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래와 세상

실버들을 천만사 늘여놓고도

오광수 시인·대중음악평론가
[노래와 세상] 실버들을 천만사 늘여놓고도

버드나무 솜털이 날리는 오월엔 희자매의 노래 ‘실버들’이 제격이다. 오월의 햇살과 바람을 닮아서 부드러우면서도 처연하다.

‘실버들을 천만사 늘여놓고도/ 가는 봄을 잡지도 못한단 말인가/ 이 내 몸이 아무리 아쉽다기로/ 돌아서는 님이야 어이 잡으랴/ 한갓되이 실버들 바람에 늙고/ 이내 몸은 시름에 혼자 여위네.’

탁월한 쇼비즈니스 우먼이었던 한백희와 인순이가 손잡고 만든 3인조 걸그룹 희자매(김인순, 김재희, 이영숙)의 히트곡이다. 한백희는 동두천에서 ‘혼혈’인 인순이를 스카우트한 뒤 노래보다는 쇼에 적합한 걸그룹을 출범시켰다. 김완선의 이모이자 매니저로도 잘 알려진 한백희는 당시 대중음악계를 주름잡던 안타프러덕션의 안치행에게 ‘실버들’을 주문 생산한다. 영사운드의 기타리스트 출신인 안치행은 김소월의 시로 알려진 노랫말에 트로트와 고고리듬을 뒤섞어 율동이 가능한 노래로 만들었다. 노랫말이 소월의 그것으로 알려졌지만 이를 입증할 만한 자료와 근거가 부족하다. 안치행은 최헌의 ‘오동잎’, 윤수일의 ‘사랑만은 않겠어요’, 김트리오 ‘연안부두’ 등을 만들어 대마초 공백기의 음반 시장을 이끈 히트곡 제조기였다.

이 노래 역시 1978년 가요계를 휩쓸었다. 인순이는 ‘혼혈 여가수’로 차별적 발언에 시달렸지만 상대적으로 눈길을 더 끌기도 했다. 영화 <흑녀>에서 비키니를 입고 출연하고, 밤무대에서도 주가를 드높였다. 인순이는 1981년 희자매를 탈퇴, 인순이와 리듬터치 등의 이름으로 솔로활동을 이어갔다. 한백희는 이때의 경험을 바탕으로 ‘연습생 효시’가 된 조카 김완선을 가수로 키워냈다. 당시로서는 드문 여성 매니저였던 그는 활달한 성격의 소유자로, 한류를 이끌고 있는 아이돌그룹의 기반을 닦은 인물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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