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퇴행적 노동관·‘지역 가르기’ 시각 드러낸 윤석열

윤석열 전 검찰총장이 20일  대구 중구 서문시장을 방문 도중 지지자들에게 손을 들어 인사하고 있다. 연합뉴스

윤석열 전 검찰총장이 20일 대구 중구 서문시장을 방문 도중 지지자들에게 손을 들어 인사하고 있다. 연합뉴스

윤석열 전 검찰총장이 20일 매일경제 인터뷰에서 주 52시간제를 비판하며 “게임 하나 개발하려면 한 주에 52시간이 아니라 120시간이라도 바짝 일하고 이후에 마음껏 쉴 수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120시간은 노동자가 주 5일 동안 한숨도 자지 않고 일해야 채울 수 있다. 야권의 유력한 대선 주자가 이런 비현실적인 노동관을 가지고 있다니, 귀를 의심하게 한다.

한국의 노동시간은 지난해 기준 연간 1952시간으로, 멕시코·칠레에 이어 OECD 국가 중 세 번째로 많다. ‘과로 사회’라는 오명까지 얻을 정도인데, 윤 전 총장의 ‘주 120시간 노동’ 발언은 열악한 노동 현실에 대한 무지라고 할 수 있다. 윤 전 총장은 자신의 발언으로 논란이 일자 입장문을 내고 “근로조건의 예외를 폭넓게 인정해달라는 현장의 목소리를 그대로 전달한 것”이라고 해명했다. 하지만 인터뷰 영상을 보면 단순히 그 말을 전달한 정도가 아니다. 오도된 노동관을 드러낸 것도 모자라 허위 변명까지 하는 데 실망을 금할 수 없다.

국내에서는 매년 300명에 가까운 노동자들이 과로로 목숨을 잃고 있다. 윤 전 총장이 언급한 스타트업 청년 노동자들의 현실도 마찬가지다. 5년 전 대형 게임업체의 한 개발자가 과로로 사망했는데, 이 개발자는 한 주에 최고 95시간을 일한 것으로 드러났다. 게임업계에서는 소프트웨어 개발의 마감을 앞두고 연장·야근·휴일 근무의 ‘크런치 모드’로 일하다 과로사한 노동자가 속출했다. 이런 현실을 제대로 알고 있다면 ‘주 120시간 노동’을 쉽게 입에 올릴 수는 없었을 것이다.

윤 전 총장은 또 인터뷰에서 “법인의 잘못에 대해 최고경영자 등을 처벌하기보다는 법인에 벌금을 물리는 방향으로 형사법 개정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미국의 사례를 들며 우리도 그렇게 하자고 했다. 하지만 미국에는 이사회 결정을 휘두르는 국내의 재벌과 같은 존재가 없다. 윤 전 총장은 검찰총장 시절 공정과 법치를 내세우며 재벌 수사를 지휘한 바 있다. 재벌 오너의 법적 책임을 묻지 말자는 주장이 이런 과거 행동과 어떻게 부합하는지 의아하다.

윤 전 총장은 이날 대구를 방문해 “(코로나19) 초기 확산이 대구 아닌 다른 지역이었으면 민란부터 일어났을 것”이라는 말도 했다. 대구를 다른 지역과 분리하는 위험한 발언이다. 정치에 갓 입문한 윤 전 총장이라고 해도 너무나 준비되지 않았음을 드러내고 있다. ‘주 120시간 노동’과 ‘법인 처벌 형사법 개정’ ‘민란’ 등의 발언은 대선 주자인 그에 대한 철저한 정책 검증이 필요함을 말해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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