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재생과 예술노동의 창조적인 결합

김준기 | 제주도립미술관장·미술평론가

서울 낙원상가와 익선동 일대에서 문자와 빛의 축제가 열린다. 사단법인 세계문자연구소가 여는 문화예술축제 ‘세계문자심포지아 2016 : 행랑’(10·3~9)과 서울시 역사도심재생과의 프로젝트 ‘익선.낙원. 세운’(10·3~31)이 그것이다. ‘익선(益善)하면 낙원(樂園)이니, 행랑(行廊)에 세운(世運)한다’는 캐치프레이즈가 흥미롭다. ‘선을 쌓으면 낙원이 열리니, 세상의 행랑을 따라 좋은 기운이 가득 찬다’는 뜻이다. 낙원악기상가와 익선동은 서울 원도심의 문화공간 인사동과 맞붙어있어 최근 들어 시민들의 발길을 잡는 곳이다. 문자 매개의 문화예술축제와 역사성을 살린 도시재생 프로젝트가 이곳에서 열려 생활공간 속의 축제로 주목받고 있다.

[문화와 삶]도시재생과 예술노동의 창조적인 결합

세계문자심포지아는 ‘행랑’을 주제로 골목골목마다 문자의 가치를 짓고 나누는 일을 한다. 한옥의 문 옆에서 안팎을 이어주는 열린 공간 ‘행랑’은 소통을 매개하는 확장지향의 언어다. 세계 최대 규모의 악기전문상가인 낙원상가는 음악인들은 물론 대중들에게도 잘 알려진 공간이다. 익선동은 ‘ㄱ, ㄴ, ㅁ’자 모양의 한옥들과 골목 사이로 카페 등이 들어서면서 시민들의 발길이 잦은 곳이다. ‘익선.낙원. 세운’은 세운상가의 조명으로 낙원상가 하부를 밝힌다. 인사동과 익선동 사이의 도로 위에 세워진 낙원상가 건물 하부에서 열리는 빛의 축제다. 상가와 골목의 예술은 문자를 매개로 시민들의 감성적 소통을 촉매한다.

두 행사가 지향하는 바는 도시공간과 예술의 창조적인 결합이다. 그것은 정부가 주도하고 있는 도시재생사업과 직결하는 일이다. 주지하다시피 낙후된 공간을 활성화하기 위하여 개발이나 재개발이 아닌 재생 개념이 필요하다는 공감대 아래 수조원의 예산으로 전국 도처에서 도시재생사업이 한창이다. 이러한 재생사업에 예술이 결합하는 경우가 잦아지고 있다. 이른바 ‘문화적 도시재생’이 일종의 트렌드로 자리 잡는 것만 봐도 예술과 재생사업의 결합의 당위성을 가늠해 볼 수 있다.

도시재생에 문화적 요소를 가미하자는 논의는 결국 도시재생에 예술가들의 노동을 장착하는 일로 이어진다. 이미 상당수의 예술가들이 전국의 도시재생사업에 참여하고 있고, 비평가들도 공공미술과 공동체예술, 사회(적)예술 등의 관점으로 이 대목에 주목하고 있다.

예술과 재생사업의 결합은 예술의 사회화를 앞당긴다는 관점에서도 매우 중요한 일이다. 예술이 정치와 경제를 비롯한 사회 제반 영역과 밀착해 있던 것에서 벗어나 독자적인 체계를 구축한 이후 예술의 자율성을 확립한 것까지는 좋았으나, 사회체제로부터의 이탈이 가져온 고립과 폐쇄의 상황은 예술노동의 소외를 불러왔다.

연간 소득 1000만원 미만의 대다수 예술가들에게 예술노동의 가치는 경제적 가치로 환류할 수 없는 것으로 굳어져 버렸다. 그나마 작동하는 미술시장마저도 예술 본연의 정신적 가치보다는 미술투자라는 이름의 교환가치에 경도돼있으니 예술노동의 소외는 이미 구조적 모순으로 자리 잡았다. 이를 해소하는 차원에서도 예술노동은 경직된 미술시장에서 벗어날 필요가 있다.

아무리 좋은 생각이라도 그것이 선순환의 얼개 속에서 잘 굴러가지 않으면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없다. 문화적 도시재생에서 정작 중요한 문화의 내용은 부재한 채 공허만 문화 타령만 오가는 것 아니냐는 비판도 있다. 토목과 건축의 몫으로 95% 이상의 예산을 쓰고, 나머지 일부 예산으로 문화를 담아 달라는 요구로 예술가들을 동원하는 식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모순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민관협치 차원의 구조변동이 필수적이다. 특히 마을 만들기 활동가들과 예술가들이 도시재생의 구상단계부터 진행 과정에 능동적으로 참가하여 도시재생의 주체를 발견하고, 이들과 협력하여 도시재생의 내용과 방법을 만들고, 공동체적 가치에 따라 문화적 도시재생을 추진할 수 있도록 열린 구조를 마련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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