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과 손가락

전성인 홍익대 경제학부 교수

불같은 여름도 가고 어느덧 선선한 가을바람이 분다. 세상의 이치는 자명한데, 사람의 간교함과 위선은 끝 간 곳을 모른다. 그 참을 수 없는 사례들을 살펴보자.

머지포인트 사태가 한동안 지면을 달궜다. 머지포인트 운영사는 전자금융거래법상 선불업자로 등록을 하지 않은 채 불법적으로 영업했다. 이는 형사처벌 대상으로 경찰 또는 검찰의 영역이다. 그런데 일부 언론은 “감독기구는 뭘 했냐”고 질타한다. 감독기구는 금융업자로 인가, 허가를 받고 신고, 등록을 한 회사를 감독하는 곳이다. 이런 절차를 밟지 않은 범죄자의 죄를 추궁하는 것은 사법행정의 영역이다. 따라서 일부 언론의 이런 질타는 방향착오다.

전성인 홍익대 경제학부 교수

전성인 홍익대 경제학부 교수

더 간교하게 머지포인트 사태를 이용하려는 곳도 있다. 금융위 관료들이다. 그들은 국회의원들에게 국회에 계류 중인 전자금융거래법 개정안이 통과되면 이런 일을 방지할 수 있을 것처럼 말했다고 한다. 새빨간 거짓말이다. 현행법에 의하건, 개정안에 의하건 감독기구는 미등록 업자에 대한 감독권이 없다.

물론 불법 사금융에 대한 사법행정을 강화할 필요는 있다. 두 가지 방법을 생각할 수 있다. 하나는 경찰 또는 검찰 내에 별도의 불법 금융 대응 조직을 신설하고 전문성을 강화하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현재 금융감독원이 자본시장법 위반 사건에 대해 제한적으로 보유한 특별사법경찰권의 관할 대상을 불법 사금융 영역으로 확장하는 것이다. 이들 대안에 대해서는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다. 그러나 그 합의가 어떤 것이건 전자금융거래법 개정안이 통과되면 머지포인트 같은 사태가 사라질 것이라는 말은 간교한 거짓말이다.

박범계 법무장관·금융위 관료 등
요즘 손가락을 요사스럽게 흔들며
시선을 유도하는 사람들이 많다
달을 봐야 사물의 본질 보이는데
그들은 진실의 적일 뿐이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삼성전자 경영에 간섭했다. 이 부회장은 현재 특경가법 제14조 제1항에 따른 취업제한 대상자인데 가석방 기간에 이를 어긴 것이다. 박범계 법무부 장관은 미등기 이사는 등기 이사와 다르기 때문에 아무 문제없다는 식으로 넘어가려 하지만, 이 부회장은 통계청 직업분류표상 엄연한 직업인 ‘기업 임원’이고, 그 지위를 이용해 사장단 회의를 주재하고 통 큰 투자를 결정함으로써 회사의 경영에 영향력을 행사했다.

과거 행정법원 판례는 특경가법상 취업제한 규정의 의미를 “범죄행위와 밀접한 관련을 가지는 기업체에서 일정 기간 회사법령 등에 따른 영향력이나 집행력 등을 행사하거나 향유할 수 없도록 함으로써 관련 기업체를 보호”하는 것이라고 명쾌하게 정리했다. 그런데 박 장관은 행정부의 유권해석이 법원의 판결보다 우선할 수 없음을 잘 알면서도 이런 판례를 애써 외면하고 있다. 위선과 궤변이 아닐 수 없다.

만일 이 부회장이 새로운 범죄를 저질렀다면 그 결과는 간단치 않다. 우선 가석방의 혜택이 그대로 유지될 수는 없다. 하지 말라는 일을 했기 때문이다. 또한 박 장관은 특경가법 제14조 제4항의 규정에 따라 삼성전자에 대해 이 부회장의 해임을 요구해야 한다. 삼성전자의 준법지원인은 회사가 이에 응하도록 촉구해야 한다. 삼성준법감시위원회는 삼성전자의 준법지원인이 움직이지 않을 경우 스스로 이 부회장의 해임을 촉구해야 한다. 그러지 않는 경우 스스로의 위선과 무능함을 드러낼 뿐이다.

이 부회장에 대한 취업 승인도 쉽지 않다. 취업 승인을 하기 위해서는 유사 범죄의 가능성이 없다는 합리적 보장이 있어야 하는데, 삼성전자의 준법지원인이 이 부회장의 해임을 촉구하지 않는 한, 삼성전자의 준법감시조직은 유효하게 작동하는 것이 아니고, 결국 유사 범죄의 재발을 방지하는 장치가 담보된다고 볼 수 없다.

손태승 전 우리은행장에 대해 행정법원이 면죄부를 줬다. 논리가 희한하다. 금융회사는 내부통제기준의 ‘마련’ 의무는 있지만, ‘준수’ 의무는 없기 때문이란다. 즉 행정법원의 주장은 ‘안 지켜도 되는 기준’을 꼭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실제 법문은 정반대다. 금융회사지배구조법 제24조 제1항에 따르면 금융회사는 “직무를 수행할 때 준수하여야 할 기준 및 절차”를 마련해야 한다. 결국 행정법원 판결은 억지다. 조문의 전체적 취지 대신, 편협한 자구 해석에 매몰된 것이다.

견월망지(見月忘指). 손가락을 보지 말고 달을 보라는 뜻이다. 그래야 사물의 본질이 보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우리 사회에는 손가락을 요사스럽게 흔들며 시선을 유도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들은 진실의 적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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