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지연 전시기획자
만 레이, 선물, 1921

만 레이, 선물, 1921

최고의 선물을 ‘현금’으로 꼽는 사람들도 있지만, 여전히, 받는 사람의 마음을 헤아리면서 섬세하게 준비한 선물을 선호하는 이들이 많다. 친구에게 어떤 선물이 좋은지 물었더니, 갖고는 싶지만 내 돈으로 사기는 아까운 것이 좋다고 했다. 실용적이지 않은 것, 너무 비싼 것, 꼭 필요하지는 않은 것 등이 여기에 포함되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요새는 소셜미디어에 있는 ‘선물하기’를 즐겨 사용하는데, 선물이 오가는 명절을 앞두고는 좀 더 자주 들락거린다. 대목을 맞이한 이들은 ‘설날’ 카테고리를 만들고, 건강, 부, 행복 꼭지 안에 여러 상품을 큐레이션 해두었다. 하지만, 정작 내 눈길을 사로잡는 카테고리는 ‘쓸모없는 선물’이다. 혼술용 도구, 집순이를 위한 담요, 티슈모자, 심지어 콩나물키트까지, ‘알고 보면 쓸모 있는’이라는 카피에 홀려 선물 리스트를 살피다보면, 이 선물들이야말로 받는 이에게 큰 기쁨을 줄 수 있는 ‘잇 아이템’이라는 생각에 만족감이 차오른다.

예술의전당 ‘초현실주의 거장들’ 전시회에 갔다가 만 레이의 작품 ‘선물’을 만났다. “오직 인간만이 쓸데없는 것을 창조하는 유일한 생물이라는 점이 놀랍다”는 말을 남기기도 한 만 레이가 파리에서 열린 그의 개인전 방문객을 위해 준비했던 이 선물은 유럽식 납작한 다리미 중앙에 14개의 구리못을 한 줄로 붙여놓은 형태다. 당연히 ‘다리미’로 사용할 수 없다.

작곡가 에릭 사티와 카페에서 술 한잔하고 길을 나선 그는 철물점에 들러 다리미와 풀, 못을 구매해 이 선물을 완성하고 전시장에 두었다. 하지만 아무도 모르는 사이 선물이 사라진 바람에 이 다리미를 선물하지 못했다. 전시장에 자리 잡은 레플리카 ‘선물’을 보면서, 준비하며 즐거웠을 만 레이의 마음을 상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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