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청소노동도 모자라 건물이름 영어 시험으로 압박한 서울대

서울대학교 청소노동자 이모씨(59)가 지난달 26일 자신이 일하던 학생 기숙사 내 휴게실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2019년 8월 폭염 속에 60대 청소노동자가 휴식 중 사망한 지 2년 만에 유사한 사건이 재발한 것이다. 청소노동자들이 인격모독적 갑질에 시달렸다는 주장까지 나왔다. 업무 과중에 갑질이 겹쳐 노동자가 사망했다니 서울대에서 일어난 일이라곤 믿기지 않는다. 서울대 측은 진상을 철저히 밝혀야 한다.

유족에 따르면 이씨는 평소 늘어난 업무 강도와 시험에 대한 피로를 호소했다고 한다. 이씨는 기숙사에서 청소를 담당했는데 코로나19 이후 청소 일이 부쩍 늘었다는 것이다. 그런데도 인원 증원이나 휴식 보장 등 노동 환경 개선이 이뤄지지 않았다. 이씨 등 청소노동자들이 겪은 고통은 이뿐이 아니었다. 지난달 1일 기숙사 안전관리팀장이 새로 부임한 이후 모욕적인 갑질을 당했다고 한다. 직무교육이라는 이유로 필기시험을 3차례 치러야 했는데 청소 업무와 무관한 내용이었다. 건물 준공 연도와 건물 내 학생 수를 묻는가 하면 “관악학생생활관(기숙사)을 영어나 한자로 쓰라”고까지 했다. 시험 후에는 공개석상에서 점수를 발표해 망신까지 주었다. 이 팀장은 또 매주 회의를 소집해 “남성은 정장 또는 남방에 멋진 구두, 여성은 최대한 멋진 모습”으로 참석하라고 강요했다고 한다. 이씨와 동료들이 느꼈을 모욕감·압박감은 능히 짐작할 수 있다. 이씨 사인은 일단 급성 심근경색으로 나왔지만 더욱 정밀하게 조사할 필요가 있다. 갑질 피해로 인한 스트레스가 급성 심근경색 사망에 이른 주요 요인이 될 수 있다.

유감스러운 것은 이 문제를 다루는 서울대의 태도다. 서울대는 문제의 필기시험만 폐지하겠다면서 갑질 의혹 자체를 부인했다. 청소팀을 담당한 관리자 개인의 문제라는 투다. 이번 사망의 원인은 분명하다. 일은 늘었는데 쉴 시간과 공간은 마련해주지 않은 상태에서 직장 내 갑질까지 겹친 것이다. 이는 개인의 일탈로 치부하기 어렵다. 비슷한 사망 사건이 한 일터에서 2년 만에 또 발생한 것이 이를 증명한다. 이번 사건의 책임자는 열악한 노동 현실에 노동자들에게 가해지는 압박을 방치한 서울대이다. 서울대는 즉각 유족 측에 사과하고 갑질 진상을 밝힌 뒤 확고한 재발 방지 대책을 내놓아야 한다. 시민들이 서울대가 지난 2년 동안 청소노동자들을 위해 어떤 조치를 했는지 물으며 다음 조치를 지켜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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