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시, 이번에도, 아무도 책임지지 않을 건가. 윤석열 정권의 고질병이 되어버린 ‘무책임’ 증세가 재발했다. 국가수사본부장에 임명됐다 아들의 학교폭력 문제로 낙마한 정순신 변호사 사태와 관련해 윤석열 대통령부터 한동훈 법무부 장관, 대통령실 인사라인에 이르기까지 누구도 사과하거나 책임지는 모습을 보이지 않고 있다. 윤 대통령은 부실검증 문제는 외면한 채 학교폭력 근절대책을 내놓으라고 교육부에 지시했다. 한 장관은 “(법무부) 인사정보관리단 상관으로 정무적 책임감을 느낀다”면서도 “구조적으로 파악하기 어려운 일이었다”고 피해갔다. 대통령실은 자성하긴커녕 “문제를 깨끗하게 인정하고 시정하는 노력을 했다”며 스스로를 추켜세웠다. 후안무치(厚顔無恥)라는 표현이 이토록 잘 들어맞기도 어려울 듯하다.
‘정순신 사태’의 근원에는 ‘검찰의, 검찰에 의한, 검찰을 위한’ 고위공직자 인사구조가 도사리고 있다. 추천(복두규 인사기획관·이원모 인사비서관)-1차 검증(한 장관이 통할하는 인사정보관리단)-2차 검증(이시원 공직기강비서관)-임명(윤 대통령)까지 모두 검찰 출신인 구조에서 상호 견제나 교차 점검이 가능할 리 없다. 검찰 출신들은 행위의 실정법 위반 여부에만 초점을 두는 경향이 있어, 포괄적 검증과 정무적 판단에도 한계가 있게 마련이다. 여기에 검증 대상자가 검찰 출신이라면 더 말할 나위가 없을 것이다. 대통령실 인사라인의 문제점은 김인철 교육부 장관 후보자, 정호영·김승희 보건복지부 장관 후보자, 송옥렬 공정거래위원장 후보자 등의 낙마 사태에서 이미 드러난 바 있다. 그럼에도 인사라인은 지난해 8~9월 대대적인 대통령실 쇄신 과정에서도 살아남았다. 이쯤 되면 이들은 헌법이 창설을 금지하고 있는 ‘사회적 특수계급’ 아닌가 싶을 정도이다.
윤 대통령은 지난해 8월 취임 100일 기자회견에서 인사 문제에 대한 질문을 받고 “다시 다 되돌아보면서 철저하게 다시 챙기고 검증할 것”이라고 약속했다. 하지만 허언에 그쳤다. 이후로도 인사 난맥상은 계속됐다. 윤 대통령은 이번에도 어물쩍 넘어갈 수 있다고 여길지 모른다. 그러나 정순신 사태는 기존의 인사 실패와는 차원이 다른 ‘참사 중의 참사’다. 온 나라가 성별·세대·지역·이념 구분 없이 분노하고 있다. 판결문 검색만 해봐도 알 수 있는 학교폭력 2차 가해자를 ‘경찰 2인자’로 임명해놓고는 아무도 책임지지 않는다면, 이번 사태는 인사 실패를 넘어 정부의 실패로 기록될 것이다. 윤 대통령이 ‘검찰 가족’ 몇몇을 보호하기 위해 국민의 절망과 분노를 돋우는 일이 없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