려 있다. 국정과제는 물론이고 간간이 나오는 대통령의 말을 들으면 정부 정책에서도 금융시장과 투자가 갖는 위상이 다른 어느 것보다 높다. 많은 사람들이 금융시장에 미래가 있다고 여기고 ‘다 이루어질지니’ 하는 기대로 들떠 있는 것이 이상하지 않다.끊임없이 팽창해야 굴러갈 수 있는 자본주의 속성상, 의도적으로 거품이 만들어지는 것은 아닌지, 이것이 새로운 위기의 원인이 되는 것은 아닌지 의구심이 생긴다. 나아가 금융 부문의 주도권이 뚜렷해질수록 자산 소유자와 그렇지 않은 자 사이의 격차는 더욱 커져, 새로운 차원의 불평등 세상이 펼쳐질 것이란 우려가 생기는 것은 어쩔 수 없다. 물론 노동소득을 아끼거나 빚을 내 투자하는 개미들을 자산 소유자라 말하기는 어렵다. 무산자에 가까운 이들은 그 격차를 예감하고 자산 소유자에 편입되기 위해 부지런히 애쓰는 것일 터이다. 세대를 불문한 투자 열풍에 한국 사회에서는 10~20대부터 노동자가 ...

    2025.11.10 21:11

  • [세상 읽기]‘노동’은 있고 ‘권리’는 없다
    ‘노동’은 있고 ‘권리’는 없다

    지난 한 주 우리는 두 가지 풍경을 마주했다. ‘런던베이글뮤지엄’의 20대 직원이 과로로 목숨을 잃은 사건과 쿠팡 등 e커머스나 택배 물류회사의 ‘심야시간 새벽배송 제한’을 둘러싼 사회적 논쟁이다. 전자는 한동안 잊고 있었던 서비스사회화 시대의 유연한 고용과 노동환경 모습이다. 후자는 플랫폼노동이라는 제도 밖 사각지대의 경계가 모호한 노동문제다. 이 둘은 서로 다른 사건처럼 보인다. 하지만 본질적으로는 서비스경제에서 플랫폼경제로 산업구조가 변화한 데 따른 노동시장 현실을 보여준다. 자본주의 확장 과정에서 은폐된 노동의 단면일 뿐이다.이 두 사건의 공통점은 명확하다. 노동은 존재하지만 그 노동을 하는 이들의 권리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우리는 문제의 본질을 포착해야 한다. 지난 한 주 ‘런베뮤’의 비즈니스 모델을 파헤친 기사보다는 휘발성 기사들이 적지 않았다. 비표준적 계약과 파편화된 고용 형태보다는 자극적인 소재들을 주로 다루었다. 왜 홀 서비스와 베이커 업무 직원의 9...

    2025.11.06 22:15

  • [세상 읽기]어떤 어른이 되기를 바라는가
    어떤 어른이 되기를 바라는가

    수능 시험일이 다가온다. 수능을 치른다고 곧장 어른이 되는 건 아니지만, 고등학교를 졸업해서 어른으로 가는 문턱을 넘는 일인 건 분명하다. 부모의 보호에서 자유로워지는 나이라는 뜻이다. 한편으로 부모에게서 완전히 자유로워지는 20대들이 얼마나 많이 있는지 모르겠다. 대학생인 자녀의 성적 정정을 요청하는 부모가 비일비재하다는 이야기를 듣고 적잖이 충격을 받은 적이 있다.국어사전에서 ‘어른’이라는 말을 찾으면 ‘다 자라서 자기 일에 책임을 질 수 있는 사람’이 첫 번째로 나온다. 의미를 뜯어보면 나이가 들어 다 자랐다고 어른이 되는 건 아니다. 우리나라 학교 교육의 목적을 요약하면 민주시민 양성이라 할 수 있다. 그런데 어른이 되는 법은 어디에서 어떻게 배워야 할까.‘어른’의 다른 풀이로 ‘결혼을 한 사람’도 있다. 관혼상제에서 비롯된 것이겠지만, 언어가 시대를 반영한다면 이 풀이는 이제 사전에서 삭제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결혼 여부가 어른을 가르는 시대는 진작 끝났다. ...

