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라리 ‘지역균형발전은 없다’고 말하라

박종성 논설위원

어느 시대건 욕망을 충족시킬 수 있던 적은 없다. 욕망의 크기만큼 경쟁은 치열해진다. 자신의 손에 쥔 몫이 적을 때 불만은 커진다. 불만이 쌓이면 불화가 되고 사회는 불안해진다. 불안은 공동체의 적이다. 분배의 실패는 정치의 실패다. 그래서 정치란 한정된 자원의 배분 기술이라고 한다.

박종성 논설위원

박종성 논설위원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후보들이 공약을 쏟아내고 있다. 정치 공약은 분배의 우선순위에 관한 정치집단의 철학과 가치의 표현이다. 연초에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후보와 윤석열 국민의힘 후보가 경기도 지역공약을 냈다. 두 후보의 공약은 유사하다. 이들은 수도권광역급행철도(GTX)의 신설, 연장을 통해 경기도 전역을 30분 생활권으로 만들겠다고 했다. 두 후보 모두 현재 GTX의 A, B, C, D 노선을 연장하겠다고 했다. 신설 노선은 이 후보가 2개+알파, 윤 후보가 3개다. 크게 다를 게 없다. 서울 접근성을 높이겠다는 게 목표다. 이들은 경기도 전 지역을 실핏줄처럼 촘촘하게 연결해 하나의 공동체로 만들겠다고 한다. 궁극적으로 수도권을 하나의 메가시티로 만들겠다는 것이다.

후보들은 GTX 노선 확장 이유가 ‘주민을 위해서’라고 했다. 경기도 교통소외지역 주민을 위해 교통인프라를 늘리고 이를 통해 삶의 질을 높일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준다는 것이다. ‘기존 노선으로는 수요를 감당하기 힘들다’거나 ‘교통지옥이 된다’, ‘수도권의 균형발전에 필요하다’고 했다. 물론 완전히 잘못된 말은 아니다. 그러나 이는 수면 위에 나와 있는 빙산의 일부만을 보는 것이다. 수면 아래 커다란 몸체를 보자.

GTX의 확대 추진은 지역균형발전과 정면으로 배치된다. GTX가 연장, 신설되는 곳을 따라 각종 인프라가 들어서고 인구가 늘어난다. 경기도 주변 지역에서 경기지역으로 이주가 증가할 것이다. GTX역 주변에 거주하면 일자리와 문화시설을 공유할 수 있는데 소외지역에 살 이유가 없다. 이미 신설 역에 미니신도시까지 만든다는 계획도 나와 있다. 수도권 집중화를 대놓고 추진하겠다는 것이다. 서울공화국을 넘어 수도권공화국으로 가는 길이다. 지방소멸시대의 가속화가 불 보듯 하다. 누군가 수도권과 지방을 함께 살릴 수 있다고 말할지 모른다. 말장난에 불과하다. 이건 ‘따뜻한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주문하는 것과 같다.

한정된 재화의 정의롭고 합리적인 분배에도 맞지 않는다. 국가의 유한한 자원을 일부 지역에만 대량으로 지속적으로 집중적으로 배분하는 게 정당한가. 서울·경기지역은 집중적인 투자로 생활편의뿐 아니라 지가 상승의 혜택을 받아왔다. 경기지역은 남부지역과 비교해 상대적으로 인프라가 잘 갖추어져 있다. 이곳에 천문학적인 자금을 더 투입하는 이유를 소외지역 주민들에게 설득시킬 자신은 있는가. GTX 건설은 지역별 부익부 빈익빈을 가속화할 뿐이다. 정의로운 분배와 거리가 멀다.

근본적인 문제는 GTX 건설 재원이다. 민간자본을 끌어들여 비용을 줄이겠다고 한다. 앞서 사업성이 좋다고 여겨졌던 GTX 노선에도 재정이 투입됐다. 이들보다 열위에 있는 노선들은 국비의 투입 없이 추진될 가능성이 매우 낮다. 결국 빚으로 건설하겠다는 뜻이다. 가뜩이나 국가의 빚이 급격하게 늘고 있는 상황이다. 기본적인 복지 수요도 급증하고 있다. GTX 노선 확장이 시급하고도 절박한 사안인가.

당초 GTX 건설의 명분은 서울로 출퇴근하는 일부 경기지역 주민들에게 ‘일자리가 있는 서울로 가는데 길바닥에서 낭비하는 시간을 줄이자’는 것이었다. 그러나 앞뒤가 바뀌었다. 주민 편의를 넘어 GTX 건설이 지상의 과제가 됐다. 경제성이 떨어진 GTX 노선을 살리기 위해 노선 연장에 또 연장을 거듭했다. 급기야 경기도 전역을 GTX 이용권역화하겠다는 공약까지 나온 것이다. GTX 노선은 난마가 되었다.

딜레마의 상황이다. 경우의 수는 두 가지다. GTX 공약을 포기하느냐, 아니면 계속 추진하느냐이다. 전자의 경우에는 지역 주민을 속인 것이 된다. 선거를 위해 헛공약을 내세운 데 대한 책임이 따른다. 후자는 자원의 정당한 배분 원칙에 위배되고, 지역균형발전에 역행할 뿐 아니라 미래세대에 빚을 남기는 결과를 초래한다. 결단을 내려야 한다. 결론은 나와 있다. GTX 공약은 폐기되어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지역균형발전은 ‘선거용 정치적 수사’에 불과했다”고 말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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