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한·중 수교 30년, 내부 합의된 외교 전략 절실하다

1992년 8월24일 중국 베이징 댜오위타이(釣漁臺) 국빈관에서 당시 이상옥 외교부 장관(왼쪽)과 첸치천 중국 외교부장이 한·중 수교 문서인 ‘한·중 외교관계 수립에 관한 공동성명’에 서명하고 악수하는 모습. 경향신문 자료사진

1992년 8월24일 중국 베이징 댜오위타이(釣漁臺) 국빈관에서 당시 이상옥 외교부 장관(왼쪽)과 첸치천 중국 외교부장이 한·중 수교 문서인 ‘한·중 외교관계 수립에 관한 공동성명’에 서명하고 악수하는 모습. 경향신문 자료사진

올해는 한국과 중국이 수교한 지 30년 되는 해이다. 한국전쟁 때 서로 총을 겨눈 두 나라는 탈냉전이 한창이던 1992년 종전(終戰)이 이뤄지지 않았음에도 각자 필요에 의해 수교에 합의했다. 그로부터 한 세대가 흘렀다. 수교 기념일인 24일 각자 상대방 수도에 주재하는 대사관이 개최하는 기념식에는 박진 외교부 장관, 왕이 국무위원 겸 외교부장이 참석할 것으로 예상된다. 수교 20주년 때인 2012년 주중한국대사관 행사에 시진핑 당시 부주석이 장관급 8명과 함께 참석했던 것을 고려하면 10년의 세월이 양국 관계에 진전을 가져온 것만은 아님을 짐작할 수 있다.

수교 이후 한·중관계 30년의 역사는 크게 보면 질적으로 심화되고 양적으로 확대되는 과정이었다. 양국의 교역량은 2021년 기준 66억8000만달러를 기록해 30년 전에 비해 47배 증가했고, 상호 방문자 수는 코로나19 이전인 2019년 기준 연간 1000만명을 넘어 77배 늘어났다. 인적, 물적 교류의 증가 속도를 따라가지는 못하지만, 양국 정부 간 관계도 협력 동반자 관계(1998년), 전면적 협력 동반자 관계(2003년), 전략적 협력 동반자 관계(2008년)로 꾸준히 심화됐다.

하지만 지금 양국 관계는 중대한 변곡점을 맞고 있다. 그 현상은 최근 5년 사이 두드러지게 나타나고 있다. 한국이 2017년 미국의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사드)를 배치한 데 이어 최근에는 미국 주도로 중국을 배제하는 반도체 공급망인 ‘칩4’ 가입 의사를 밝히며 중국이 반발하고 있다. 중국은 사드 레이더가 미·중 간의 전략적 균형을 무너뜨렸다며 한국에 경제 보복을 가했다. 경제계는 칩4 가입 이후에도 중국의 보복이 있을 것이라고 우려한다. 양국 관계의 변화에는 미·중의 전략경쟁 심화라는 구조적 요인이 강하게 작용하고 있다. 중국은 전에 비해 더 커진 국력을 바탕으로 정치, 경제, 군사 등 전 분야에서 미국의 패권에 도전하며 현상 변경을 모색하고 있다. 이와 함께 한·중 양국의 경제성장 둔화, 코로나19 이후 정체된 인적교류도 한·중관계의 도전적 과제로 등장했다.

윤석열 정부는 문재인 정부 등 과거 정부들이 중국에 굴종적 태도를 보였다며 양국 관계의 기본 틀을 바꾸겠다고 밝혔다. 윤석열 정부는 역대 정부가 미·중 사이에서 전략적 모호성을 유지한 데서 탈피해 미국의 입장을 확실하게 지지하겠다는 입장이다. 그로 인해 생겨나는 한·중관계의 부담은 외교적으로 잘 수습해나가겠다는 태도이다. 하지만 이러한 원칙이 얼마나 일관되게 지켜질지, 또 이런 외교전략이 국민적 공감을 얻고 있는지는 의문이다. 한국은 초강대국이 주도하는 국제정치 질서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따라서 외교안보 정책에서 한국은 실사구시적 접근을 해야 한다. ‘이전 정부의 정책이 잘못됐다’는 식의 접근은 위험하다.

중국은 우리에게 무엇인가. 수교 30년을 계기로 중국과의 관계를 근본적으로 되돌아볼 필요가 있다. 오랜 역사를 통해 우리가 고민해온 것은 이웃인 중국과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하면서 동시에 독자성을 지켜내는 것이었다. 이런 점에 비추면 5년 임기의 정부가 대중 정책을 크게 바꾸겠다고 하는 것은 무모한 발상이다. 윤 대통령은 향후 30년 아니 그 이후를 내다본다는 관점에서 한·중관계를 펴나가야 한다. 외교의 힘도 결국은 내치에서 나온다. 내부 합의를 토대로 기초를 탄탄히 다져나가는 자세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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