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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소년 성소수자 정신건강 손 놓은 정부
질병관리청은 대한민국 청소년의 건강행태 현황을 파악하고자 매년 ‘청소년건강실태조사’를 실시하고 있다. 약 5~6만명 정도의 청소년들이 익명으로 참여하고 있고, 흡연·음주·식생활부터 성 행태·정신건강 등 총 100여개의 설문 응답 결과를 확인할 수 있으니, 청소년 건강증진 사업을 기획하고 평가하기에 유의미한 조사임이 분명하다. 다만, 현재로선 남녀 여부를 확인하는 성별 문항만 존재하고 있어 청소년 성소수자의 건강 상태가 어떤지 전혀 확인할 수 없다.최근 국정감사 기간에 한 의원실을 통해 청소년 성소수자 정신건강 실태가 어떤지 유추해 볼 수 있는 자료를 확보하였다. 2013년부터 2016년까지 성관계 경험률을 확인하는 설문 문항에서 이성·동성과의 성관계를 구분해서 조사했고, 자살률과 교차 분석하면서 정신건강 위기 현황을 확인할 수 있었다. 관련 연구가 전혀 없는 상황에선 기초 현황을 파악하는 데 필요한 분석 과정이었다.결과는 처참했다. 동성과 성관계 경험이 있다고 한 응답... -
지금, 광장 밖에서 기다리고 있는 시민들
탄핵제도는 고위공직자가 직무수행에서 헌법이나 법률을 위반할 때 그에 대한 법적 책임을 따져 그 권한을 박탈함으로써 헌법의 규범력을 확보하는 제도다. 그중 대통령 탄핵은 다른 고위공직자 탄핵에 비해 다소 특수하다. 우선 대통령은 국민으로부터 직접 선출되기 때문에 민주적 정당성 측면에서 확연한 차이가 있다. 또한 다른 공직과 달리 막중한 지위, 지위의 안정성을 헌법이 보장한다. 그렇기 때문에 탄핵심판은 그 자체로 대통령을 물러나게 하는 제도임에도 매우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민주주의 원리를 감안할 때, ‘국민에 의해 선출된’ 대통령을 ‘국민의 대표’ 의회가 탄핵하는 건 당연히 간단할 리 없다.그런데 페루는 2016년 이래로 임시로 직을 승계한 자들을 제외하고 모든 대통령이 탄핵으로 파면되었거나 파면 직전 사임했다. 현 대통령도 지난 4월 탄핵소추되었으나 표결에서 부결되었다. 페루의 탄핵제도가 상대적으로 단순한 탓도 있다. 탄핵소추권과 심판권이 모두 의회에 주어져 있고 탄핵 사유도... -
한국이 만든 가난
에펠탑 사진을 찍기에 좋은 명소로 알려진 프랑스 파리의 트로카데로 광장 한쪽에는 ‘절대빈곤 퇴치 운동 기념비’가 있다. 1987년 10월17일 이곳에 운집한 10만명이 빈곤은 단지 결핍의 문제가 아니라 인간 권리의 침해임을 선언하며 기념비 제막식을 열었다. 5년이 지난 1992년, 유엔은 이날을 ‘빈곤 퇴치의 날’로 정했다.역사상 가장 풍요로운 시대를 갱신하며 살고 있지만 빈곤과 불평등은 해결되지 않았다. 성장이 모두의 풍요를 가져올 것이라는 약속은 깨진 지 오래고, 불평등의 골은 오히려 깊어지고 있다. 한국 역시 마찬가지다. 전후 극심한 빈곤을 겪던 나라에서 세계 10위권의 경제 대국으로 성장했지만, 외환위기 등과 같은 경제위기가 없더라도 약 15% 내외의 빈곤을 꾸준히 발생시키는 사회가 되었다. 최상위 1%가 전체 소득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2007년 8.4%에서 2021년 11.7%로 증가했고, 상위 20%와 하위 20%의 부동산 자산 배율은 2011년 77배에서 ... -
화려한 별들 사이에서 당연해진 착취와 도태
지난달, ‘국회에 간 아이돌, K팝의 성공 뒤에 가려진 아동·청소년의 노동과 인권’이라는 제목의 토론회가 열렸다. 방송국이나 스튜디오가 아닌 국회에서, 전직 아이돌들이 직접 토론자로 나서 발언하는 이색적인 장면이 연출되었다. 연습생 시절부터 지속되어 온 생활고, 인권 침해, 교육 부재, 임금 착취 등 그동안 화려한 무대 뒤에 감춰졌던 K팝 산업의 어두운 이면이 공개적으로 다뤄졌다.연습생 및 신인 아이돌의 권리 침해 문제가 지적된 것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K팝의 세계적 성공 이후, 아이돌 육성 시스템에 대한 관심은 높아졌다. 지난해에는 스페인 언론 ‘엘파이스’가 K팝의 비인간적인 시스템을 언급하며 방탄소년단 멤버 RM에게 질문했을 때, 그의 답변이 화제 및 논란이 되기도 했다. 팬들조차 현 시스템이 아이돌을 꿈꾸는 청소년들에게 가혹하다는 점을 인식하고 있지만, 명확한 기준, 제도 등이 미비하다 보니 뜬구름 잡는 논쟁으로 끝나버리곤 했다.K팝 산업에서 아동·청소년들이 ... -
먹고사는 문제? 죽고사는 문제!
