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창작물을 만들어야 사람들이 읽어줄까? 갈수록 책도 글도 읽지 않는 요즘 시대에 말이다.
26초. “시선 추적 연구에 따르면, 우리는 하나의 콘텐츠를 읽는 데에 평균 26초를 쓴다”고 한다. 새로 출간된 책 <스마트 브레비티>에 나오는 말이다. “26초 이후의 글? 낭비다.” 그렇다면 어떻게 글을 써야 할까? “그냥 요점만 이야기하는 것이다. 그러곤 멈춰라.”
창작물도 그래야 할까? 지은이들은 아니라고 말한다. “(소설이며 시며) 우리는 여전히 좋은 책을 읽고 <대부>를 봐야 한다.” 하지만 나는 안심이 안 된다. 창작물도 변화에 맞춰야 할 터이다. 창작자에게 주어진 시간 역시 26초 안팎. “몇 초 뒤면 다른 이메일, 웹 사이트, 알림에 독자를 빼앗긴다.”
그런데 <스마트 브레비티> 한국어판이 나온 바로 그날, <도둑맞은 집중력> 한국어판도 출간되었다. 집중하기 어려운 시대, 두 책은 같은 문제를 지적한다. 출간일자가 2023년 4월28일로 똑같다. 우연일까? 아닐 것이다. 세상이 변하는 방향에 대해, 우리 시대 사람들이 느끼는 바가 다들 비슷하다는 의미리라.
해법은 언뜻 보면 반대 같다. <스마트 브레비티>는 세상 사람들이 집중력을 잃었으니, 그 현실에 맞춰줘야 한다고 말한다. 개별 창작자가 살아남는 방법을 일러준달까.
<도둑맞은 집중력>은 세상을 바꾸자고 말한다. “우리가 할 일은 뻔하다. 속도를 늦추고, 한 번에 한 가지 일만 하고, 잠을 더 자면 된다.” 그런데 하지 못한다. 개인 탓이 아니란다. 우리가 그렇게 하지 못하도록 현대 사회가 방해하기 때문이다. 눈길을 끄는 지적이다.
지은이 요한 하리는 지금 세상이 불행하다고 본다. 이 책은 집중력과 행복을 같은 뜻으로 사용한다. 미하이 칙센트미하이가 쓴 몰입에 대한 책을 읽어본 분이라면 맥락을 쉽게 이해할 것이다. 좋아하는 일에 집중할 때 인간이 행복을 느낀다고 칙센트미하이는 썼다(미리 읽지 않아도 괜찮다. <도둑맞은 집중력>에 칙센트미하이에 대해 설명이 잘되어 있다).
그렇다면 두 책은 입장이 정반대일까? 그렇지 않다고 나는 생각한다. 세상이 변해야 개인도 살기 좋아진다는 <도둑맞은 집중력>의 주장에, 나도 동의한다. 그렇다고 나 같은 개별 창작자가, 읽히지 않을 창작물을 내놓을 수는 없다. “아무도 자신의 노래를 듣고 있지 않다는 사실을 알게 된 성공한 가수의 심정을 상상해 보라.” 지금 같은 때 창작자라는 직업을 유지하려면 <스마트 브레비티>의 조언을 따라야겠다고 나는 마음먹는다. 폼 나는 일은 아니지만 말이다. ‘죄수의 딜레마’도 떠오르고.
이런 생각도 든다. 세상을 바꾸려면 사람들을 설득해야 하는데, 설득을 잘하려면 친절하게 말을 걸어야 한다(그러고 보니 내가 만화를 시작한 이유도 이것이었다).
<스마트 브레비티>에서 제안하는 짧은 호흡으로 글쓰기가, 요즘 시대의 친절한 말걸기 방법일 터이다. 역설이다. 짧은 호흡으로 달려가는 세상이 잘못되었다는 사실을 짧은 호흡의 글로 알려야 하다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