    2025.11.03 20:14

  • [세상 읽기]농어촌 기본소득, 이벤트로 끝날 것인가
    농어촌 기본소득, 이벤트로 끝날 것인가

    고등학생 때 모 유업 회사의 신제품 효능 테스트 차원으로 요구르트를 세 병씩 일주일간 받아먹은 적이 있다. 시간 맞춰 단독 섭취하라는 조건이 붙었지만 지켜지진 않았다. 식구들도 주고 다른 반 친구들과 나눠 먹으며 요구르트 파티를 벌였다. 그래도 공짜로 얻어먹고 실험 지침을 어긴 것이 마음에 걸려 대부분 ‘변비 개선에 탁월함’이라고 적었다. 회사 측은 이 제품이 여고생들 변비 탈출에 매우 뛰어나다는 홍보자료에 이를 써먹었을 것이다.농어촌 인구감소와 소멸위기에 대응하기 위한 농어촌 기본소득 시범사업 선정 과정을 보며 이 추억이 떠올랐다. 농식품부가 69개 인구감소지역을 대상으로 한 공모에서 총 49개 지역이 신청했고, 서류심사를 통과한 12개 중 7개 군지역(연천·정선·청양·순창·신안·영양·남해)이 선정됐다. 시범 지역에 2027년까지 매달 15만원의 기본소득을 지역화폐로 지급해 평가한 뒤 향후 전면 확대할 계획이다.국비는 40%, 나머지는 도비와 군비로 채우는 조건이지만...

    2025.10.30 20:05

  • [세상 읽기] 최민희 논란과 청탁금지법의 경계선
    최민희 논란과 청탁금지법의 경계선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장 최민희 의원이 국정감사 기간 중 국회 예식장에서 열린 딸의 결혼식으로 논란에 휩싸였다. 최 의원은 “결혼식은 딸이 정한 일정이며, 본인은 관여하지 않았다”고 해명했다. 청첩장도 돌리지 않았다고 했지만, 피감기관에서 보낸 화환이 즐비했고 일부 기관에서는 축의금까지 냈다는 사실이 언론을 통해 알려졌다. 특히 직무 관련자로부터 적게는 20만원, 많게는 100만원의 축의금이 전달된 것으로 확인돼 청탁금지법 위반 논란이 불가피하다. 최 의원실은 “상임위 관련 기관·기업 등으로부터 들어온 축의금과 평소 친분에 비춰 관례를 넘은 금액의 축의금은 모두 반환하기로 했다”며 “명단 확인 뒤 조치하고 있다”고 밝혔다.2016년 시행된 청탁금지법은 공직자에게 명확한 기준을 제시한다. 직무 관련 여부를 불문하고 1회 100만원, 동일인으로부터 연간 300만원을 초과해 금품을 받으면 형사처벌을 받으며, 직무 관련이 있다면 100만원 이하라도 과태료 및 징계 대상이다. 다...

    2025.10.27 19:55

  • [세상 읽기] 굴대 시대의 사회학
    굴대 시대의 사회학

    지난주 한국문화사회학회 창립 20주년 기념 학술대회가 있었다. 기획 세션 ‘굴대 시대의 사회학’에서 사회학자 박영신이 특별강연을 했다. 굴대 시대의 핵심은 초월이다. “무엇보다 초월은 자기 초월을 전제한다. 자기 본위의 자기중심성에 갇힌 의식의 굴레에서 벗어나지 않는다면 어떤 초월도 불가능하다. 그러므로 자기에게 물음을 던지며 그 틀에서 벗어나야 한다.” 왜 이렇게 초월이 중요할까? “어느 국가가 특정 국가의 예속국이 되지 않고, 서로 기대고 나누며 함께 도움을 주고받는 범세계의 이웃다움을 실행하고 이웃 됨을 증명하는 시대의 요청 앞에 우리 모두가 서 있다. 여러 인종, 여러 종교가 뒤섞여 살게 된 오늘날에 와서, 이처럼 자기 집착의 굴레에서 벗어나는 자기 초월은 피할 수 없는 삶의 가치이고 놓쳐서는 안 될 삶의 길잡이이다.”굴대 시대를 처음 말한 이는 야스퍼스로 알려져 있다. 제2차 세계대전의 폐허에서 문명의 비극을 깊은 수준에서 새김질해 인류의 역사를 넓고 길게 살펴보고자...