성소수자, 여성 단체에서 활발하게 활동해온 트랜스젠더 활동가의 부고 소식이 전해졌다. 공개적인 자리에서 고 변희수 하사를 위해 추모 발언을 하거나 트랜스젠더 자조 모임에서 자기 삶을 적극적으로 이야기하던 모습을 종종 봐왔기 때문에 그녀의 선택이 안타깝기 그지없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곤 누구보다 치열하게 살았을 삶을 위로하고, 평등한 세상에서 안식을 취할 수 있길 바라는 마음을 전하는 것뿐이었다.그녀의 공식 추모행사가 있기 하루 전 10월2일,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한국교회총연합(한교총)에 방문했다. 이 자리에서 차별금지법 입법을 막아달라는 한교총 대표의 요구에 ‘먹고사는 문제’를 우선 해결하는 것이 급선무고, 이것이 정치의 근본이라고 하였다. 그리고 ‘충분히 성숙한 다음에’, ‘사회적 대화를 하고 나서’ 차별금지법을 논의해볼 수 있겠다는 취지의 발언을 했다. 두 사람의 대화가 사람의 존재를 부정하고 성소수자를 사회구성원으로 인정하지 않고 있는 것 같아 분노를 느꼈다... -
‘2016년 광장’의 교훈
대통령이 몹시 수상하니 2016년이 자연스럽게 떠오른다. 친박의 농단, 옥새 파동으로 4·13 총선에서 새누리당은 참패한다. 조선일보는 “여당이 연정·합당 등을 통해 정치판을 통째로 흔들거나 모든 것을 내주겠다는 각오라도 하지 않으면 현재 국면을 풀어내기 어렵다는 점은 자명하다”(4월21일자 사설)며 위기의 신호를 울린다.그러나 변화는 없었고 친박계와 비박계 간 갈등은 더 첨예해진다. 조선일보를 비롯한 보수세력은 친박을 도려내어 진영 재편을 시도했으나 실패한다. 표적은 청와대(우병우 민정수석)로 확장된다. 이후 흐름은 우리가 잘 알듯, 국정농단과 측근 비리가 연이어 폭로되었고 분노한 수많은 시민은 광장으로 향했다.보수언론만큼이나 여야 정치권 모두 이 국면을 관리하고자 했다. 당시 문재인은 ‘명예로운 퇴진’을 주장했고, 우상호는 원내대표로서 ‘질서 있는 퇴진’(권한이양과 거국내각 후 대선)을 내놓는다. 11월12일 광장에 처음으로 100만명의 시민들이 모인다. 다음날 비... -
공공장소 ‘홈리스 강제 퇴거’를 멈춰라
공공역사는 열악하거나 불안정한 거처 혹은 거처를 소실한 이들에게 한뎃잠이라도 보장하는 오래된 대안이었지만 2011년 이래 서울역조차 밤마다 문을 걸어 잠근다. 지난해 서울역에는 또 다른 위협도 등장했다. 지하보도에서 홈리스를 내쫓는 민간 경비용역이다. 서울역 맞은편 서울스퀘어와 연결된 지하보도까지 서울스퀘어의 경비원들이 나와 ‘서울스퀘어 영업종료시간(22시)까지 눕지 말라’거나 이를 거부하면 물리력을 행사하기도 했다. 서울 중구청이 관리 권한을 가지고 있는 공간에서 일어난 사적 제재다. 지난 9월12일 토론회에서 서울시가 이를 막겠다고 하였으니 지켜볼 일이지만, 문제는 이를 서울스퀘어의 우발적 행동이라고 치부하기 어렵다는 점이다.홈리스행동의 조사에 따르면 거리홈리스를 내쫓는 ‘손’이 달라지고 있다. 2011년에는 퇴거행위의 주체가 경찰, 철도경찰인 경우가 54.5%, 민간 경비원은 27.2%였으나 2024년 현재 경찰과 철도경찰은 7.4%인 반면, 민간 경비원의 비중은 77.... -
어떤 동네에 산다는 이유만으로
