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역을 하는 이유? “필요하지 않은가”

김종락 대안연구공동체 대표

‘오트르망’(autrement·다르게)이란 연구자 모임이 있습니다. 대안연구공동체에서 10년 동안 미셸 푸코의 사상을 강의해온 철학자 심세광 선생이 역시 철학 연구자 전혜리 선생과 함께 만든 모임입니다. 푸코의 콜레주드프랑스 강의록을 번역하는 것을 비롯해 푸코와 루이 알튀세르, 질 들뢰즈 등을 중심으로 프랑스 현대 비판철학 전반을 연구해왔지요.

김종락 대안연구공동체 대표

김종락 대안연구공동체 대표

모임은 작지만 이들의 성과는 만만치 않습니다. 인터넷 서점에서 ‘오트르망’을 치면 이들이 번역한 책들이 주르르 뜹니다. <정신의학의 권력> <안전, 영토, 인구> <생명관리정치의 탄생> <주체의 해석학> 등등. 물론 <담론과 진실> <루이 알튀세르의 이데올로기> <예술과 다중> 등 각자의 이름으로 번역한 책까지 포함하면 이보다 훨씬 더 많습니다. 최근에는 피에르 다르도와 크리스티앙 라발이라는 학자가 쓴 <새로운 세계합리성>도 번역하는 등 외연도 확대하고 있습니다. 이들과 짧게, 학문과 번역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 <새로운 세계합리성>은 신자유주의 구조와 형성과정에 대한 계보학적 분석이다. 신자유주의는 2008년 세계 금융위기 때 종말을 고하지 않았는가.

“저자들에 따르면 신자유주의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신자유주의가 단순히 상업과 금융에 지배적인 지위를 부여하는 것에서 나아가 우리가 살고 느끼고 사유하는 방식이자 규범으로 변형되었다는 거다. 나라를 막론하고 각자가 전면화된 경쟁 속에서 살아가도록, 서로에 대한 경제적 투쟁 속에 들어가도록, 공공·민간 할 것 없이 모든 사회관계가 시장의 모델을 따르도록 강제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 그동안 주로 푸코를 번역하고 강의하다 이 책을 소개한 이유는?

“이 책과 푸코가 무관하지 않다. 신자유주의가 자본의 논리를 교조화해 개인과 사회를 변형시킨다는 주장은 사실 푸코에서 비롯되었다. 푸코의 <안전, 영토, 인구>와 <생명관리정치의 탄생> 등에 소개된 생명관리권력/생명관리정치, 통치성, 자기의 테크놀로지 등 일련의 개념은 자유주의·신자유주의의 본성과 작동방식을 분석, 비판하면서 현대사회를 설명하는 핵심 키워드다. 그래서 안토니오 네그리, 에티엔 발리바르, 조르조 아감벤, 알랭 바디우, 자크 랑시에르 등 현대 정치철학을 주도하는 사상가들이 푸코의 강의록을 공공연히 참조한다.”

- 지금까지 오트르망 이름으로, 또 개인의 이름으로 번역한 학술서가 20권이 넘는다. 이제 저서로, 자신의 목소리를 낼 때도 되지 않았는가.

“대학과 인문학공동체에서 강의할 때마다 A4 용지로 10장이 넘는 강의록을 작성한다. 이를 매만지면 저서가 될 수도 있다. 하지만 작금 우리 학계에서 저서를 내는 것보다 시급한 것은 번역이다. 현재 학술서 번역 상황은 이루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다.”

학술서 번역 상황이 어렵다는 사실은 학문과 출판을 하는 사람이면 누구나 압니다. 우선 돈이 되질 않습니다. 지난해 겨울, 헤겔 정신현상학 해설서를 번역한 어느 학자가 말하더군요. 1년에 걸쳐 번역한 책이 나온 뒤 원고료로 받은 돈은 50만원이 전부라고요. 이조차 쉽게 받아낸 돈은 아니었습니다. 책을 내고도 반년 동안 한 푼도 못 받고 있다가 독하게 마음먹고 출판사에 항의한 결과라고 합니다.

번역서를 낸다고 해서 학술 업적에 제대로 반영해주는 것도 아닙니다. 자칫 오역이라도 나오면 학자로서의 명성과 신뢰도가 실추될 뿐 아니라 두고두고 욕을 들을 수도 있습니다. 잘해야 본전이라는 이야기지요. 그럼에도 이 땅의 인문학에서 번역의 중요성은 거의 절대적입니다. 반드시 필요한데 사정이 이러하니 번역의 질이 저하되는 것도 당연합니다.

오트르망의 두 학자에게 돈도, 학문적인 업적도 안 되는 번역을 하는 이유를 다시 물었습니다. 이들은 자신이 공부를 한 이유를 묻는 것과 같다며 입을 맞춰 짧게 답했습니다. “필요하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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