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앞뒤 안 맞는 방만경영 타령 그만 멈춰라

정세은 충남대 경제학과 교수

최근 전기요금의 연료비 조정단가 인상을 두고 추경호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한전을 호되게 질타한 적이 있었다. 한전 적자의 누적 원인이 ‘방만경영’에 있다고 분석한 것이다. 추 장관은 “공공기관 파티는 끝났다”라며 뼈아픈 자성과 고강도 자구책 마련을 요구했다.

정세은 충남대 경제학과 교수

정세은 충남대 경제학과 교수

그런데 사정을 조금만 들여다보면, 기재부의 이런 진단은 핵심을 벗어난 유체이탈 화법처럼 들린다. 국제연료비의 이례적 폭등에도 불구하고, 물가인상을 이유로 전기요금을 원가 이하로 동결해온 당사자가 기재부 자신이기 때문이다.

재무흐름을 살펴보기만 해도, 한전 적자의 핵심 원인이 내부적인 방만경영에 있지 않다는 게 명확해진다. 외부의 연료비 급등과 왜곡된 전기요금 구조에서 이유를 찾아야 한다. 실제로 우리나라 전기요금은 최소한의 물가상승률마저 반영하지 못한 채 9년째 동결되어 왔다. 문재인 정부가 ‘연료비 연동제’를 지난해 도입하긴 했지만, 실제로는 유명무실했다. 심지어 최근에 한전은 전기를 200원에 사서 100원에 팔기도 했다. ‘팔수록 적자’라는 하소연은 여기서 나온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새 정부가 전기위원회를 독립기구로 격상해 전기요금을 정치로부터 독립시키겠다고 발표했을 때 기대가 컸다. 하지만 지금은 그만큼 실망만 커졌을 뿐이다. 우리나라의 전기요금은 미국, 일본, 프랑스 등 해외 주요국과 달리 가격신호 기능을 발휘하지 못하며, 정치에 휘둘리고 있다.

정부가 한전을 방만경영이라고 진단한 근거 중 하나가 지난 5년간 공공기관의 부채가 크게 늘었다는 점이다. 그런데 이는 ‘탄소중립’이라는 시대적·국가적 중요과제가 한전에 주어졌고, 빨라지는 전기화에 따른 미래 전력수요를 감당하기 위해 필수 투자를 집행했기 때문이다. 이러한 구체적 원인과 결과를 따지지 않고 ‘부채확대는 무조건 방만경영’이라고 단순화하면 반도체, 모빌리티, 바이오 등 혁신사업 분야에서 국내 주요 대기업들이 추진하는 선제적 투자가 모두 동일한 비판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게다가 한전은 기재부의 관리와 감독을 받는 조직이다. 만약 한전이 실제로 방만경영을 했다면, 그걸 방치한 기재부에도 책임이 있다. 매년 공기업 경영평가를 실시해 온 기재부가 그동안 한전을 방만경영으로 진단 내리지 않았던 것은, 외환위기 이후 한전을 비롯한 공기업들이 강도 높은 구조조정을 지속해온 것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공기업은 모든 면에서 정부의 철저한 통제를 받는다. 그런데 정권이 바뀌었다고, 자신의 관리감독을 성실하게 받아온 실행기관인 한전에 기재부가 모든 책임을 떠밀고 있다. 이러한 행태는 윤석열 정부의 소중한 가치인 ‘공정과 상식’, 그리고 ‘반지성주의 혁파’ 그 어느 것에도 부합하지 못한다. 이걸 모를 리 없는 새 정부가 ‘한전 때리기’에만 골몰하면, 다른 의도를 의심받게 될지도 모른다. 전기요금 인상 백지화 공약철회에 대한 정치적 부담을 줄여보거나 공기업 민영화를 단행하려 한다는 음모론이 나오는 이유다.

지금은 앞뒤가 안 맞는 방만경영 타령을 그만 멈추고, 통계와 과학에 근거한 정확한 분석을 다시 꼼꼼히 해볼 때다. 진단이 먼저 확실해야 처방도 잘할 수 있는 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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