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월급통장으로 바라본 수질오염 총량관리제

임상준 환경부 차관

월급날은 우리 직장인들의 성실한 근로에 대한 보상의 날이지만 걱정이 앞서는 날이기도 하다. 교육비·주거비 등 생활비가 고정지출로 순식간에 빠져나가고, 빠듯한 잔액으로는 가족과 함께할 여행이나 취미에 대한 지출이 언감생심처럼 느껴진다. 자녀의 대학 진학 등 새로운 지출처라도 생기면 더 큰 걱정이다. 정해진 월급 총액 안에서 다른 소비를 줄여야만 새로운 지출을 감당할 수 있다.

우리가 매달 하는 이러한 고민과 비슷한 환경제도가 있다. ‘수질오염 총량관리제’다. 국민들께 깨끗한 물을 공급해 드리기 위해서, 하천마다 달성하고자 하는 수질목표를 정하고 이에 따라 배출할 수 있는 오염물질의 허용 총량이 정해지는 제도다.

우리나라는 1960~1980년대 산업화로 고도성장을 이루었지만, 그 과정에서 1990년대 낙동강 페놀 사고로 대표되는 수질사고를 여러 차례 겪었다. 이후 2004년 낙동강을 시작으로 주요 하천에 수질오염 총량제가 도입되었다. ‘개발이냐 보전이냐’라는 이분법적인 규제 방식에서 객관적 데이터에 기반한 ‘사전예방’으로 수질정책의 큰 전환이 이루어진 셈이다. 수질오염 총량제는 환경에 투자한 만큼 개발이 가능해지는 유연한 제도로 자리 잡았다.

각각의 하천에 허용된 오염 총량은 우리네 월급만큼이나 팍팍한 상황이다. 기존의 공장과 시설에서 나오는 오염량이 많기 때문에 새 공장을 짓는다든지 지역개발사업을 하려면 여유가 많지 않다. 결국 어디에선가 소비를 줄이든가 아니면 새로운 환경투자를 통해 오염물질의 배출을 최소화해야만 총량 기준을 지킬 수 있다.

총량제는 첨단산업단지가 새로 만들어지는 과정에서 큰 역할을 했다. 최근의 용인 첨단반도체 클러스터 국가산단과 아산 디스플레이 산단은 이미 지역의 오염 총량 여유가 부족한 상태였다. 하지만 최신 기술을 통한 오염저감시설을 설치해 배출되는 방류수를 기존의 하천 수질보다도 깨끗하게 처리함으로써 산단 조성이 가능해졌다.

수질오염 총량관리제가 시행된 이후 20년이 지났다. 그간 수많은 개발사업이 일어났지만, 제도 시행 전과 대비해 오염물질 배출량은 절반 수준으로 줄었고 수질 또한 1~2등급(좋음) 하천 비율이 84.3%까지 증가했다.

숙제도 남아 있다. 그동안의 총량제는 일차적으로 관리가 쉽고 측정이 가능한 대규모 공공시설과 산단들을 대상으로 삼았고 이들은 제도의 틀 안에서 안정적으로 관리되고 있다. 다만 ‘가랑비에 옷 젖는지 모른다’는 말처럼 누적되는 작은 오염원들도 관리가 필요하다. 가축분뇨·개인하수처리시설 등 비교적 규모가 작고 숫자가 많아 실질적으로 제도 적용이 어려운 민간시설에 대한 고민을 함께 풀어가야 한다.

오염원은 적을수록 좋겠지만 규제를 새로 만드는 일은 고려할 변수가 많다. 소규모 시설들의 현실적 처리능력을 살펴야 하고, 행정의 집행 가능성도 고려해야 한다. 우선순위는 ‘과학’이다. 월급이 늘어나면 지출도 풍요로워질 수 있다. 과학기술의 뒷받침으로 첨단의 환경기법이 만들어지면 그만큼 여유량은 커진다. 정부는 인공지능(AI), 실시간 자동측정, 첨단의 오염물질 제거기술 등 과학기술과 데이터에 기반해 오염 관리를 지원하면서 제도를 합리적으로 보완해 나가고자 한다.

임상준 환경부 차관

임상준 환경부 차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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