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지난 28일 “선거는 승부인데 이상적인 주장으로 멋있게 지면 무슨 소용 있겠냐”고 말했다. 이어 “내년 총선에서 우리가 1당을 놓치거나 과반을 확보하지 못하면 (윤석열 정부) 역주행을 막을 길이 없다”고도 했다. 총선 승리를 위해 병립형 비례대표제나 위성정당을 유지하는 준연동형 비례대표제도 염두에 두고 있단 뜻으로 보인다. 이 대표와 제1야당이 대선 때 정치개혁을 위해 위성정당을 없애겠다고 한 ‘국민과의 약속’을 뒤집겠다는 것인가.
현재 비례대표 배분 방식을 두고 국민의힘은 병립형(정당 득표율로 의석 배분)을 선호하고, 연동형(정당 득표율에 지역구 의석이 못 미칠 때 비례대표로 충원)으로 간다 해도 위성정당 창당에 거리낌이 없다. 국민 비판이 큰 위성정당을 다시 열어놓는 여당은 정치개혁을 운운할 자격이 없다.
문제는 민주당이다. 병립형을 택하면 개혁 후퇴로 비판받고, 연동형을 도입하면 위성정당 유혹과 내홍에 휩싸일 판이다. 민주당에선 “연동형 도입 시 위성정당을 포기하면 최대 20석을 국민의힘에 뺏긴다”는 현실론과 “선거공학만으론 국민 마음을 얻을 수 없다”는 명분론이 부딪치고 있다. 지도부는 선거제 파열음이 커지자 29일 의원총회를 하루 연기했다.
이런 내홍 속에서 이 대표가 ‘선거제 퇴행’까지 선택지에 넣은 것이다. 그는 “정상적인 정치가 작동한다면 상식을 고려해 타협할 수 있지만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는 이유를 댔다. 의원 약 80명이 위성정당방지법의 당론 채택과 선거제 개혁을 촉구했음에도 당대표가 귀 닫고 거꾸로 가겠다는 건 무책임한 태도가 아닐 수 없다. 이 대표는 이날 김준우 정의당 비상대책위원장의 선거제 개혁 요구에도 즉답하지 않았다. 민주당만으로 윤석열 정부에 대한 국민적 심판을 완수할 수 있다고 믿는 게 독선이라는 사실은 2017년 촛불탄핵연대가 방증한다.
이 대표는 대선 때 “거대양당 기득권 타파, 선거제 개혁으로 정치 교체를 이루겠다”고 말했다. 지난해 8월 전당대회에서도 90% 넘는 당원들 동의로 이런 정치개혁 결의문을 채택했다. 그런데 병립형·위성정당을 고민하는 자체가 이 모든 약속과 엇가는 것 아닌가. 최소한 비례대표와 연동형을 섞은 준연동형제 이상의 후퇴는 없어야 한다. 정치 개혁은 민주주의 발전에 부합할 때 명분과 실리를 얻을 수 있다. ‘김대중·노무현 정신’이 그것이고, 민주당 대표는 그 정신을 계승·발전시킬 책임을 지고 있다. 이 대표는 개혁·후퇴의 기로에 선 선거제와 민주당 운명이 자신의 결단에 달려 있다는 걸 명심해야 한다.