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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세사기 피해자 ‘선 구제, 후 회수’가 먼저다
총선이 끝났지만 21대 국회의 임기는 아직 남았다. 21대 국회가 처리해야 하는 중요한 숙제 중 하나는 전세사기 특별법 개정이다. 특별법은 제정 당시부터 부족한 점이 많아 시행 후 보완하겠다는 것은 국회의 약속이었다.총선이 끝난 이후 야당 역시 전세사기 특별법 개정을 21대 국회의 남은 과제로 꼽았다. 문제는 정부·여당이다. 얼마 전 국토교통부는 전세사기 특별법 개정안에 수조원이 들어갈 것이라며 반대를 표명했다. ‘5조원’이라는 구체적인 예상치도 내밀었다.하지만 정부의 산식은 실제 개정안 내용과 달라도 너무 다르다. 정부는 피해자들의 보증금을 전액 보상한 뒤 한 푼도 돌려받지 못하는 상황을 가정하고 있다. 반면 현재 개정안의 ‘선 구제, 후 회수’는 세입자의 보증금 채권을 평가금액에 따라 매입하고 이를 다시 경·공매를 통해 회수하는 것이기 때문에 전액을 보상하는 것도 아니고, 한 푼도 돌려받지 못할 가능성도 없다. 국토부가 이해하지 못할 만큼 어려운 내용도 아닌데 피해... -
21대 국회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학창시절 벼락치기 경험은 누구에게나 있을 것이다. 만약 내일의 나에게 할 일을 미루지 않았다면 벼락치기는 필요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때때로 마지막 순간의 집중력이 중요한 결과물을 가져오기도 하기에, 우리는 반복적으로 찾아오는 벼락치기의 일상을 익숙하게 받아들이며 살아간다.22대 국회의원 선거가 끝났다. 앞으로 4년간, 공약을 지켜야 하는 이유보다도 미뤄야 하는 이유가 산더미처럼 쏟아질 것이다. 국제정세, 경기 불황의 장기화, 검찰과 언론의 권력 남용 등 해일을 피하는 것이 급선무라는 주장이 우선시 될 것이 뻔하다. 새 술은 새 부대에 담는 것도 좋겠지만 권력자들의 다양한 이해관계로 인해 진정한 새 출발은 어렵다는 것을 이미 알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는 새 국회보다는 오히려 마지막을 준비하는 21대 국회의 벼락치기 효험이 훨씬 더 나을 수도 있다.어차피 당분간 선거도 없다. 악의적인 프로파간다가 횡행하더라도 국민을 설득할 시간도 충분하다. 대통령 지지율이 임기 중 ... -
선거는 끝났지만, 우리의 일상은 계속된다
22대 총선이 끝났다. 선거 결과에 따라 희비가 엇갈린다. 실패한 사람은 물러났고, 성공한 사람은 기세등등했다. 정권 심판을 바랐던 사람들은 기뻐했지만, 진보정치의 위기를 지켜본 사람들은 무거운 침묵에 말 한마디 보태는 것도 조심스러워했다. 차분한 마음으로 개표 결과를 지켜본 나 역시 복잡한 마음이 들었다. 차별금지법 제정이나 성소수자 인권에 대해 목소리를 높여 온 후보자들의 낙선이 뼈아팠고, 노골적으로 혐오 정치를 펼쳤던 이들의 당선에 한숨이 나왔다. 22대 국회는 아직 시작도 안 했는데 기대보다 답답함이 밀려온다.어김없이 선거 다음날이 밝았다. 상담 전화를 응대해야 하는 일상이 시작되었고, 탈가정 청소년 성소수자들에게 매월 1회 생필품 키트를 발송하는 날에 맞춰 우체국 집배원은 아침부터 사무실 문을 두드렸다. 차별과 폭력으로 인해 집을 떠나야 했거나 빈곤, 방임 가정에서 살아가고 있는 청소년 성소수자에게 지원될 물품 박스는 차별을 경험한 횟수만큼 제법 무거웠다.이어... -
선거 때마다 돌고 도는 ‘심판’…독자적인 미래를 그리며
