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총리에 감사청구권 몰래 준 감사원, 독립기관 포기한 건가

감사원이 지난해 7월 훈령을 개정해 국무총리에게 공익감사청구권을 주는 규정을 새로 만든 것으로 밝혀졌다. 유병호 사무총장이 임명된 지 20일 만에 단행된 일로, 행정부가 제한 없이 감사를 청구할 수 있는 길을 열어준 것이다. 이는 헌법과 법률이 보장하는 감사원의 독립적 지위를 스스로 무너뜨린 처사다. 헌법상 ‘대통령의 명을 받아 행정 각부를 통할하는’ 총리가 감사원을 동원해 공공기관·공무원 등에 대한 표적 감사를 벌일 수 있도록 했기 때문이다. 총리의 감사청구권을 내부 명령인 훈령으로 규정한 것도 위법 소지가 많다. 감사원 독립성을 훼손하는 훈령 개정을 공론화 없이 은밀히 처리했다니 믿어지지 않을 정도다. 제도까지 만들어 ‘윤석열 정부의 돌격대’를 자처하고 있는 감사원의 처사를 규탄한다.

경향신문이 28일 확인한 감사원의 ‘공익감사청구 처리규정’을 보면 지난해 7월5일 개정된 이 훈령에 ‘국무총리의 감사청구’ 조항이 신설됐다. 총리에게 감사청구권을 부여하는 내용으로, ‘국무총리는 감사원과 미리 협의한다’는 문구도 포함됐다. 법률에 없는 총리의 감사청구권을 만든 것은 물론 행정부와 감사원의 협의규정까지 담은 것은 상식 밖이다. 감사원이 헌법상 독립기관의 본분을 저버리고 정부 의중에 따라 감사에 나서겠다고 자인한 것이나 마찬가지다.

최재해 감사원장은 지난해 7월 말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서 감사원은 대통령의 국정운영을 지원하는 기관이라 답했다. 유 사무총장은 대통령실 국정기획수석에게 문자메시지를 보냈다가 언론사 카메라에 포착됐다. 감사원 독립성에 의구심을 던진 두 장면은 알고 보니 단순한 실언이나 해프닝이 아니었던 셈이다. 윤석열 정부 들어 감사원은 전 정부 임명 인사·기관·사업과 공영방송 등을 겨냥한 표적 감사에 요란하게 나섰다. 대부분 무리한 ‘맹탕 감사’였음이 여실한데도 여전히 정권과 코드를 맞추는 감사에 몰두하고 있다. 그사이 이태원 참사 감사는 의결 후에도 감추고 뭉개기에 급급했다.

지금 감사원은 감찰기관의 위상과 신뢰를 모두 잃고 있다. 감사원이 정치적 중립성을 잃고 법과 원칙에 따른 본연의 임무를 외면한다면 국민 신뢰를 결코 얻지 못할 것이다. 지금의 감사원이라면 자정을 기대할 수도 없다. 국회가 나서 감사원 독립성 훼손 사태의 진상을 규명하고 권한을 남용한 이들의 책임을 물을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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