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드 코로나’의 문제 설정

송민령 공학박사
[송민령의 뇌과학 이야기] ‘위드 코로나’의 문제 설정

공학은 목표를 달성할 수단을 제공한다. 예컨대 날씨가 더울 때면 선풍기 등 체온을 낮출 수단을 제공한다. 공학 덕분에 우리는 수천년 전이라면 상상도 하지 못했을 기적을 매일 누리며 살아간다.

송민령 공학박사

송민령 공학박사

그런데 공학으로 난관을 타개하려 할 때 반드시 선행해야 할 일이 있다. 바로 (1) 어떤 문제를 풀지, (2) 한계 조건이 무엇인지, (3) 구체적으로 어떤 상태가 목표인지를 명확히 정리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방호복을 입은 구급대원들이 너무 더워서 일하기 힘든 상황을 생각해 보자. 이 경우의 문제는, 방호복 때문에 구급대원들의 체온이 높아진다는 것이다. 한계 조건은 구급대원의 활동성을 보장하고 코로나 바이러스로부터 보호하면서도 체온을 낮춰야 한다는 것이다. 가격이 비싸지 않아야 하며 사용법도 쉬울수록 좋다. 문제가 해결된 상태는, 구급대원들이 자유롭게 움직이고 바이러스로부터 보호받으면서도 너무 덥지 않은 상황이다.

이처럼 문제와 한계조건, 목표상태가 명확하면 공학은 아무리 어려운 문제라도 길을 더듬어갈 수 있다. 여행지에서 들고다니는 소형 선풍기와 비슷한 장치를 개발해서 위 문제를 해결하려 한다고 상상해보자. 값싸고, 가벼운 데다 시원하고, 바이러스로부터 완벽하게 보호하면서, 사용하기도 쉬운 장치를 개발하면 물론 좋다. 하지만 얻는 게 있으면 잃는 게 있다. 파워가 세서 시원하면서, 가볍고, 배터리도 오래 가게 만들면 필연적으로 가격이 오른다. 방호복 안팎으로 거센 바람이 드나들면서 바이러스가 들어올 위험도 커진다. 목표치가 너무 높으면 개발에 수십년이 걸릴 수도 있다. 이처럼 좋은 것을 모두, 동시에, 완벽하게 이룰 수 없기 때문에 우선순위가 필요하다. 우선순위만 명확하면, 완벽하지는 않아도 지금보다는 나은 상황으로 나아갈 수 있다.

그런데 화성 탐사선을 보내고, 백신을 만드는 공학도 못하는 일이 있다. 바로 명확하지 않은 문제를 해결하는 일이다. 문제와 목표가 불분명하면, 그때그때 좋다고 여겨지는 것들을 좇으며 우왕좌왕하게 된다. 어떤 사람이 X라는 바람직한 것을 주장하면, 다른 누군가는 Y라는 다른 바람직한 것을 들며 X만으로는 부족하다고 비판할 수 있다. X를 주장한 사람도, Y를 주장한 사람도 우리 사회의 소중한 구성원이지만, 좋은 것을 모두, 동시에, 완벽하게 하려고만 해서는 X도, Y도 해결할 수 없다.

요즘 논의되는 ‘위드 코로나’가 그렇다. 코로나19 팬데믹은 모든 나라가 처음으로 겪고 있다. 이러니 어떤 상태가 ‘위드 코로나’인지 명확한 합의와 선례가 없다. 문제 자체에 대한 정보도 부족하다. 새로운 변이에 대해 지금도 계속 배워가고 있으며, 어떤 방역책이 어떤 효과를 내는지도(때로는 폭증하는 중환자와 사망자라는 무거운 비용을 치르며) 알아가는 중이다. 가장 먼저 ‘위드 코로나’를 시작했던 이스라엘은 인구가 930만명에 불과한데도 최근 7일간 평균 사망자가 27명(같은 기간 한국은 8명)에 달했다.

한계조건에 대해서는 모르는 것이 더 많다. 코로나19 후유증의 비율이 어느 정도이고 그로 인한 개인과 사회의 부담이 어느 정도일지, 팬데믹 시기에 유아와 아동·청소년의 발달은 어떨지, 신종 전염병의 잦은 출현과 디지털 전환이 자영업 생태계를 어떻게 바꿀지, 모든 나라가 좌충우돌하며 알아가고 있다.

무엇보다 우선순위를 정하기가 어렵다. 기후가 안정되고, 팬데믹이 아니던 시기에 우리가 소중하게 여겼던 생명, 언론의 자유, 개인의 자유와 같은 가치들이 새로운 상황에서 예기치 못하게 작용하는 일이 늘었기 때문이다. 예컨대 언론의 자유를 빙자한 가짜뉴스는 백신 접종을 방해했고, 개인의 자유는 방역 지침을 거부하며 타인의 생명과 경제활동을 위협할 당위를 제공하기도 했다. 사회적인 합의를 통해 우선순위를 다듬어가야 하는데 쉽지 않아 보인다. 팬데믹에서 벗어나고 싶은 열망은 모두가 강하고, ‘위드 코로나’가 어떤 상태여야 하는지에 대한 생각은 각자의 정보와 입장에 따라 다르기 때문이다.

새옹지마라던가. 작년에 방역에 성공한 나라들은 올 상반기에 백신 접종이 더딘 편이었다. 그런데 하반기가 되고 보니 먼저 백신 접종을 시작한 나라들의 ‘위드 코로나’ 시행착오를 관찰하며 약간의 시간 여유를 갖게 되었다. 모든 세계인이 처음 겪는 일이니 상황이 또 어떻게 흘러갈진 알 수 없지만, 이 시간 여유를 최대한 활용하여 우리만의 현명한 ‘위드 코로나’를 빚어가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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