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미국이 ‘한국 반도체 중국 공급 막으려 한다’는 외신은 뭔가

중국이 미국 기업 마이크론의 중국 내 반도체 판매를 금지할 경우 삼성전자, SK하이닉스 등 한국 기업이 중국 내 반도체 공급 부족분을 채우지 않게 해달라고 미국 정부가 한국 측에 요청했다고 영국 파이낸셜타임스가 24일 보도했다. 마이크론은 삼성전자, SK하이닉스와 경쟁하는 메모리 반도체 기업이다. 미국이 지난해 중국 반도체 기업 양쯔메모리테크놀로지를 제재하자 중국은 그 보복으로 마이크론의 국가안보 침해 여부를 조사 중이며, 중국 내 판매금지 조처가 내려질 가능성이 있다.

한·미 정상회담을 앞두고 나온 이 보도에 한국 정부는 ‘확인할 내용이 없다’고 했다. 보도가 사실이라면 미국이 동맹국 정부에 기업들의 대중국 사업 자제를 요구한 첫 사례가 된다. 미국이 대중견제를 위해 타국의 기업활동까지 제한하는 반시장적 요구를 한 것이 사실인지 밝혀야 한다.

미국은 그동안 군사안보 차원의 대중국 견제에 동맹국의 협조를 요구해왔지만, 경제 측면에서 동맹국 기업들의 대중국 사업 자제를 직접적으로 요구한 적은 없었다. 한국은 안보를 의존하는 미국과 주요 교역국인 중국 사이에서 양자택일하라는 압력을 받은 셈이 된다. 미국이 미·중 경제전쟁에서 한국을 ‘장기판의 말’처럼 부리겠다는 뜻을 노골적으로 드러낸 것으로 볼 수밖에 없다. 미국 정보기관의 한국 대통령실 도청 의혹도 해소되지 못한 상황에서 한국에 과도한 요구를 하는 것은 아닌지 묻고 싶다.

미국의 의도는 전방위적인 미·중 경쟁 상황에서 반도체를 이용하는 중국 첨단산업의 발전 속도를 늦추려는 데 있는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이런 발상은 근시안적이다. 중국의 관련산업이 단기적으로 타격받을 수 있지만, 같은 반도체를 사용하는 애플 등 미국 기업들도 피해를 보게 된다. 글로벌 공급망을 뒤흔드는 심각한 사태로 이어질 수 있다. 미국이 이런 수단까지 동원하며 중국과 대결해 무엇을 얻을 수 있는지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중국과의 경쟁에서 앞서고자 한다면 지금까지 미국이 해온 것처럼 기술혁신을 위한 연구·개발에 더 투자하는 것이 옳지 않은가.

방미 길에 오른 윤석열 대통령이 혹여나 미국의 이런 ‘동맹 청구서’를 받았다고 해도 요구를 들어줘선 안 된다. 윤 대통령이 대만 문제와 관련해 미국이 선호하는 표현을 사용함으로써 이미 한·중관계가 악화될 조짐을 보이고 있다. 반도체 문제는 추가 악재가 될 수 있다. 무엇보다 윤 대통령은 자국 산업 보호라는 기본 책무를 망각하지 말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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