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박 간병’ 사회

박종성 논설위원

안타까운 소식이 들렸다. 지난 5월 22세의 청년이 뇌출혈로 쓰러진 아버지를 굶겨 사망케 한 사건이 뒤늦게 알려졌다. 청년은 극심한 생활고 속에서 홀로 아버지를 돌봤다고 한다. 그러나 치료비를 감당할 수 없자 병원에서 퇴원시켰다. 아무리 발버둥쳐도 빚 독촉과 생활고를 피할 수 없었다. 비극을 직감한 아버지는 “부를 때까지 방에 들어오지 말라”고 했고 자포자기한 청년은 아버지가 숨진 뒤 경찰에 신고했다. 1심에서는 존속살해 혐의로 징역 4년을 선고받고 2심이 진행 중이다. 인터넷 언론을 통해 알려진 사건에 아들에 대해 살인이 아닌 유기치사로 판단해 달라는 탄원이 이어지고 있다.

박종성 논설위원

박종성 논설위원

가족에게 간병의 시간은 전후의 차이만 있을 뿐 누구나 건너야 할 두려운 강이다. 태어나고 자랄 때 누군가의 도움이 필요하듯 질병이나 노화로 스스로 거동할 수 없을 처지에 이르면 조력을 받아야 한다. 어려서는 육아·보육, 늙어서는 간병의 시간이다. 그 강을 어떻게 건너느냐에 따라 가족은 화합과 파탄을 오갈 수 있다.

이번 사건에는 두 가지 이슈가 있다. 하나는 돌봄을 도맡은 ‘영 케어러’ 즉 젊은 간병인의 책임이며, 다른 하나는 돌봄의 대상인 ‘아버지의 죽음’에 관한 것이다.

간병을 이야기할 때 관심사는 주로 ‘어떻게 환자를 돌보는가’에 집중된다. 가족의 입장이다. 간병하는 가족은 다양한 어려움에 직면한다. 우선 불확실한 미래다. 끝나지 않을 것 같은 간병의 기간이다. 고령자의 경우 정상으로 복귀는커녕 더 악화하지 않기만 기대해야 한다. 희망의 빛이 보이지 않는 상황을 견뎌야 하는 데서 좌절은 깊어진다.

여기에 현실적인 비용 부담은 또 하나의 허들이 된다. ‘54세의 아빠가 뇌출혈로 쓰러졌다’는 20대 중반 딸의 사연이 청와대 청원에 올라왔다. “재활병원 병원비는 180만원, 간병인 비용은 하루에 11만원씩 한 달에 350만원 이상이 들어갑니다. 그런데 간병비에 대한 복지가 전혀 없습니다.” ‘학생 신분으로 간병비를 책임져야 한다’는 청원인은 터무니없는 간병인 비용에 대한 대책을 호소했다. 병상에 누운 환자가 있으면 가족 중 누군가는 책임을 져야 한다. 그래서 병원비·간병비를 대다 ‘간병 파산’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인간적인 갈등도 크다. 자신을 키워준 부모에 대한 도덕적 의무와 이를 감당할 수 없는 현실에서 기인한다. 그러나 이는 간병 문제의 절반이다.

간병의 다른 한편에는 환자가 있다. 간병 논의에서 환자의 입장이 제대로 반영되지 않는 경우가 많다. 환자 자신도 ‘나 때문에 가족들이 피해를 본다’는 자책감에 속내를 드러내지 못한다. 그 과정에서 환자의 인권은 사각지대에 놓인다. 몸을 움직이지 못한다고, 치매라고, 감정표현이 서툴다고 환자를 마치 ‘물건’ 다루듯 한다.

인권침해는 환자 주변의 가족이나 간병인에서 나온다. 인권위가 2018년 실시한 ‘노인인권 모니터링’ 결과는 요양기관의 인권침해 현주소를 보여준다. 과도하게 신체 억제대를 사용하거나, 욕창관리를 부실하게 하고, 입·퇴소 시 자기결정권을 무시하거나, 환자와 보호자의 알권리를 침해했다. 간병인들의 입원 환자에 대한 폭행 신고도 빈번하다. 동물권, 식물권에 이어 무생물인 로봇권을 이야기하는 세상이다. 로봇에 대해 공감능력을 요구하면서 실상 인간에 대해서도 제대로 공감능력을 보이지 못한다.

그런 대우를 받는 환자의 입장은 어떨까. 영화 <더 파더>는 치매환자의 시각에서 세상이 어떻게 보이는지 알려준다. 주인공은 자신이 보고 들은 것을 말하지만 주변 사람들은 무시로 일관한다. 환자는 투명인간이다. 주인공은 원치 않으나 딸은 그를 요양원에 보내려 한다. 그러나 그에게는 반대할 권리가 없다. 주인공은 말한다. “집 마련하느라 얼마나 고생했는데 이젠 내 몸 하나 누울 곳도 없다.” 그는 좌절한다.

고령화가 급속도로 진행되고 있다. 65세 인구가 20%를 넘어서는 초고령사회 진입을 목전에 두고 있다. 반면 합계출산율도 1명이 무너진 지 오래다. 병시중 들 가족은 줄고 환자는 늘고 있는 것이다. ‘독박 간병’은 급행열차를 탔다. 국가의 책임을 말하지만 현실에서는 개인의 영역일 뿐이다. 영화 <더 파더>의 주인공은 이사를 가겠다는 딸에게 묻는다. “가라앉는 배에서 뛰어내리겠다고?” 딸은 대답을 못한다. 그러나 눈으로 말한다. “나도 이것이 최선이에요.” 간병이라는 파도에 가족이라는 배가 침몰하고 있는 것 같다.


Today`s HOT
틸라피아로 육수 만드는 브라질 주민들 아르메니아 국경 획정 반대 시위 이란 유명 래퍼 사형선고 반대 시위 올림픽 성화 범선 타고 프랑스로 출발
기마경찰과 대치한 택사스대 학생들 보랏빛 꽃향기~ 일본 등나무 축제
앤잭데이 행진하는 호주 노병들 연방대법원 앞 트럼프 비난 시위
파리 뇌 연구소 앞 동물실험 반대 시위 뉴올리언스 재즈 페스티벌 개막 친팔레스타인 시위 하는 에모리대 학생들 러시아 전승기념일 리허설 행진
경향신문 회원을 위한 서비스입니다

경향신문 회원이 되시면 다양하고 풍부한 콘텐츠를 즐기실 수 있습니다.

  • 퀴즈
    풀기
  • 뉴스플리
  • 기사
    응원하기
  • 인스피아
    전문읽기
  • 회원
    혜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