    2025.10.23 20:12

  • [세상 읽기]스캠 단지 인신매매, 정치와 미디어의 ‘아무 말’
    스캠 단지 인신매매, 정치와 미디어의 ‘아무 말’

    사람 본모습은 그가 바닥을 칠 때 드러난다는 말처럼, 한 사회의 성숙함은 충격적 사건 앞에서 공동체가 보이는 모습에 달려 있다. 캄보디아 시아누크빌 스캠 단지에서 일어난 감금·폭행·강제노동 등 인신매매 범죄는 큰 충격을 주고 있다. 정치권은 이때가 기회라며 짐짓 분노한 표정으로 강경 발언을 쏟아낸다. 아예 외교를 포기한 듯하다. 미디어도 이를 제목으로 삼아 자극적 보도를 일삼는다.“ODA(공적개발원조) 환수”를 외치는 정치인은 캄보디아에도 인신매매 피해자가 있다는 걸 알까? 캄보디아는 한국전쟁 당시 물자 지원국이다. “중국인 무비자 입국 재고”를 말하지만, 정작 가장 많은 스캠 피해를 겪고 범죄 근절에 갖은 수단을 다하는 것도 중국인이다. 한국은 “군대 투입” “전쟁 선포”를 선동하며 “범죄도시”라 혐오하지만, 한류 덕에 캄보디아 사람도 그 글자들을 읽을 줄 안다. 최근 태국과 캄보디아의 국경 분쟁으로 캄보디아 사람들은 킬링필드의 기억을 떠올리며 트라우마를 호소하고 있다....

    2025.10.20 22:42

  • [세상 읽기]특고노동자 국민연금 보험료는 누가 내야 할까
    특고노동자 국민연금 보험료는 누가 내야 할까

    대부분 노동력을 팔아 생계를 잇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노동권은 일 자체뿐만 아니라 건강, 휴식, 돌봄, 일하지 못하는 시기의 소득보장 등 여러 가지 사회권과 깊숙이 연관돼 있다. 그런데 노동자와 노동권에 대해 말하면서도 멈칫하는 순간이 있다. 사실상 노동자임에도 노동자로 인정받지 못하는 사람들이 흔하기 때문이다. 일상에서 흔히 만나는 가전제품 수리기사, 택배노동자, 헤어디자이너, 학습지 교사, 보험설계사, 텔레마케터 등이다.많은 직종에서 사실상 노동자들이 고용계약을 맺지 못하고, 일감대로 수수료를 받는다는 이유로 근로기준법에서도 국민연금에서도 노동자로 대우받지 못한다. 특수형태근로종사자라는 알쏭달쏭한 이름으로 불리며 자영업자로 취급된다. 하지만 상당수는 회사에 소속돼 있고, 교육도 받아야 하며, 할당받은 일을 해야 한다. 때로는 출퇴근 시간도 정해져 있다. 다른 누구를 고용해서도 안 된다.노동자를 노동자로 취급하지 않는 변칙이 비용 절감 등을 위해 널리 퍼져 있는 것인데...

    2025.10.13 21:09

  • [세상 읽기]세 조각의 노동시간, 이제 다시 나눌 때
    세 조각의 노동시간, 이제 다시 나눌 때

    주 4.5일제 시범사업이 국정과제로 발표된 이후 연일 보수 언론의 비판 기사들이 쏟아지고 있다. 하나하나 살펴보면 정책에 대한 이해 부족이나 과장이 적지 않다. 주요 정책은 포괄임금 금지, 연차휴가 확대 및 활성화, 연결되지 않을 권리, 주 4.5일제 시범사업이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 노동시간대 진입을 위한 고민의 시작이다. 노동시간 단축은 일과 삶의 균형을 위한 정책이다. 일상을 점령한 연장근로와 야근 등으로 빼앗긴 삶을 되찾는 길이다. 노동시간 단축은 삶의 바쁨, 쫓김, 지침이라는 굴레를 벗어나기 위한 시간의 정치다.주 4.5일제 시범사업은 300인 미만 중소·영세기업을 대상으로 4년 동안 추진된다. 전면·부분 도입 그리고 요일·시간 선택 등 기업 특성이 고려된다. 물론 주 5일제 도입 때와 유사하게 참여 기업에는 인건비와 세액 공제 등 혜택을 준다. 특히 산업재해 감축을 위해 생명안전 분야와 교대제 사업장에는 우선 지원 방식도 검토하고 있다. 이를 위...

    2025.10.09 20: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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