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북·러 밀착은 한·미·일 밀착의 반작용이자, 윤 정부 외교 실패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러시아 방문 나흘째인 15일 하바롭스크주의 유리 가가린 항공기 공장, 야코블레프 항공기 공장을 찾았다. 유엔 제재를 받는 수호이 전투기 생산공장들이다. 지난 13일 우주기지에서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한 데 이어 군사협력을 보여주는 행보이다. 푸틴 대통령의 북한 답방도 논의되고 있다고 한다. 양국이 전략동맹 관계를 복원하는 방향으로 가는 것이 분명해졌다.

항후 북·러 간 실무 차원 협력을 지켜봐야겠지만 러시아가 위성 발사 기술 등 첨단기술을 북한에 지원하고, 북한이 포탄 등 무기 재고를 러시아에 지원하는 식으로 거래가 이뤄졌을 가능성이 높다. 양국은 냉전 시절에도 하지 않았던 연합군사훈련도 할 수 있다. 유엔 안보리 제재 결의와 국제 규범에 반하는 불법적이고 위험한 거래로 비판해야 한다.

중요한 점은, 이로써 북한이 그동안 30년 넘게 이어온 대외관계의 큰 원칙인 군사적 자주성 유지와 대미관계 정상화 목표를 접은 것 아닌가 해석하게 되는 것이다. 2021년 하노이 북·미 정상회담 실패 이후 김 위원장이 장고 끝에 선대로부터 이어온 전략적 노선의 변화를 택했을 수 있다. 미국의 권위 있는 북한 정보 분석가 로버트 칼린이 최근 이러한 견해를 밝혔는데, 일리가 있다고 본다. 아울러 러시아가 북한과 밀착한 것은 한국이 30년 전 이룬 북방외교의 성과를 무로 돌리는 것이다.

이번 북·러 회담은 탈냉전 이후 한반도 정세의 중대한 변곡점이다. 그것은 한국에는 기회보다는 위험을 의미한다. 북·미관계 정상화 목표의 포기가 맞다면, 북한의 핵보유를 협상으로 되돌리기는 더 어려워진다. 북한은 핵·미사일 능력을 한층 강화하고, 국제 제재도 뚫게 된다. 어떤 측면으로도 한국이 더 안전해진다고 보기 어렵다. 따라서 북·러 밀착은 한국 외교의 실패이자 큰 도전이라고 할 수 있다. 한·미·일 협력 구도를 종용해온 미국의 실패이기도 하다.

일각에서 북·러 밀착은 어차피 있을 일이었다며 한·미·일이 3자 동맹에 가까운 틀을 구축해놓기를 잘했다는 취지로 주장한다. 하지만 이것은 선후관계를 호도하는 것이다. 북·러의 이번 밀착이 전부 한·미·일 협력 때문이라고 할 순 없지만, 통상적 수준을 넘어서는 한·미·일 결집이 북·러의 과거 회귀적 반작용을 낳았음을 부인할 수 없다. 윤석열 대통령이 앞으로도 동북아 신냉전적 구도의 촉진자 역할을 계속한다면 중국이 북·러 밀착 대열에 합류하는 것도 막기 어려워질 것이다. 정부는 지금부터라도 중국, 러시아를 대하는 외교 행보마다 미묘한 갈등 요인들을 살피고, 극도로 신중하게 상황을 관리해야 한다.

러시아 하바롭스크주 미하일 데그티아레프 주지사(오른쪽)와 러시아 어린이들이 15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 일행을 환영하기 위해 기다리고 있다.  연합뉴스

러시아 하바롭스크주 미하일 데그티아레프 주지사(오른쪽)와 러시아 어린이들이 15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 일행을 환영하기 위해 기다리고 있다. 연합뉴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지난 13일 러시아 아무르주 보스토치니 우주발사기지 발사대를 함께 바라보고 있다. AP연합뉴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지난 13일 러시아 아무르주 보스토치니 우주발사기지 발사대를 함께 바라보고 있다. AP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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