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의 미분양 주택 매입이 넘지 말아야 할 선

이한솔 한국사회주택협회 이사장

건설업 위기에 관한 뉴스가 하루가 멀다고 전해진다. 이러한 원인에는 가격구조를 왜곡하여 거품 가득한 상품을 공급하는 한국 부동산(주택) 산업의 비즈니스 모델이 있다. 부동산 경기 침체로 인해, 부풀려진 집값은 제자리를 찾아갔고 투자 수요는 자연스럽게 빠져나갔다. 사는 사람이 없어지자 미분양 물량은 7만호 수준으로 급증하기까지 했다.

이한솔 한국사회주택협회 이사장

이한솔 한국사회주택협회 이사장

거품 장사를 통해 화를 자초한 투기 자본에 응당한 책임을 묻는 것과는 별개로, 건설 산업이 흔들리면 경기 위축 등 국민에게 큰 피해가 전가될 수 있으므로 정부는 줄도산을 막기 위한 일시적 조치를 고려할 수 있다. 윤석열 대통령이 미분양 주택 매입 검토를 지시한 것도 이러한 맥락으로 보인다. 그러나 그 조치가 산업 붕괴를 막기 위해 필요한 것이었다 할지라도, 혼란한 부동산 시장에서 정부가 우선으로 보호해야 하는 세입자는 언급조차 하지 않고 건설사 살리기만 집중하고 있다는 점에서 우려가 크다.

부동산 위기로 인해 ‘생존’에 가장 먼저 위협받은 것은 기업이 아닌 세입자들이었다. 깡통전세, 전세사기 등 전세금을 반환받지 못한 피해자는 눈덩이처럼 불어났다. 이들은 정부의 안내에 따라 대출을 받았을 뿐인데, 어느새 전세금을 날린 것으로도 모자라 집에서 쫓겨날 위기에 처해 있다. 이러한 세입자들을 직접적으로 보호하는 방안은 사고가 발생한 주택을 정부가 매입하는 것이다.

하지만 미분양 아파트 매입 논의만 있을 뿐, 퇴거 위기 세입자들의 거주권을 보장하는 방안은 전혀 논의되지 않고 있다. 전세금 미반환 주택을 공공이 경매로 저렴하게 우선 매입하기 위해서는 여러 제도의 종합적인 개편이 필요하기에, 많은 시일이 요구된다. 예상되는 피해자만 수만명인 만큼 오늘 당장 검토를 시작해도 늦지 않아 보이지만, 대통령은 세입자가 입주하지도 않은 건설사의 미분양에만 관심을 쏟는 듯하다. 시장 실패를 양산한 기업의 과실을 메꿔주는 것이 우선인가, 혹은 투기 자본에 휩쓸려 피해를 본 국민을 보호하는 것이 우선인가.

이에 더해, 기존의 매입임대주택이 감축될 수 있다는 우려도 존재한다. 매입임대주택은 노후화된 저층주거지를 개선하고 주거취약계층에게 적정 임대료를 보장할 수 있는 주요 수단으로, ‘매입’이라는 행위만 같을 뿐 미분양 정책과는 취지도 결과도 다르다. 이미 매입임대주택 예산이 올해 큰 폭으로 감축된 마당에, 미분양 아파트 매입을 위해 얼마 안 되는 예산까지 떼어 가는 일은 없어야 한다.

다수의 국민이 힘든 시기를 버티고 있다. 정부는 정책의 취지를 흐리는 방식으로 일관하지 말아야 한다. 부동산 위기를 자초한 주체들에 대한 근본적인 문책과 대안이 없으면 세입자의 고통은 길어지고 반복될 것이다. 안타깝게도 경제관료, 금융자본, 무분별한 대출을 양산한 주택정책 담당자와 이를 조장한 정치인들까지, 이들은 여전히 떳떳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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