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독주가 불안하다

김학균 신영증권 리서치센터장
[김학균의 쓰고 달콤한 경제] 미국의 독주가 불안하다

지난주에 미국 뉴욕 출장을 다녀왔다. 식당을 이용할 때 냈던 팁이 인상적이었는데, 점심은 식사값의 최소 15%, 저녁은 20% 안팎 팁을 줘야 했다. 달러 대비 약해진 원화 가치까지 더해지면서 뉴욕의 체감물가는 너무 높았다. 인플레이션을 제대로 경험했던 셈이다.

인플레이션은 궁극적으로 사람의 ‘몸값’에 다름 아니다. 생활비가 높아지며 임금이 따라 상승하고 물가가 다시 올라가는 ‘나선 구조’가 만들어지면서 인플레이션은 고착화된다.

최근 미국 노동자들의 임금 인상 요구도 인플레이션에 대응하기 위한 자구책인 셈이다. GM과 포드 등이 속한 전미자동차노조(UAW)는 40%대의 임금 인상을 요구하면서 파업에 들어갔다. 월마트에 이어 미국에서 두 번째로 많은 노동자를 고용하고 있는 아마존도 창고관리와 운송 노동자의 평균 임금을 인상한 데 이어, 일부 직원에 대해서는 특별 보너스 지급을 계획하고 있다고 밝혔다.

기업 입장에서 임금은 매우 경직적인 비용이다. 한 번 올려주면 줄이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당연히 제품 가격을 올려서 마진을 유지하려고 하는데, 이 과정에서 앞서 언급한 임금과 물가 상승의 순환 구조가 만들어진다. 임금 경직성을 감안하면 궁극적으로 물가 상승분을 임금 인상으로 만회하기 힘든 경우가 대부분이라, 결국은 지출을 줄일 수밖에 없고 경기는 둔화되곤 한다. 대부분은 경기 침체라는 대가를 지불해야 인플레이션을 잡을 수 있다. 비슷한 맥락에서 중앙은행의 기준금리 인상 역시 수요를 희생해 인플레이션 억제를 도모하는 행위다.

미국과 다른 국가 불균형의 딜레마

요즘 글로벌 경제가 직면하고 있는 딜레마는 탄탄한 미국 경제와 미국을 못 따라가는 다른 국가들 사이 불균형이다. 이번주 열린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에서는 미국 경제가 여전히 탄탄하다고 평가했다. 미국의 경제활동에 대해 지난 7월 FOMC 성명에선 ‘온건하다(moderate)’고 진단했지만, 이번에는 ‘견조하다(solid)’는 표현으로 바뀌었다. 어찌 보면 놀라운 일이다. 연방준비제도(Fed·연준)가 미국 기준금리를 지난해 3월 이후 0~0.25%에서 5.25~5.5%까지 높였지만, 경제 성장이 꺾이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해 미국의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은 2.1%에 달했고, 올해 전망치는 2.0%이다. 1.8% 안팎으로 추정되는 잠재 성장률을 웃도는 성적이다.

미국과 미국 이외 지역의 불균형이 문제인 것은 다른 대부분 국가는 미국만큼 성장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긴축적 금융환경이 만들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당장 우리나라가 그렇다. 한국의 올해 GDP 성장률 전망치는 시장 컨센서스 기준 1.2%이다. 정부 추정치는 1.4%이지만 부진한 성장률이라는 해석이 바뀌지는 않는다. 잠재 성장률 추정치 2.0%를 크게 밑도는 것은 물론 1%대 성장은 1960년대 경제개발 본격화 이후 역대 다섯 번째로 낮은 성장률이기 때문이다. 경기만 고려한다면 한국은행은 기준금리 인하도 고려해봄 직하지만 미국보다 금리가 많이 낮은 요즘과 같은 상황에서 선제적으로 금융완화 정책을 쓰기는 어렵다.

공격적인 긴축에도 미국 경제 성장세가 꺾이지 않다 보니 미국 시장금리가 빠르게 상승하고 있다. 미국 국채 10년물과 2년물 금리는 이번주 2007년 이후 최고치까지 높아졌고, 달러 가치도 강해지고 있다. 미국 금리 상승과 강달러는 글로벌 금융환경을 긴축적으로 만들어, 미국만큼 경기가 좋지 못한 국가에 더 큰 부담을 주게 된다.

미국 경기가 둔화되면 그로부터 걱정거리가 또 생기겠지만, 글로벌 경제 전반의 균형이라는 관점에서는 미국 경기의 완만한 둔화가 가져올 긍정적 효과가 더 큰 게 아닌가 싶다. 미국 금리가 상승하고 달러가 더 강해지면 취약한 미국 밖의 국가들에서 큰 위기가 발생할 수 있다. 1980년대 초 미국의 긴축 이후 라틴아메리카 국가들에서 도미노처럼 나타났던 채무불이행(디폴트) 사태와 1994년 긴축 이후 태국과 한국을 거쳐 러시아까지 확대됐던 외환위기 등 사례처럼 말이다.

바이든 정부 과욕이 불균형 키워

조 바이든 행정부의 과욕이 불균형을 키우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최근 1년 미국의 재정수지 적자는 2조1000억달러에 달한다. 2022년 명목 GDP의 7.8%에 이르는 막대한 규모다. 2020년 코로나19 팬데믹 직후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국면 다음으로 높은 재정적자 비율이다. 경기가 나쁘면 정부의 재정지출 확대가 용인될 수 있지만, 지난 1년 미국 경제는 이와 거리가 멀었다. 실업률은 완전고용 수준까지 하락했고 민간투자도 활기를 띠고 있었다. 민간 경제활동이 활발히 이뤄지고 있는 가운데 나타난 미국 정부의 과도한 재정지출은 타오르는 불에 기름을 부은 격이었고, 연준의 금리 인상 효과를 결정적으로 반감시키기도 했다. 재정지출 확대에 따른 수요 증가가 금리 인상 효과를 상쇄해 인플레이션을 충분히 억제하지 못했던 것이다.

미국 정부의 재정 폭주가 진정되지 않으면 인플레이션 압력은 높게 나타날 것이다. 물론 연준은 추가적인 금리 인상에는 매우 신중한 태도를 보일 것이다. 고금리 부작용이 지방은행 위기와 부동산 경기 둔화 등으로 이미 가시화되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 기준금리 인상은 지난 7월을 마지막으로 이미 끝났거나, 추가 1회 정도에 그칠 가능성이 높다. 다만 높은 인플레이션 압력이 지속되는 한 금리를 쉽게 인하하지는 못할 것으로 보인다.

금리가 현 수준에서 유지되는 것만으로도 취약한 경제 주체들에게는 큰 부담으로 작용할 것이다. 과거 심각한 금융위기는 금리 인상 국면보다 긴축 사이클이 종결된 이후 불거지곤 했다. 리먼브러더스 파산으로 대표되는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가 그랬다.

2004년 6월에 시작됐던 연준의 금리 인상은 2006년 6월에 끝났지만, 서브프라임 모기지(비우량 주택담보대출) 사태가 이슈로 등장한 시기는 2007년 8월부터였다. 미국의 과도한 재정지출과 여기서 비롯되는 고금리, 강달러는 글로벌 경제의 불안정성을 높일 것으로 보인다.

김학균 신영증권 리서치센터장

김학균 신영증권 리서치센터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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