총선을 바라보는 구도는 대체로 심판론에 입각해 있다. 이에 따라 선거 결과 또한, 현 정부 탄생의 시점에서 출발해 여야의 경쟁 릴레이 간 득점과 실점의 비교 우위로 해석하는 듯하다. 승자독식의 선거가 이런 식의 차악선택의 한계를 내재하고 있다는 주장은 흔히 볼 수 있다. 주지하듯 두 정치세력이 서로를 심판하며 번갈아 집권해온 것이 우리 정치의 불행이자 현실이다. 이번 총선을 통해 ‘심판’이 실현되면 어떤 미래가 펼쳐질까?2020년 총선을 떠올려본다. 감염병의 유행으로 비닐장갑까지 껴가며 투표했던 2020년 4월, 더불어민주당과 민주당 위성정당은 180석을 차지했다. 단독 180석이 갖는 함의는 중단 없는 개혁이었다. 국회의장, 상임위원장 다수를 확보하여 원구성의 주도권을 가졌고 신속처리안건 단독추진이나 필리버스터 중단도 가능한 만큼 강력한 입법권이 부여되었다. 사실상 야당의 견제수단이 사라진 데에 많은 이들은 일하는 국회를 주문하면서도 ‘권력의 분점’을 요구했다. 절대적 우위... -
석탄발전은 멈춰도 우리의 삶은 멈출 수 없다
오른 물가와 대파에 관해 이야기하다가 친구와 농담을 나눴다. “대파조차 대통령 눈치를 살살 보고 제값을 낮추는데, 우리는 참 살고 싶은 대로 사네!” 가볍게 던진 말이었는데 혼자 여운이 남았다. 있는 그대로의 자신으로 산다는 것은 무엇일까, 그런 질문이 머리에 맴돌았다.스스럼없이 자신으로 산다는 것은 특권에 가깝다. 타인의 잣대에 맞춰 나를 재단해야 하는 사람일수록, 소수자일수록 그렇다. 나로서 산다는 건 나를 만족시키는 것만 의미하는 것도 아니다. 나의 이익을 위해 다른 생명의 희생을 외면한다면 떳떳하지 않다. 책임감 있다는 것은 지구적으로 사고하는 것, 나답게 산다는 것은 결국 내가 관계 맺는 것들과의 성심성의에 기반한다.태안 석탄발전소 1, 2호기가 내년 12월 폐쇄될 예정이다. 온실가스 발생을 줄이기 위해 석탄발전소는 앞으로 더 많이 문을 닫는다. 문제는 발전소 폐쇄가 인간의 삶에 미치는 영향이다. 여기서 일하는 노동자와 그 가족들, 지역사회의 크고 작은 가게들... -
세월호 세대가 자랐다
열 번째 봄이다. 외투가 무겁게 느껴질 만큼 따뜻해진 햇살에 10주기가 한 달이 채 남지 않았다는 사실을 실감한다. 하지만 10주기라는 상징성이 무색할 만큼 세간의 주목을 받지 못하고 있다. SNS에, 광장에 노란 물결이 넘실거리던 때가 까마득하게 느껴진다. 10년이 지나 누군가는 ‘망각’을 언급하기도 한다. 그 말대로 사람들은 잊은 걸까? 아무리 큰 아픔이라도 기억은 희미해지기 마련이니, 10년의 세월 앞에서 2014년 4월의 기억 역시 희미해져 버리고 말았을까? 아니, 잊을 수 없는 시간이었다. 너무나 사랑했던 사람과의 이별, 거대하고 참혹한 죽음을 목격한 순간, 발붙이고 살아가던 공동체의 침몰 같은 것들은 시간이 지난다고 흐려지는 상처가 아니다. 오히려 우리는 기억을 거부하고 싶은 상태에 가까운 듯하다.지난 10년의 여정에는 눈부시게 반짝이던 순간들이 있었고, 그래서 더 크고 아픈 좌절이 있었다. 수많은 사람이 겨울 찬 바람을 맞으며 봄을 기다리는 마음으로 거리에... -
임태훈의 ‘양심’으로 확인한 것은
더불어민주연합이 끝끝내 국민후보로 추천된 임태훈 전 군인권센터 소장을 컷오프했다. 이의신청도, 재추천의 기회도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부적격 사유는 표면적으로는 ‘병역기피’였다. 공개 오디션에서 2만명 넘는 시민들의 지지를 받은 후보(1위)였다는 점에서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결정이었다.임태훈 전 소장은 2009년 군인권센터를 설립하고, 15년 가까이 군 개혁과 인권 증진을 위해 헌신적으로 활동해왔다. 군 사망사고 유가족들과 함께하며 서로의 아픔을 어루만질 수 있는 길을 열어주기도 했다. 출마 선언 전까지 해병대 채모 상병 순직 사건 수사 외압 의혹의 진실을 파헤치는 것은 물론, 고 변희수 하사의 부모님을 직접 만나 추모활동을 지속하기 위한 활동을 함께 모색하기도 했다. 성소수자 그리고 병역거부자라는 삶의 조건에서도, 사회변화를 위한 활동을 앞장서 해왔음을 부인할 수는 없다. 민주당은 국민 눈높이에 맞지 않는다고 핑계를 대고 있다. 하지만 국가인권위원회가 권고하고, 헌법... -
