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과 생각의 에너지 조율

송민령 공학박사
[송민령의 뇌과학 이야기] 몸과 생각의 에너지 조율

한낮이면 35도를 넘던 여름이 엊그제 같은데 벌써 가을이다. 일교차가 10도 가까이 벌어졌고 한두 달만 더 지나면 아침 기온이 영하로 떨어질 것이다. 환경이 크게 변하는 데 반해 신체의 내부는 그렇지 않다. 정상적인 생명 활동을 위해서는 체온, 삼투압, 혈압, 혈당 등의 조건이 일정한 범위에서 유지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뇌는 이와 같은 항상성의 유지에도 관여하고 있다.

송민령 공학박사

송민령 공학박사

체온, 혈압, 혈당 등은 기계처럼 고정되어 있지 않으며 상황에 따라 조절되어야 한다. 혈당을 생각해보자. 맹수를 마주했을 때와 같은 스트레스 상황에는 근육이 에너지를 끌어다 쓰기 쉽도록 혈당이 높아지고, 안전한 곳에서 백일몽을 꿀 때는 혈당이 낮아져야 한다. 이처럼 외부 환경에 맞게 움직이면서도 혈당을 ‘적절하게’ 조절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더욱이 환경에 맞는 움직임을 계산해내고 혈당을 조절하는 기관인 뇌부터가 다량의 포도당을 소비한다. 뇌가 하루에 소비하는 포도당은 약 90g(340㎉)이며 이는 신체가 소비하는 포도당의 절반에 육박한다. 따라서 뇌 활동 자체가 혈당과 어느 정도 맞물려 있으면 좋을 것이다. 정말 그럴까?

지난 8월 데이비드 팅글리(David Tingley) 등이 네이처에 발표한 바에 따르면 실제로 그렇다고 한다. 동물 신체의 세포들 사이에는 ‘조직액’이라고 하는 액체가 있다. 모세혈관에서 혈장의 일부가 빠져나가서 생긴 액체인데, 조직액은 세포와 혈액 사이의 물질 교환을 매개하는 역할을 한다. 연구자들은 쥐의 등쪽 조직액의 혈당 수치와 뇌 속 해마의 신경활동을 동시에 관측하면서 둘 사이에 관련성이 있는지 살펴보았다.

해마는 ‘아침에 빵을 먹었다’와 같은 경험이나, ‘우리나라의 수도는 서울이다’와 같은 지식의 기억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는 뇌 부위이다. 심한 스트레스가 없는 환경에서 동물이 가만히 쉬고 있을 때, 해마 신경세포들의 뇌파는 200㎐ 정도의 고주파가 0.1초가량 지속되는 양상을 보일 때가 있다. 이를 ‘날카로운 파형의 잔물결(sharp wave ripple)’이라고 부르는데 이 활동 양상은 기억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다. 예를 들어 쥐가 새로운 장소를 탐색한 후 쉬는 동안에는 날카로운 파형의 잔물결 뇌파가 일어나는데, 이 뇌파를 억제하면 새롭게 탐색한 장소를 잘 기억하지 못한다. 반면에 이 뇌파가 클수록 기억을 잘한다. 날카로운 파형의 잔물결 뇌파는 해마 신경세포들의 발화가 많을 때 발생하며, 이 뇌파가 일어나는 동안에는 해마로부터 입력을 받는 다른 뇌 부위들의 활동도 높은 경향을 보인다. 요컨대 신체의 에너지 소비가 적은 안전한 환경에서, 기억에서는 중요하지만 뇌의 에너지를 제법 소비하는 ‘날카로운 파형의 잔물결’이라는 뇌파가 일어난다.

뇌의 에너지 소비가 클 때, 즉 ‘날카로운 파형의 잔물결’이 일어날 때 신체로 가는 혈당량이 적다면 정말이지 절묘할 텐데 과연 그럴까? 연구자들은 ‘날카로운 파형의 잔물결’이 일어난 지 약 10분이 지난 뒤 조직액의 혈당이 정말로 낮아지는 현상을 관찰했다. 가설이 옳았던 것이다. 연구자들은 추가 실험을 통해 ‘날카로운 파형의 잔물결’과 혈당의 상관관계가 식사나 하루 생활리듬 등 다른 요인에는 거의 영향을 받지 않음을 확인했다. 나아가 인위적으로 해마 신경세포들을 자극해서 ‘날카로운 파형의 잔물결’을 모방했을 때도 혈당이 내려가는 것을 발견했다. 시상하부는 혈당 등 항상성 조절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는데, 해마에서 시상하부로 이어지는 연결을 억제했을 때는 해마에서 ‘날카로운 파형의 잔물결’이 일어나도 혈당이 낮아지지 않았다. 이런 추가 결과들은 ‘날카로운 파형의 잔물결’과 혈당 감소의 인과관계를 뒷받침한다.

무언가를 기억하는 등 인지활동은 별다른 도구를 요구하지 않는다. 그래서 언제 어디서든 쉽게 할 수 있다고 여겨왔다. 소개된 연구는 그렇지 않음을 보여준다. 인지활동의 품질은 주변 환경과 신체 움직임에 영향을 받았고, 신체 나머지 부분과의 에너지 조율도 필요했다.

모든 순간에 모든 것을 다 잘할 수는 없다. 상황에 따라 더 적절한 활동이 달라지고, 무엇이 적절한 활동이냐에 따라 신체의 어느 기관에 에너지를 보내야 할 것인지가 달라진다. 신체가 안전한 환경에서 쉬는 동안에는 뇌 활동이 늘어나고, 이 동안에는 신체로 보내는 혈당을 줄이도록 조율하는 뇌는 참으로 절묘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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