서울의 여러 주택가를 지나다보면 ‘신속통합기획’이라는 서울시 재개발 사업 지역 선정을 축하하는 플래카드를 자주 볼 수 있다. 그러나 지역 토지주들의 기대와 달리, 2년 가까이 흐르는 동안 재개발 사업은 크게 진전되진 못했다. 코로나19 팬데믹과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급등한 건축 자재 비용과 지속적인 부동산 시장의 경직 상태가 개발 사업의 발목을 잡고 있다. 막대한 수익률을 요구하는 디벨로퍼 업계의 관행도 여전히 문제다. 과거 재개발 붐의 영광만을 기대하는 사람들이 만족할 만한 조건은 당분간 기대하기 어려울 듯하다.어차피 세입자로 살며 떠도는 사람들에게 재개발이 돈이 되는지 따위는 다른 세계 이야기이다. 다만 대규모 개발이라는 신기루로 인해, 자신이 거주하는 동네가 낡고 불편하며 위험하게 방치되는 것은 일상에 치명적인 문제를 야기한다. 다세대, 다가구 주택이 밀집한 저층주거지의 노후화는 이미 심각한 상황이다. 생활의 불편함은 물론 반지하 침수 등 재난 상황에 특히 취약하... -
진짜 ‘자격’이 없는 사람이 누구인가
지난 8월29일 대법원 선고로 인해 조희연 서울시교육감이 해직 교사를 복직시켰다는 이유만으로 교육감직을 잃었다. 학생인권조례를 지키기 위해 노력했던 조 교육감의 활동을 익히 알고 있고, 학생인권법 제정이라는 중요한 과제 또한 남아 있는 상황이라 그의 공백이 아쉽고, 앞으로 교육 현장이 어떻게 바뀔지 걱정부터 앞선다.그가 지난 10년 동안 교육감으로서 임무를 수행했기에 평가가 모두 같을 수는 없을 것이다. 다만 2014년 성소수자 인권단체들과 업무협약을 맺고 성소수자 학생의 인권 보장을 위해 새로운 전환점을 만들겠다고 약속한 최초의 교육감이었다는 사실을 잊지 않고 있다. 또한 학생인권조례가 ‘동성애를 조장한다’ 등의 말도 안 되는 주장으로 공격받을 때마다 차별금지 원칙이 성소수자 학생에게도 동등하게 적용되어야 한다며, 때로 본인이 직접 나서 인터뷰하는 등 학생 인권을 적극 방어하고자 하는 모습을 보였다.2021년 ‘제2기 학생인권기본계획’을 발표할 당시 ‘성소수자 학생의... -
‘포퓰리즘 정치’를 넘어서
귀를 의심했다. 반국가세력이 곳곳에서 암약하고 있다니. 처음 듣는 얘기는 아니었다. 작년 6월 자유총연맹 창립 기념식에서 대통령은 반국가세력에 대해 더 구체적으로 말한 바 있다. 반국가세력은 왜곡된 역사의식, 무책임한 국가관을 지니고 유엔사 해체와 종전선언을 주장하는 사람이라 했다. 작년 광복절에도 공산전체주의를 맹종하는 반국가세력이 민주주의 운동가, 인권운동가 등으로 위장하여 공작을 일삼는다고 했다. 대통령의 말은 너무도 쉽게 어떤 이들을 국민이 아닌 자, 우리 사회의 적으로 만들었다.30%를 못 넘는 지지율을 공안정국으로 돌파하려는 시도로만 볼 수 있을까. 다른 한편에선 거대한 세계관이 충돌하듯 ‘역사전쟁’이 벌어지고 있다. 서로를 향한 돌팔매질을 보고 있노라면 사회가 뒤로 움직이는 장면을 실시간으로 보는 것 같다. 한 진영의 눈에 윤석열 정부는 미국에 굴종하고 일본에 나라를 팔아먹는 토착왜구고, 다른 진영의 눈에 더불어민주당은 자유 대한민국을 중국과 북한에 넘기려는 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