진보운동만의 독자적 전망은 어디로 갔을까
비례 의석수는 2004년 56석에서 출발해 2008년 54석, 2016년 47석으로 줄었다. 2024년엔 46석이 되었다. 진보운동의 정치개혁 전략의 중심엔 비례대표제가 있었다. 그러나 진보당의 강성희 의원은 비례 의석수를 줄이는 법안에 찬성표를 던졌다. 일부 ‘진보’정당들은 민주당의 하위파트너로 민주당 위성정당에 제 발로 들어갔다. 민주노총은 위성정당을 비호하고, 시민사회 일부는 위성정당 창당과 운영에 가담하고 있다. 민주당 이중대를 넘어 선봉대를 자임하는 정당들이 우후죽순 생겼다. 신장식은 노회찬을 인용하며 조국과 손잡았다. 이합집산만 치열하고 진보운동만의 독자적 전망은 온데간데없다. 녹색정의당은 지지율 2%의 늪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진보운동의 한 순환이 종료되는 듯하다. 진보정당과 진보의 외피를 둘러썼던 노동, 시민사회 모두 근근이 유지해오던 역사와 유산을 불사르고 퇴화를 선언하고 있다.양권모는 경향신문 칼럼(3월5일자 ‘양권모 칼럼’)에서 야당 패배를 경계하며 ... -
왜 우리에겐 보편적 빈곤 정책이 없나
“죄송합니다. 마지막 월세와 공과금입니다. 정말 죄송합니다.” 두 번의 죄송하다는 인사가 쓰인 봉투 속 70만원, 송파구 반지하방에 살던 세 모녀가 세상을 떠나며 남긴 것이다. 이 사건 이후 이른바 ‘송파 세 모녀법’이 제·개정됐다. 2024년 2월은 이들의 죽음이 알려진 지 10년이 되는 날이었다.법 제정 당시 기초생활보장제도의 운영 원리와 목표를 아주 단순하게 도식화하면 ‘최저생계비 이하로 살아가는 사람에게 최저생계비만큼’을 보장하는 것이다. 한 사람이 살아가는 데 100만원이 필요하다면 50만원의 소득만 있는 사람에게 50만원을 지급하는 식이다. 서울시는 안심소득이 무척 혁신적인 소득보장제도라고 말하지만 사실 안심소득과 기초생활보장제도의 원리는 동일하다. 다만 서울시의 안심소득은 선정 기준이 더 높고, 노동소득에 따른 공제 비율이 높게 설계되어 있다. 만약 그 수준으로 기초생활보장제도의 선정 기준과 보장 수준을 높인다면 두 제도 간에는 차이가 사라진다. 오히려 기초생활보... -
멈춰버린 ‘주택정책 시계’를 다시 돌리자
새 주택정책이 발표되어도 예전처럼 관심을 못 끄는 이유는 기대도 우려도 생기지 않기 때문이다. 여당과 야당, 중앙정부와 지방정부 모두 피차일반이다. 재개발 기준의 일부 완화, 신혼부부 대출 확대, 수만호의 주택 공급 등 예전 정책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 것일 게 뻔하니 사람들도 듣는 둥 마는 둥인 게 당연하다.재개발·재건축에 대한 규제를 확 풀어버리겠다며 지난 1월 윤석열 대통령이 발표한 ‘국민 주거안정을 위한 주택 공급 확대 및 건설경기 보완방안’을 보라. 일각에선 우스갯소리로 담당자가 일을 정말 하기 싫었던 게 아니냐는 평가까지 이어졌다. 노른자 땅이라 일컫던 둔촌주공 재건축 사업도 지지부진한 마당에, 글자 몇 마디 바꾼다고 얼어붙은 시장이 풀릴 리 없다. 수익 모델, 건설원가, 금융 등 필수 고려 사항을 무시하고, 재개발 욕망만 불어넣으니 개인에게도 사회에도 해롭기만 하다. 신기루에 불과한 정책이기에 투기 광풍과 세입자들의 쫓김 문제에 대해 걱정하지 않아도 되는 것은 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