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 숨 쉬는 민족의 얼…그의 ‘동양 평화’ 정신은 지금도 유효하다

정치영 한국학중앙연구원 인문지리학전공 교수

(42) 남산 안중근 의사 동상

1971년, 2021년 안중근 의사 동상. 셀수스협동조합제공

1971년, 2021년 안중근 의사 동상. 셀수스협동조합제공

다가오는 10월26일에는 유난히 역사적 사건이 많았다. ‘10·26’ 하면, 흔히 1979년 김재규 중앙정보부장이 박정희 대통령을 저격한 사건을 떠올리지만, 2016년 박근혜 대통령의 하야를 요구하는 첫 촛불집회가 열린 날도 10월26일이었다고 한다.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면, 1597년 이순신 장군이 진도 울돌목에서 왜군에게 기적 같은 승리를 거둔 명량해전이 벌어진 날도 양력으로 계산하면 10월26일이었다. 이들 외에 10월26일에 일어난, 우리가 꼭 기억해야 할 사건이 있다. 바로 1909년 안중근 의사가 하얼빈역에서 대한의 독립 주권을 침탈한 원흉이자 동양 평화의 교란자인 이토 히로부미를 사살한 일이다. 최근 김훈이 쓴 소설 <하얼빈>은 안중근 의사의 의거 과정을 생생하게 묘사하여 화제가 되고 있다.

그런데 안중근 의사를 기리기 위해 세운 동상은 우여곡절을 겪었다. 최초의 동상은 1959년 조각가 김경승이 제작했으며, 일본인들의 성지였던 남산 기슭의 경성신사(京城神社) 터, 즉 현재의 숭의여자대학교 교정에 세웠다. 1967년에 이 동상은 남산 조선신궁(朝鮮神宮)이 있던 자리로 옮겨졌다. 경성신사 자리에 처음 안 의사 동상을 조성하고, 다시 일제의 정신적 지주 역할을 하던 조선신궁 터로 동상을 옮긴 뜻은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1971년 사진에는 이 동상의 옆 모습과 1970년 건립된 안중근의사기념관이 살짝 보인다.

여기까지는 괜찮았으나, 이후에 새로 발굴된 안 의사 사진과 동상의 모습이 너무 다르다는 의견이 제시되자, 1974년 김경승이 다시 제작한 동상을 같은 자리에 세우게 된다. 1959년의 첫 번째 동상은 안 의사가 대한의군 참모중장임을 기려 대한민국 육군의 교육시설인 광주 상무대로 옮겨졌고, 상무대 이전에 따라 지금은 전남 장성에 서 있다.

1974년 건립된 두 번째 동상은 그 후 제작자 김경승의 친일 행적 때문에 논란에 휩싸이게 된다. 이에 2010년 조각가 이용덕이 제작한 세 번째 동상이 새로 세워지고, 두 번째 동상은 첫 번째 동상이 있던 숭의여자대학교로 옮겨졌다.

2021년의 사진은 세 번째 동상으로, 안 의사가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한 직후, 태극기를 꺼내든 장면을 담았다. 세 번째 동상은 영원토록 이 자리에 서서 안중근 의사가 소망한 ‘동양 평화’의 의미를 후세 사람에게 일깨워주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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