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윤석열 대통령의 ‘자유’, 모두를 위한 ‘자유’ 돼야

윤석열 대통령이 10일 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 앞 잔디마당에서 열린 제20대 대통령 취임식에서 취임사를 하고 있다. 권호욱 선임기자

윤석열 대통령이 10일 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 앞 잔디마당에서 열린 제20대 대통령 취임식에서 취임사를 하고 있다. 권호욱 선임기자

윤석열 대통령이 10일 제20대 대통령 취임사에서 “이 나라를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 체제를 기반으로 국민이 진정한 주인인 나라로 재건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날 17분가량 이어진 취임사를 관통한 키워드는 ‘자유’였다. 윤 대통령은 연설에서 ‘자유’라는 말을 35회나 되풀이했다. 대내외적 난제 해결을 위해 공유해야 할 보편적 가치로 ‘자유’를 설정하고 번영과 풍요, 경제적 성장도 ‘자유의 확대’라는 개념으로 해석했다. 역대 대통령의 취임사와 달리 추상적 국정철학을 천명하는 데 집중한 취임사였다.

윤 대통령은 취임사에서 팬데믹, 공급망 재편, 기후변화, 식량·에너지 위기, 초저성장과 실업 등 위기 요소를 열거한 뒤 ‘자유의 가치에 대한 정확한 인식과 재발견’을 해법으로 제시했다. 또한 ‘자유 시민의 존엄한 삶’을 중요한 가치로 부각시켰다. 하지만 이러한 국정기조를 실현하기 위한 구체적 정책비전은 내놓지 않았다. 문재인 전 대통령은 5년 전 취임사에서 권위적 대통령 문화 청산, 권력기관 독립 및 견제장치 마련, 균형인사, 재벌개혁, 비정규직 문제 해결 등을 천명했다. 앞서 전직 대통령 박근혜씨도 취임사에서 경제부흥·국민행복·문화융성의 3대 국정운영 방향을 밝힌 바 있다. 윤 대통령이 양극화 문제의 해법으로 ‘빠른 성장’을 제시하긴 했으나, 이는 외려 양극화를 가속시킬 우려가 짙다.

또 한 가지 주목할 대목은 ‘반지성주의’에 대한 언급이다. 윤 대통령은 “정치가 민주주의 위기로 인해 제 기능을 하지 못하고 있다”며 민주주의 위기를 부른 가장 큰 원인으로 “반지성주의”를 지목했다. 그는 “집단적 갈등에 의해 진실이 왜곡되고, 각자 보고 듣고 싶은 사실만 선택하거나 다수의 힘으로 상대 의견을 억압하는 반지성주의가 민주주의를 위기에 빠뜨리고 있다”고 비판했다. ‘반지성주의’는 미국 역사학자 리처드 호프스태터가 1950년대 매카시즘 광풍을 고발한 책 <미국의 반지성주의>에서 쓴 개념이다.

윤 대통령은 취임사에서 통합·화합·소통·협치 같은 단어를 쓰지 않았다. 국회가 압도적 여소야대 상황이며, 대선 결과가 0.73%포인트 차로 갈렸음에도 외면했다. 그러면서 반지성주의라는 생경한 개념을 들고나온 것은 의미심장하다. 피아를 지성 대 반지성으로 구분하려는 진영논리가 작용한 것 아닌가.

윤 대통령은 미국 신자유주의 경제학자 밀턴 프리드먼의 저서 <선택할 자유>로부터 큰 영향을 받았다고 밝힌 바 있다. 이 책은 정부 역할 축소를 주장하며 자유방임 자본주의를 강조하는 내용이다. 윤 대통령이 취임사에서 자유를 35회나 강조한 것도 이 같은 자유론의 연장일 가능성이 있다. 윤 대통령이 상정하는 ‘자유로운 공동체’가 혹여 약자를 위한 규제가 모두 사라진 정글을 의미하는 건 아닌지 우려스럽다. 그의 ‘자유’가 약하고 가난한 이들을 포함한 모두의 자유이기를 바란다. 윤 대통령은 취임사에서 ‘통합’을 말하지 않았지만, 통합은 피할 수 없는 최고지도자의 숙명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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