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러·중 자극에 안보도 경제도 격랑, 이것이 ‘국익 외교’인가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지난 17일(현지시간) 세르게이 쇼이구 국방장관의 보고를 받고 있다. AP연합뉴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지난 17일(현지시간) 세르게이 쇼이구 국방장관의 보고를 받고 있다. AP연합뉴스

우크라이나 무기 지원을 열어둔 윤석열 대통령 발언 파장이 커지고 있다. 러시아는 “전쟁 개입”(러시아 대통령실)이자 “공개적인 적대 행위”(외무부 대변인)라며 이틀째 반발했다. 주한 러시아대사관은 “지난 30년간 건설적으로 발전해온 러시아와 한국의 관계를 망칠 것”이라고 경고했다.

대통령실 고위관계자는 20일 “국내법에 바깥 교전국에 대해 무기 지원을 금지하는 법률 조항이 없다”며 “외교부 훈령을 봐도 어려움에 빠진 제3국에 군사지원을 못한다는 조항이 없다”고 했다. 대통령 발언이 가정에 기반한 원론적인 대답이었다고 수위조절하면서도 무기 지원 가능성을 차단하지는 않았다. 윤 대통령이 전제조건으로 거론한 대규모 민간인 공격, 대량 학살 등은 국제사회에선 이미 벌어지고 있는 현실로 본다. 한국 정부가 무기 지원 채비를 갖춘 것으로 인식될 여지가 충분한 상황인 것이다.

윤 대통령과 대통령실 발언은 한·러관계의 격랑을 몰고 올 뿐 아니라 러시아·북한의 밀착을 강화해 한반도 긴장을 높일 수 있다. 당장 푸틴 대통령의 최측근인 메드베데프 러시아 국가안보회의 부의장이 북한에 대한 최신 무기 지원 가능성을 거론한 것은 가볍게 볼 일이 아니다. 전쟁에 개입해 한쪽에 서겠다는 결정은 국가안보와 직결된 중차대한 문제다. 국민들의 광범위한 동의 없이 대통령이 독단적으로 결정해 외신 인터뷰로 던져놓을 사안이 아닌 것이다. 윤 대통령은 우크라이나 군사 지원 발언을 공식 철회해야 한다.

한국은 개방형 통상국가다. 수출과 대외교역이 주요 성장동력이니 가능한 한 어떤 국가와의 관계도 상하지 않도록 하는 것이 국익이다. 당장 러시아에 법인을 두고 있는 한국 기업만 160개가 넘는다. 2016년 사드배치로 인한 한·중 갈등으로 기업들이 막대한 피해를 입은 사실을 대통령은 염두에 두지 않는 것인가. ‘대한민국 1호 영업사원’을 자처하면서 안보는 물론 경제 리스크까지 키우는 대통령의 언행에 개탄을 금할 수 없다.

윤 대통령이 이 인터뷰에서 ‘힘에 의한 대만해협 현상 변경에 반대한다’고 한 것도 파장을 낳고 있다.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이날 “타인의 말참견을 허용하지 않는다”고 했다. 지난해 한·미 정상회담에서 대만해협의 ‘평화와 안정 유지’를 강조한 것에서 한발 더 들어가자 중국이 발끈한 것이다. 미·중 갈등, 러·우 전쟁 등 국제질서 전환기에 윤 대통령의 거친 발언이 한국의 외교 입지를 좁히고 있다. 오는 26일엔 한·미 정상회담이 열린다. 중차대한 시기 윤 대통령은 섬세한 정세관리와 실리외교에 주력하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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