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일 ‘과거 반성’ 호응 없는 정상회담, 윤 대통령 방일 왜 했나

윤석열 대통령이 16일 일본 도쿄 총리 관저에서 열린 한일 정상 공동 기자회견에서 보도진 질의에 답변하고 있다. 연합뉴스

윤석열 대통령이 16일 일본 도쿄 총리 관저에서 열린 한일 정상 공동 기자회견에서 보도진 질의에 답변하고 있다. 연합뉴스

윤석열 대통령과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가 16일 도쿄에서 정상회담을 가졌다. 기시다 총리는 이번 회담에서 강제동원 생존 피해자와 다수 한국인들이 만족할 만한 입장을 내놓지 않았다. 역대 내각의 역사 관련 입장을 전체적으로 계승한다는 기존 입장을 밝혔을 뿐이다. 한국이 일본에 일방적 양보를 한 뒤 이뤄진 이번 회담에서 윤 대통령이 일본으로부터 조금이라도 성의 있는 호응 조치를 이끌어낼 것이라는 일말의 기대도 물거품이 됐다. 대단히 유감스럽다.

두 정상은 회담 후 공동기자회견에서 강제동원 문제를 언급했다. 기시다 총리는 한국이 돈을 대고 일본에 면죄부를 준 이번 해법에 대해 “엄중한 상태에 있던 한·일관계를 건전한 관계로 되돌리기 위한 것으로 평가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일본 정부는 1998년 10월 한·일 공동선언(김대중·오부치 선언)을 포함한 역사 인식과 관련된 역대 내각의 입장을 전체적으로 계승하고 있다”고 했다. 역대 내각의 입장에는 ‘통절한 반성과 사죄’를 담은 김대중·오부치 선언, 무라야마 담화뿐만 아니라 ‘과거 담화를 그대로 계승하지는 않는다’는 아베 담화까지 포함된다. 기시다 총리의 말을 과거사 반성으로 받아들이기 어려운 이유다. 그는 한국 재단의 구상권 문제에 대해서는 “윤 대통령의 강력한 리더십”을 추어올린 뒤 “(한국이) 구상권을 상정하지 않고 있다고 안다”고 말했다. 윤 대통령은 “구상권이 행사된다면 모든 문제를 원위치로 돌려놓을 것이기 때문에 구상권 행사는 상정하고 있지 않다”고 말했다. 대통령실 고위관계자는 “역대 일본 정부가 50여 차례 사과한 바 있다. 그 사과를 한 번 더 받는 게 어떤 의미가 있느냐”고 말했다. 이로 보면 윤 대통령이 회담에서 강제동원 문제와 관련해 기시다 총리에게 사과를 요구조차 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피해자는 물론 많은 한국 시민들의 기대를 저버린 것이다. 오히려 윤 대통령이 ‘한국 법원 판결이 잘못됐다’며 일본에 사과한 모양새다.

12년 만의 양자 차원 정상방문에서 두 정상은 ‘과거’를 몰각한 채 ‘미래’만 얘기했다. 셔틀외교 복원, 일본의 수출규제 해제와 한국의 세계무역기구 제소 철회,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 정상화, 양국 재계의 미래파트너십선언 등 조치가 쏟아졌다. 하지만 미래를 지향한다는 이 조치들은 과거를 직시한다는 다른 한 축이 허물어진 상황에서 동력을 얻기 어렵다.

두 정상은 각자의 인도·태평양전략과 한·미·일 3자 협력 강화를 역설했다. 중국 견제를 염두에 둔 미국 기대에 부응하는 것이다. 마침 북한은 이날 대륙간탄도미사일을 시험 발사했다. 북한의 도발은 한·미·일의 대응 명분을 제공할 것이 분명하다. 한·미·일 대 북·중·러 구도 강화는 북한이 원하는 바일 수는 있지만 한국에 꼭 좋은 일은 아니다. 윤 대통령은 이번에 일본에 과거사 족쇄를 풀어줬고 미·중관계라는 어려운 환경 속에서 한층 더 균형을 잃는 쪽으로 나아가게 됐다. 모든 걸 따져봐도 득보다 실이 많다. 윤 대통령은 그 후과에 책임을 져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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