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민령의 뇌과학 이야기] 사회경제적인 지위와 뇌 발달

35억~43억년 전, 지구에 최초로 생명이 출현한 후 지구 환경은 끊임없이 변했다. 이에 따라 살아남는 데 필요한 능력 또한 변했다. 지구를 다녀간 모든 생명체가 생존과 번식이라는 성공을 위해 절실히 노력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들이 스스로 ‘노력’이라고 판단한 행동을 했다고 해서 다 성공한 것은 아니었다. 변화된 환경에 적합한 노력을 기울이고 적합한 능력을 획득한 생물종만이 살아남았다.

송민령 공학박사

생물 개체가 보유한 생존 능력의 적합성은 유전과 환경의 영향을 받았다. 같은 유전자도 환경에 따라서 장점이 되거나 단점이 되었다. 한편 유전자는 개체가 생존을 위해 취할 수 있는 반응의 범위를 제한하기는 했으나 매 순간 어떤 반응을 할지 결정하지는 않았다. 유전자의 발현은 개체가 경험하는 환경에 따라 변했고, 신경계를 가진 동물들은 보다 적극적이고 기민하게 환경에 적응할 수 있었다. 신경계는 개체가 경험하는 환경에 의해 다듬어지며 개체의 생존 능력을 키워갈 수 (혹은 뜻하지 않게 감소시킬 수) 있었다.

신경계는 평생 동안 변화를 계속하지만, 어린 시절의 경험이 신경계 발달에 특히 중요한 역할을 한다. 인간의 경우, 어린 시절의 경험은 사회경제적 지위에 영향을 받는다. 사회경제적 지위는 대개 부모의 소득 및 교육 수준과 같은 개별 가정의 특성이나, 범죄율과 소득수준 등 거주지역의 특성을 고려해서 측정된다. 사회경제적 지위와 뇌 발달에 대한 연구는 몇 년 전부터 더디지만 꾸준히 진행되고 있다. 이 분야의 연구 결과들은 투자 대비 효과적인 사회보장제도를 설계하고, 공정한 사회를 만들어가는 데 활용될 수 있다. 이번 칼럼에서는 지난달 ‘네이처 리뷰 뉴로사이언스’에 게재된 우르줄라 툴리(Ursula Tooley) 등의 논문을 통해 사회경제적 지위와 뇌 발달에 대해 살펴보자.

뇌 피질의 두께는 유아기 동안 커지고, 몇 년간 그 상태가 유지되다 서서히 감소한다. 앞서 언급한 연구에 따르면 사회경제적 지위가 높은 집안의 아동들은 위와 같은 변화가 서서히 오래 지속되는 반면, 사회경제적 지위가 낮은 집안의 아동들은 이런 변화가 더 일찍, 더 짧은 시간 동안 일어난다고 한다. 사회경제적 지위가 낮은 집안 아동들은 경험을 통해 뇌를 다듬어 갈 시간적 여유가 짧은 셈이다. 한편 사회경제적 지위가 높은 집안의 아이들은 그렇지 않은 아동에 비해 뇌의 표면적도 더 넓었다. 부모의 소득과 교육 수준에 따른 뇌 표면적의 차이는 유아에게서는 발견되지 않으므로 이와 같은 차이는 환경과 경험에 기인한 것으로 보인다.

뇌 피질의 두께는 신경세포들이 맞닿아서 정보를 주고받는 부위인 시냅스의 밀도와 상관관계가 있다. 모델링 연구에 따르면, 복잡한 인지처리를 하는 연합영역의 시냅스 형성과 가지치기를 지연하는 것이 학습과 에너지 효율 면에서 유리하다고 한다. 조기에 일어나는 압축적인 발달은 부모의 지원이 적은 상황에서 일찍 독립을 촉진하기에는 좋지만, 성인이 된 후에 최적의 성능을 내기에는 좋지 않았다. 인지능력은 뇌 영역들이 독립적으로 정보를 처리하는 정도와도 깊은 관련이 있는데, 사회경제적 지위가 높은 집안의 아동들은 뇌 부위들이 구분되는 과정이 서서히 오래 일어난다. 그 결과 사회경제적 지위가 낮은 집안의 아동에 비해 성인이 된 후에 뇌 부위들의 독립성이 더 큰 경향을 보였다.

집단의 경향성을 근거로 개인을 속단해서는 안 되겠지만, 경향성의 존재를 부정할 수는 없다. 이와 같은 결과는 사회경제적 지위가 감정조절, 언어능력 등을 관장하는 뇌의 발달에 영향을 주며 개인의 노력뿐만 아니라 출발선도 개인의 능력에 영향을 준다는 사실을 시사한다.

공정이건, 평등이건 타인을 해치지 않는다면 그 어떤 가치라도 공동체에서 받아들여질 수 있다. 그러나 아무리 많은 이들이 지지하는 가치일지라도, 호모 사피엔스의 실제에 근거하지 않은 이데올로기는 실패한다. 공산주의 국가들이 망한 것도, 자유주의가 2008년 경제위기에서 한계를 드러낸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었다. 따라서 어떤 가치건, 현실에서 구현하려면 그때부터는 사실을 다루어야 한다. 실제의 인간 호모 사피엔스는 어떤 존재인지, 특정한 ‘주의’가 내포한 가정들이 사실과 부합하는지. 그리고 사실을 다루는 인류가 가진 최선의 방법이 과학과 기술이다. 사회경제적 지위와 뇌 발달에 대한 위의 논문에 따르면, 능력주의가 내포한 일부 가정들은 수정이 필요할지도 모르겠다.

송민령의 뇌과학 이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