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문의 위기, 인간다움의 위기

김월회 서울대 중어중문학과 교수
[김월회의 행로난] 학문의 위기, 인간다움의 위기

인문학은 인문과 분명하게 다르다. 물론 공통점도 있다. 그렇다고 그 둘이 같다고 할 수는 없다. 인공지능(AI)과 인간 사이에 공통점이 있다고 하여 그 둘을 같다고 할 수 없음과 같은 이치다.

인문은 인간의 무늬라는 뜻이다. 여기서 인간은 다른 존재와 확연하게 구분되는 존재로서의 인간을 가리킨다. 인간다움을 갖춘 인간을 뜻한다. 따라서 인문은 인간다움의 무늬이고, 핵심은 인간다움이다. 인문학은 이러한 인간다움이 공부 대상인 학문이다.

그러다 인문학이 사회과학·자연과학 등과 같은 분과학문의 하나로 축소되면서 우리가 알고 있는 인문학은 인간다움 전반을 다루지 않고 소위 ‘순수학문’에 속한다는 것을 주로 다룬다. 그래서 오늘날의 인문학은 인문과 사뭇 다르다. 인간다움에는 순수학문의 공부 대상, 이를테면 권력이나 금력(金力), 장수로 대변되는 세속적 가치와는 거리를 둔 지향도 들어 있지만, 실은 사회과학이나 자연과학, 공학 등도 엄연히 인간다움의 구현이라는 점에서 그 소산 또한 인문에 속하기 때문이다.

근자에도 인문학 위기론이 여기저기서 들려온다. 필자 또한 인문학자이지만 위기론이 처음 제기된 한 세대쯤 전이나 지금이나 그다지 동의하지는 않는다. 위기에 처한 것은 인문이지 인문학이 아니라고 여겼기 때문이다. 한 세대쯤 전인 지난 세기 1990년대는 전 지구화, 신자유주의 등의 물결이 우리를 본격적으로 삼키기 시작한 시절이었다. 이후 30년 가까이 그러한 물결은 날로 거세졌고, 디지털 대전환 등이 가세하면서 사회는 날로 금력 추구에 휩싸였다. ‘기-승-전-쩐(錢)’의 풍조가 기세를 더해갔고 즉시적으로 별 도움 안 된다는 이유로 인간다움의 가치는 뒷전으로 밀렸다.

학문도 마찬가지다. 지식기반사회가 꾸준히 진척됨에도 학문과 그 기반인 앎의 가치는 갈수록 하락하고 있다. 인문학 위기론에 이어 언제부터인가 사회과학의 위기니 기초과학의 위기 같은 목소리가 솟구치고 있다. 지역대학의 위기도 심화 일로에 처해 있다.

하여 위기가 있다면 그건 학문 전반의 위기가 있을 따름이다. 이를 인문학의 위기로 축소하는 건 타당치 못하다. 인문학 위기론이 학문의 위기, 나아가 인문 곧 인간다움의 위기를 은폐하고 왜곡하고 있기에 그러하다.


Today`s HOT
UCLA 캠퍼스 쓰레기 치우는 인부들 호주 시드니 대학교 이-팔 맞불 시위 갱단 무법천지 아이티, 집 떠나는 주민들 폭우로 주민 대피령 내려진 텍사스주
불타는 해리포터 성 해리슨 튤립 축제
체감 50도, 필리핀 덮친 폭염 올림픽 앞둔 프랑스 노동절 시위
인도 카사라, 마른땅 위 우물 마드리드에서 열린 국제 노동자의 날 집회 경찰과 충돌한 이스탄불 노동절 집회 시위대 케냐 유명 사파리 관광지 폭우로 침수
경향신문 회원을 위한 서비스입니다

경향신문 회원이 되시면 다양하고 풍부한 콘텐츠를 즐기실 수 있습니다.

  • 퀴즈
    풀기
  • 뉴스플리
  • 기사
    응원하기
  • 인스피아
    전문읽기
  • 회원
    혜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